대학생 박모(25, 부산시 동래구 사직동) 씨는 요즘 공중전화 부스를 자주 찾는다. 전화를 걸기 위해서가 아니다. 부스에 설치된 ATM기에서 돈을 인출하기 위해서다.
초등학생서부터 80대 할아버지까지 누구나 무선전화를 한 대씩은 갖고 다니는 휴대폰, 스마트폰 범용화 시대다. 1962년 처음 등장해 사람들의 목소리를 이어주던 공중전화의 사용률은 이제 거의 제로에 가까울 만큼 떨어졌다. 이처럼 급전직하로 추락한 공중전화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기능을 가진 ‘멀티형 공중전화 부스’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공중전화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KT LINKUS가 공중전화 부스에서 수익을 찾기 위해 팔을 걷고 나선 것이다.
멀티형 부스는 전화기능에 현금인출기나 AED(자동제세동기)를 설치해 놓기도 하고, 범죄의 위협을 당하는 행인이 들어가 안전을 지킬 수 있는 용도의 ‘세이프 존’ 혹은 ‘안전지대’라고 불리는 부스로 변신하기도 한다. KT LINKUS 홈페이지에 따르면, 이와 같은 새로운 기능을 갖춘 여러 용도의 멀티형 부스는 2011년 9월 시범 운영을 시작으로 현재 전국적으로 1,500여대가 있다.
특히, 세이프 존은 누군가가 지나가는 행인에게 위해를 가하려 했을 때, 그 행인이 공중전화 부스의 한 칸에 설치된 세이프 존 안으로 들어가 빨간 버튼을 누르면, 강화로 된 유리가 자동으로 닫히고, 경찰에 바로 신고가 접수되어 경찰이 출동하게 된다. 더욱이, 세이프 존에 달린 카메라로 근처 영상을 촬영하기도 하고, 경광등이 켜지고 사이렌이 울리기도 한다. 긴급 상황이 종료되면, 이 부스의 파란색 버튼을 눌러 문을 열 수 있다.
대학생 정가연(22) 씨는 최근 공중전화 부스에 설치된 세이브 존을 보게 됐다. 그것을 이용한 상황을 겪은 것은 아니지만, 여자들에게는 공중전화 부스의 안전지대가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고 있다고 느낀다. 정 씨는 “이것은 매우 좋은 아니디어다. 앞으로 이런 시설이 더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KT LINKUS에서 주관하는 멀티형 공중전화 부스 사업 이외에도 시민들이 KT의 허락을 받고 공중전화 부스를 활용하는 사례도 생기고 있다. 부산 해운대구 좌동의 ‘메아리 도서관’은 KT가 부스만 제공하고 한 시민이 공중전화 부스를 간이 도서관으로 활용한 사례로 꼽힌다. 기존의 공중전화 부스를 개조한 이 도서관의 이름은 메아리 도서관이며, 회원등록도 필요 없고 사람도 없는 무인도서관이다. 이 도서관의 이름이 메아리인 이유는 제안자가 메아리처럼 주민들이 책을 열심히 읽는 모습을 보여주는 화답이 들려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지은 이름이란다. 이 도서관은 공중전화 부스를 개조해 책장을 만들고, 그 안에는 주민들이 자율적으로 책을 기증하거나 대여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메아리 도서관의 제안자인 화덕헌(50) 씨는 쓸모없는 도시 자원을 재활용하고 책을 주민들끼리 공유하는 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해 메아리 도서관을 만들었다고 했다. 화 씨는 “KT측에서 공중전화 부스를 흔쾌히 빌려줘서 메아리 도서관 사업을 쉽게 수행할 수 있었다”며 “메아리 도서관에 대한 주민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고 말했다.
다른 나라에서도 공중전화 부스는 골칫거리 중 하나다. 다들 공중전화의 이용빈도가 떨어져 부스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2014년 발표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엔 디지털 광고판이나 와이파이 존으로 운영하기도 하며, 프랑스와 일본은 공중전화를 줄여 나가고 있고, 벨기에와 오스트리아는 공중전화를 폐지했다.
공중전화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KT LIKUS의 이광현 부장은 꾸준히 공중전화 부스 활용방안을 확대 중이라고 밝혔다. 이 씨는 농어촌에는 무인택배 장치로, 도시 지역에는 전기자동차 충전장치 등으로 활용할 계획이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