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5-11-19 18:15 (화)
내가 만나본 YS
상태바
내가 만나본 YS
  • 칼럼니스트 박승준
  • 승인 2015.11.23 11: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승준 교수 특별기고
내가 만나본 YS, "언제나 맑은 웃음 멋쟁이 신사"
1990년대 말인지, 2000년대 초인지 어느 날. “물어볼 것이 있으니 상도동으로 오라”는 전갈을 받고, 김영삼 전 대통령을 뵈러 갔다. 대통령께서는 “대만에서 자꾸 오라고 초청하는데, 지금 우리가 중국하고 잘 지내고 있는 상황에서 내가 대만에 자꾸 가는 게 괜찮은 일인가”라고 물었다. 나는 “대만에만 가시지 말고, 대륙의 항저우(宁波)나 충칭(重慶)도 가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말씀 드렸다. 대통령의 뜻은 대한민국이 상하이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나라이고, 그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도와준 것이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이니 대만의 국민당 초청에 따라 대한민국 전직 대통령이 대만을 방문하는 것이 옳은 일인 것 같은데, 1992년 8월의 한중 수교로 대한민국이 중국 대륙과 정식 외교관계를 맺고 있고, 대만과는 단교했는데, 전직 대통령이 단교한 대만이 초청한다고 대만에 자꾸 가는, 그 모양새가 어떠냐는 뜻이신 듯했다. 대통령의 그런 고민을 읽은 나는 상하이에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장제스의 국민당이 도와준 것은 사실이지만, 1932년 4월 윤봉길 의사가 상하이 훙커우(虹口) 공원에서 일본 천왕의 생일을 축하하는 천장절 행사를 하고 있던 시라카와 대장 등 일본군 장성들에게 폭탄을 던져 많은 일본군 수뇌들을 죽인 이후 임시정부가 항저우로 옮겨가고, 1940년 충칭에 청사를 다시 개설할 때까지의 기간에는 중국공산당도 우리 임시정부를 도와주었으니, "항저우에도 가보시고, 충칭에도 가보시는 게 좋겠다"는 말씀을 드렸다. 그러면서 “현재 이 부분의 사실(史實)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나중에 전해 들어보니 대통령께서는 그 뒤에도 대만에는 몇 번 가셨으나 항저우나 충칭을 방문하지는 않으셨다. 대통령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대통령께서는 대한민국에게 법통을 물려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도와준 국민당 사람들이 옮겨간 대만을 방문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전임 대통령으로서 해야 할 일이 아니냐는 뜻에서 "이미 단교한 대만이지만 방문하는 것이 옳다"는 판단을 내린 듯했다. 상도동에서 점심을 하면서 대만 방문과 대륙 방문의 타당성을 이야기하면서 김영삼 대통령은 헌법 전문에 나오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는 구절에 마음을 두고 계셨던 듯 “그래도 내가 나라의 법통을 지켜야지…”라고 혼잣말을 하시는 것을 들었다. 경남중고 24년 후배인 필자는 평생 김 대통령을 다섯 번 정도 직접 얼굴을 뵌 기억이 있다. 첫 번째는 중2때 서울로 수학여행을 왔을 때 수송동인가 청진동인가 묵고 있던 여관으로 당시 김영삼 국회의원이 여관으로 찾아와서 수첩에 한자로 사인을 해주었을 때, 두 번째는 고교 2학년 어느 날 김 대통령의 선거구이던 부산 서구에서 귀가하던 길에 선거운동 유세를 하면서 당시 서슬이 시퍼렇던 박정희 대통령을 “박정희 씨가…”라고 호칭해서 놀랐을 때였다. 그 다음은 신문기자가 되어 인터뷰를 할 기회가 있었을 때, 그리고 두 번은 상도동으로 초청을 받아 갔을 때였다. 그때마다 내 기억에는 “젊고 신선한 웃음을 흘리는 멋쟁이 신사”로 남았다. 대체로 짙은 감청색 싱글과 빨강 색 넥타이를 하고 있던 그는 우리 시대의 정치에 '대도무문(国道無門)'이라는 맑고 선명한 이미지를 던져준 정치인으로 기억될 것이다. 대도무문은 "큰 길에는 문이 없어 거칠 것이 없다"는 뜻과 "큰 길에는 문이 없어 어디에서든 올라설 수 있다"는 두 가지 뜻으로 중국에서는 쓰이고 있다. 김영삼 대통령은 대체로 앞의 뜻으로 사용했다. 김 대통령께서 천국에 이르는 길도 대도무문으로 만들어 누구에게든 문이 열리게 해주실 것으로 믿는다. *편집자 주/ 필자 박승준은 조선일보 기자 출신으로 홍콩 특파원, 베이징 특파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의 으뜸가는 중국 전문가로 <뉴 차이나 트렌드> 등 다수의 베스트셀러를 저술했고, 정부기관, 대기업 등에서 중국 관련 특강, 세미나 활동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박 교수가 서거한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바탕으로 한 '내가 만나본 YS'라는 제목의 특별 기고문을 <시빅뉴스>에 보내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