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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그 끈끈함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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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그 끈끈함에 대하여
  • 편집위원 박시현
  • 승인 2016.01.18 10: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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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88>이라는 세간에 화제가 된 드라마가 20회를 끝으로 종영됐다. 이 드라마를 보고 싶어 가슴앓이를 하는 현상을 가리켜 ‘응팔앓이’라고 부를 정도로 이 드라마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평균 시청률 18.6%로 케이블 TV 역대 시청률 1위에 등극했다. 이 드라마는 서울 쌍문동 한 골목 다섯 가족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내 주위에서 이 드라마를 본 많은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이 드라마가 ‘가족’이라는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과연 우리에게 가족은 무슨 의미일까? 우리는 보통 가족을 한 식구(食口)라고 표현한다. 한 식구는 한 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즉, 가족은 서로 오순도순 부대끼며 살아야 한다. 하지만 요즘 가족은 직장 따라 학교 따라 한 집에 살지 않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응팔> 드라마처럼 부대끼며 사는 정도가 많이 약해졌다. 가족끼리 하루 세끼 밥을 같이 하는 기회란 희귀해진 지 오래다. 지난해 5월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가 실시한 2014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족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는 비율은 64.9%인 것으로 집계됐다. 저녁을 가족이 같이 먹는 비율 조사가 시작된 2005년에는 76.1%, 2008년에는 68.6%, 2012년에는 65.7%였다. 점점 우리나라 가족들은 같이 밥을 먹지 않고 있다. 1988년에 나타난 <응팔> 가족들은 거의 날마다 식사하고, 티격태격하고, 울고, 떠들었는데 말이다. 자녀와 부모가 모처럼 같이 밥상을 받았다 치자. 밥상머리에서 가족 간의 대화는 사라졌다. 가족들은 각자 ‘그놈’의 스마트폰만 들여다본다. 명절에 가족이 억지로 모여도, 가족끼리 직접 대화는커녕 각자의 스마트폰만 들여다본다. 같이 밥상에 앉은 자식이 옆자리의 아버지에게 직접 말로 하지 않고 카톡으로 대화한다는 CF는 더 이상 코믹하지 않다.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2016년 현재 대한민국은 '나'가 삶의 중심이 되면서 ‘우리’라는 가족이 해체되고 있다. 이 시대에 <응답하라 1988>은 가족이 무엇인지, 가족애가 무엇인지, 우리 가족은 안녕한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져주었다.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1988년의 한 동네 가족들의 삶을 보고 지금의 자기 가족들을 돌아보게 됐다. 시청자들이 이 드라마에 응답한 것이다. 이 드라마는 우리가 가족을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라는 선물을 주었다. <응답하라 1988>이 던진 가족에 대한 향수와 추억 중에는 모정(母情)과 부정(父情)이 있다. 덕선이 언니 보라는 소위 운동권 대학생이다. 보라는 당시 민정당 당사 농성에 참여했다가 경찰에 끌려간다. 보라 엄마는 경찰에 끌려가는 딸 보라를 지켜내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한다. 이런 엄마의 자식을 사랑하는 정에 시청자들은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쌍문동 이웃들의 축복 속에 보라와 선우는 결혼에 성공한다. 이 둘은 동성동본의 난제를 이겨내고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며 부모의 허락을 받아 결혼식을 올린다. 이 과정에서 보라와 아빠는 서로에게 편지를 쓴다. 딸의 편지는 이렇다. “사랑하는 아빠. 말로는 못할 것 같아서 편지를 쓴다. 나는 늘 왜 (아빠 앞에서는) 말이 안 될까? 아빠의 마음을 다는 모르겠지만, ‘보라야~’ 부르는 게 아빠 좀 봐달라는 말인 것도 알았고...(내용 중략)...결국 또 이렇게 편지로 해. 너무 미안한 게 많은 못난 딸이라 아빠 이름만 불러도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이에 대한 아빠의 편지는 이렇게 시작한다. “27년 전, 딱 이 맘 때였나 보다...(내용 중략)...네가 태어난 순간부터 한 순간도 빠짐없이 (너는) 이 아빠의 소중한 보석이란 걸 잊지 말아라. 내 딸로 태어나줘서 더 없이 고맙다. 사랑한다.” <응팔>이 던진 가족이란 화두에 기반을 두고, <시빅뉴스>는 팟캐스트 <터졌다! 시팟>에서 가족을 주제로 공개방송 형식으로 "따뜻한 말 한마디!"(//goo.gl/6qvqb7)를 제작했다. 이 프로그램은 서로 날마다 얼굴을 마주 대하면서도 직접 말하기에는 멋쩍은 대화를 자식과 부모들이 서로 해보자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제작진은 자식들이 “엄마 아빠한테 나는 어떤 존재인가?”라는 글을 문자로 질문하고 “사랑한다”는 표현을 직접 아낌없이 해 보자는 구성안을 만들었다. 공개 사연방을 페이스북에 알려 일반인들로부터 가족만의 끈끈한 정에 대한 사연을 받았다. 서로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가족끼리 갈등이 생겼을 때 화해의 실타래를 풀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는 생각에, 제작진은 각자 가족만의 갈등 해결 방법에 얽힌 사연도 받았다. 사연을 모은 뒤, <터졌다! 시팟> 진행자들은 방청석을 마련하고 사연에 관련된 사람들을 초청해서 공개방송을 펼쳤다. 공개방송에서 부모에 대한 반성의 에피소드를 읽는 진행자도 울었고, 각자의 부모들에게 사랑한다는 문자를 보내고 답장을 공개한 방청객도 울었다. 즉석에서 부모와 통화하면서 사랑한다고 말하는 진행자도 울었고, 제작진의 깜짝 초대로 불쑥 공개방송 스튜디오를 방문한 어머니를 만난 진행자도 울었다. 이렇게 엄마, 아빠, 아들, 딸은 가족이란 단어만 떠 올려도 울먹였고, 서로에게 마음을 담아 문자 한 줄을 적으려 해도 울먹였다. 가족 간의 편지하면 빼 놓을 수 없는 분이 바로 15일 타계하신 고 신영복 선생님이다. 이 지면을 빌려 신영복 선생님의 영원한 안식을 빈다. 20년의 세월을 감옥에서 보낸 신영복 선생님 선생님은 지난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형을 선고 받고 20년 20일의 긴 세월을 감옥에서 보냈다. 선생님께서는 수감생활 동안의 일들을 230여 장의 편지로 기록했다. 이들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 등을 묶어 1988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초판이 나왔다. 선생님의 편지에는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미안함을 비롯해서 계수씨와 형수님께는 소소한 감옥의 일상을 적었다. 나는 신영복 선생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에 이 구절을 참 좋아한다. 이는 선생님이 1985년 8월에 계수씨에게 보낸 편지 구절인데 다음과 같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 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 사람을 단지 37도의 열 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 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 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인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는 사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미움 받는다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수 없이 많은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부모와 자식, 형제, 친구, 직장 동료, 학교 선후배는 모두 우리가 낳고 나서 맺은 관계들이다. 이중에는 내가 의도적으로 맺는 인연도 있지만, 의도하지 않은 자연적이고 필연적인 관계가 있다. 그게 바로 가족이다. 언제 어디서든 가족이라는 말은 애틋하다. 나는 오늘 학창 시절 도시락을 싸 주던 엄마의 손 편지가 생각난다. 별 말은 아니었다. 도시락 안에는 그저 “우리 딸 사랑한다,” “우리 딸, 오늘은 힘들지만, 내일은 웃을 수 있을 거야” 같은 손 편지가 놓여 있곤 했다. 그땐 몰랐다. 그냥 도시락 먹기에 바빠서 메모지는 그냥 대충 읽고 구겨서 휴지통에 버린 것 같다. 그 엄마의 손 편지를 나는 오늘 단 한 장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게 지금 내가 느끼는 부모님에 대한 후회다. 오늘 나는 손 편지로 부모님께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 보려 한다. “엄마 아빠 사랑해. 그리고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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