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전통이 강한 서유럽과 미국에서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성탄절 인사가 ‘해피 홀리데이’로 대체되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종교적 갈등이 커지고 있는 현 세계를 우려한 나머지, 종교적으로 민감해질수 있는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성탄절 인사를 자제하자는 취지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세계의 종교 갈등을 인식해서 성탄절 인사를 굳이 바꿀 필요가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는 ‘크리스마스 전쟁(war on christmas)’이 일어났다. 크리스마스 전쟁은 커피 전문점 스타벅스가 매년 연말 시즌에 내놓는 크리스마스 테마 컵으로부터 시작됐다. 스타벅스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순록, 썰매, 트리 등 크리스마스 상징물을 그려 넣은 종이컵을 사용했다. 하지만 파리테러가 발생한 올해에는 스타벅스 문양과 빨간색 몸통만을 가진 컵을 내놨다. 이를 본 보수 기독교인들은 스타벅스가 크리스마스를 축하하지 않는다며 거세게 반발했고, 인스타그램 등 SNS 이용자들은 #waronchristmas 해시태그를 붙인 글을 올리며 토론에 열을 올렸다.
미국의 도심 백화점이나 대형 식당에서도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 추세다. 종교색을 드러내는 것이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에게 불쾌함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메리 크리스마스’ 인사 대신 ‘해피 홀리데이’란 중립적 인사가 대신 사용되고 있다.
회사원 박희진(27) 씨는 서구 세계에서 ‘메리 크리스마스’ 성탄절 인사로 싸우는 이유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박 씨는 “인사는 인사일 뿐인데 종교적 의미를 굳이 둬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메리 크리스마스나 해피 홀리데이나 같은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천주교 교인 김윤지(25) 씨는 우리나라의 크리스마스는 빨간 날 의미가 강하지 종교적 기념일이란 의미는 약하다고 말했다. 김 씨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마도 석가탄신일이나 성탄절이나 쉬니까 즐거운 날일 듯하다”라며 웃었다. 불교 신자인 회사원 최재훈(31) 씨는 “'메리 크리스마스'가 원래 뜻인 ‘즐거운 예배 보세요’라는 의미를 확실히 보여주는 직접적인 한국말이 아니라서 그런지, 한국 사람들에게는 크리스마스에 대한 거부감이 적은 것 같다”고 크리스마스 인사에 대한 느낌을 말했다.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반응이 대부분인 가운데, 일부 기독교인들은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말을 비종교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반대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교회에 다니는 박모(26) 씨는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크리스마스에 쉬지도 마라”며 불같이 화를 냈다. 회사원 이문수(35) 씨는 “크리스마스는 기독교 종교적 의미가 가장 큰 날인데, 남을 배려하는 일이라고 해도, 크리스마스 날 인사에 종교적 색채를 지운다는 것은 서운하고 안타깝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는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종교적 다양성을 인정하고 타 종교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인사말 사용을 자제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고, 종교 기념일의 표현을 부정하는 것은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말의 표현이나 용어의 사용에서, 인종·민족·종교·성차별 등의 편견이 포함되지 않도록 하자는 주장을 나타낼 때 쓰는 말)에 대한 집착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로 의견이 나뉘어 다양한 토론이 계속되고 있다.
반면에 한국은 동아시아에서 인구 비례 기독교인 수가 가장 많고, 유일하게 크리스마스를 공휴일로 지정한 나라이면서, 비 기독교인들도 기독교인들처럼 크리스마스를 즐기고 선물을 주고 받는 날로 간주하고 있다. 경성대 신방과 정태철 교수는 그 이유를 우리나라 사람들은 크리스마스를 기독교 행사라기보다는 서구 문화 중 하나로 받아들인 결과라고 보고 있다. 정 교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오래 전부터 마치 핼로윈이나 발랜타인 데이처럼 그 날의 독특한 종교적, 혹은 역사적 의미는 잊어버리고 그저 서양풍습의 하나로 크리스마스를 받아들인 것 같다. 그래서 현 세계의 심각한 종교 갈등을 줄여보자는 의미로 메리 크리스마스 인사를 자제하자는 서양의 움직임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별 감흥을 주지 못한다. 일종의 무분별한 서구문화 수입 현상 중 대표적인 게 크리스마스가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