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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를 추억하는 디지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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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를 추억하는 디지털 세상
  • 장재호
  • 승인 2013.01.16 14: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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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어디서나 듣고 싶은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손가락 하나면 마음을 전하는 편지를 보낼 수 있다.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세상은 변하고 있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주위를 둘러보면 찾을 수 있던 LP, 필름카메라, 무선호출기, 공중전화와 우체통. 속도를 중시하는 디지털 시대에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있고, 이제는 찾아야만 눈에 들어온다. 이런 아날로그의 감성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있다.

CD와 MP3음원의 공세로 밀린 LP판을 수집하며 아날로그 감성을 지키고 전파하는 대한레코드의 정순길 사장님. 디지털 카메라의 섬세함과 치명적 실수 하나 없는 치밀함을 져버리고 필름카메라의 부드러움과 소소함에 흠뻑 취한 김태민 학생, 학창시절 연애한답시고 3명의 여자에게 연애편지를 쓴다고 우표값이 부족해 아버지의 지갑에서 만원을 들고 나왔다가 매를 맞았다는 김형원 우편배달부 아저씨를 통해 아날로그와 그에 관한 추억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부산 서구 동아대학교 부민캠퍼스 앞에 위치한 대한레코드. 댄스 강사부터 중고 레코드 수집가, 클럽 DJ까지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마니아들을 위한 중고 LP레코드 전문점이다. 특히 80년대 클럽의 유행과 명맥을 같이한 대한레코드를 이어받아 10년째 가게를 운영하는 정순길(41)씨는 가게 주인이라기보다 아날로그의 감성에 젖어 음악을 공부하고 즐기는 사람이다.

가게는 소규모지만 손에 잡히는 LP마다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국내 및 수입 원판들이 많다. 보물찾기하듯 LP를 찾다 보면 희귀 음반도 한 장씩 구할 수 있다. 그래서 일까 DJ뿐만 아니라 방송국 음악전문 PD들도 대한레코드에 대해선 부산의 최고 명판을 찾을 수 있는 가게로 평가할 정도다. 클럽 DJ 박솔의(25) 씨는 “저렴한 가격과 희귀한 명판을 구할 수 있어 음반 시장이 국내보다 큰 일본이나 미국에서도 클럽 DJ나 LP수집가들이 찾아와 구매해 간다”고 말했다. 정 씨는 "LP 앨범을 바르게 알고 감상하려면 아날로그적 감성에 충실해야 한다. LP판을 함부로 다루고, 턴테이블 바늘에 먼지가 쌓일 때까지 방치하는 것은 음악을 듣는 사람으로서 자격이 없는 셈"이라고 충고를 했다. 정 씨는 중고 LP판은 값으로 따질 수 없는 매력이 있다고 한다. 또한 LP판을 판매하는 것은 대중들에게 원하는 음악과 추억 속의 음반을 찾아주는 즐거움이라고 한다. 10년간 단골인 한 손님은 들어와서 원두커피를 내오라며 사장님에게 주문했고, 그에 맞게 LP판 하나를 턴테이블에 얹히고 바늘을 내렸다. 은근한 커피향과 가사는 모르겠지만 들려오는 잔잔해지다가 거세지는 수입 LP판의 멜로디는 쳐진 어깨를 피게 만들었다.

앞으로도 계속 중고 LP레코드판을 고집하겠다고 말하는 사장님은 각박한 현실 속에서 아날로그 음악을 찾는 사람들이 있는 한 가게를 계속 운영할 것이라 한다.
어렸을 적 카메라란 서랍이나 장롱 깊숙이 넣어뒀다가 집안의 큰 행사 때나 꺼내던 대표적인 귀중품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카메라가 탑재된 핸드폰을 들고 다니며, 자신이 알게 모르게 접하고 항상 노출되다보니 이제는 카메라에 대해 무감각해질 대로 무감각해졌다.

몇 달동안의 아르바이트로 장만한 DSLR과 필름카메라를 보물처럼 지니고 있다는 필카 커뮤니티 회원 김태민(30) 학생. 오래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선물해주셨다는 필름카메라를 보여주며 유쾌한 미소를 흘렀다. 그가 소유한 필름카메라의 첫인상은 묵직했다. 찍을 때마다 몸으로 전해오는 카메라의 떨림, 귀를 자극하는 셔터소리, 필름 와인더를 넘길 때 느껴지는 그 감칠맛, 촬영된 사진의 완성도를 알 수 없는 촬영 자체로도 희열을 느끼게 했다. 김 군은 “필름카메라로 촬영한 필름을 가지고 있을 땐, 결과물이 무척이나 궁금하고 기다려진다. 인화용지와 인화용액 그리고 암실에서의 고독과 외로움 그리고 기다림을 거쳐 태어나게 되는 필름 카메라의 사진은 머릿속의 기억과 추억을 불러내 숨 쉬게 하지만, 디지털 카메라에는 기다림이란 것이 없다”고 말했다. 기다림 없이 바로 볼 수 있고, 필름살 돈 걱정 없이 마음대로 찍어댈 수 있고, 썩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 어디서든 지워버릴 수 있는 디지털 카메라는 빠르고 넘치는 쉽게 유행해서 쉽게 식어가는 세태를 대변하는 디지털 시대의 산물이다. 우체국을 가본 적이 있는지 중고등학생 10명에게 물었다. 그 중 2명이 어머니를 따라 저금문제로 가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지금의 아버지 어머니 세대는 어릴 적 군인아저씨, 멀리 계시는 할머니, 친구는 물론이고 편지를 전하곤 했다. 요즘엔 포탈사이트에서 제공하는 메일서비스로 우표값도 없이 무료로 쓸 수 있다. 송도우체국 우편배달부 김형원(55) 씨는 “시간이 지날수록 광고물이나 택배, 등기우편이나 소포만 꾸러미에 담겨 있다. 마음 두근두근 거리며 기다리던 연애편지는 100편중 2개꼴로 찾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대기실에서 자신이 받은 연애편지를 들고 나왔다. 흰 봉투는 색이 바래져 황토색이 되었고, 그 안엔 어여쁜 여인의 얼굴이 담긴 흑백사진이 있었다. 몇 줄의 글을 읽으시더니 김 씨는 “옛날 생각에 잠기고 싶을 때가 있다. 변해버린 세상에 진절머리가 나지만 편지, 사진, 친구들과의 소주 한 잔이 있으니 이게 안주가 된다”고 말했다. 사회가 발달하고 디지털 기술들이 개발되면서 세상은 1초면 모든 것이 연결되는 시대다. 아버지 세대와 중장년층의 가슴속에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이 있다. 국민학교 시절 친구들과 해질 무렵까지 운동장에서 뛰어놀던 일, 라디오에서 나오는 사연엽서를 보내고 음악을 들으며 밤을 새는 일, 시끄러운 락이나 힙합의 전자비트보다 LP의 바늘소리를 들으며 커피를 마시는 일. 장의조(56) 씨는 “내 어린 시절과 학창시절을 생각하면 마음이 푸근해지지만 우리 아들과 딸들에게 어떤 추억을 남겨주었나 아니 어떤 추억을 남겨줄 것인가를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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