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스마트폰 사용자들 사이에서 '랜덤채팅(random chatting)' 이란 익명 채팅 앱이 불법 '성매매' 중개나 돈 거래를 통한 알몸 사진을 게시하는 도구로 악용되고 있어 심각한 사회문제를 낳고 있다. 특히 아무런 여과장치 없이 청소년들이 이같은 '성매매' 유혹에 직접적으로 노출돼 더 큰 충격을 주고 있다. 그런데도 당국의 단속의 손길이 전혀 미치지 않아 이같은 불법 성매매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랜덤채팅이란 스마트폰의 앱이나 PC 사이트에서 이용할 수 있는 채팅 서비스로 이용자들이 서로가 누구인 지 모른 채 대화를 이어나가는 익명의 채팅 방식이다. 이용자들은 대화상대를 말 그대로 랜덤, 즉 무작위로 바꿔가며 채팅한다. 대화는 반드시 익명으로 하게 되어있고, 채팅은 인터넷과 스마트폰만 가지고 있다면 누구나 이용 가능하다.
랜덤채팅 앱을 이용하는 방법은 다른 앱과 유사하다. 스마트폰의 앱 다운 스토어에 '랜덤채팅' 혹은 '채팅'이라고 입력하면, 50여 개의 랜덤채팅 앱이 뜬다. 그 중 설치를 원하는 앱을 골라 다운하면 바로 채팅이 가능하다. 대부분 앱을 설치하면 가장 먼저 자신의 프로필을 작성하는 화면이 뜬다. 프로필 작성에 필요한 목록은 닉네임, 성별, 나이, 간단한 자기소개 등이다. 모든 대화는 익명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가입을 위해 별도의 신상정보나 개인정보를 입력할 필요는 없다. 따라서 성인 인증같은 단계가 없어서 미성년자들도 이용에 전혀 제한이 없다.
부산 부전동에 사는 김모(18) 양은 용돈이 모자라던 참에 친구들로부터 랜덤채팅을 통해 쉽게 용돈을 버는 방법을 듣게 됐다. 그것은 얼굴을 가리고 얼굴 아래로 신체 일부를 노출한 몸 사진을 찍어서 누군가와 거래를 하는 것이었다. 얼굴이 나올 일도 없으니 걱정할 필요 없다는 친구들의 말에 솔깃해진 김 양은 곧바로 채팅 프로필에 “18세, 여, 교복사진 가능'이라는 소개말을 내걸었다. 이후 소개말을 보고 대화를 걸어오는 사람에게 김 양은 “자신의 몸 사진을 줄 테니 돈을 달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냈다. 10명 중 6명은 김 양의 제안을 수락했다. 하지만 막상 사진을 보내려니 겁이 난 김 양은 랜덤채팅 앱을 삭제해버렸다. 그녀는 "실제로 남자들에게 사진을 보내주지는 않았지만 겁이 나고 무서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여고생 정모(17) 양은 친구들이 랜덤채팅이 재밌다는 얘기를 듣고 호기심에 랜덤채팅 앱을 스마트폰에 설치했다. 고등학생임을 알리는 프로필을 작성한 후 다음 단계에서 “앱을 사용하는 동안 사용자의 위치에 접근하도록 허용하겠습니까?”라는 문구를 보고 아무 생각 없이 “예”를 누른 정 양은 앱에 접속한 후 깜짝 놀랐다. ‘근처’ 탭을 클릭하니 수많은 사용자들이 자신의 근처 몇 km에 있는지까지 다 나타났기 때문이다. 정 양이 자신도 모르게 위치를 노출하도록 허용했기 때문에 스마트폰의 GPS가 그녀의 위치를 다른 사람에게 공개한 것이다. 정 양이 더욱 놀란 사실은 사람들에게서 오는 쪽지의 내용이었다.
단순한 친목 용도로 접속한 정 양에게 “고등학생이면 용돈이 필요하지 않냐,” “얼굴 아래로 교복 입은 노출 사진을 보내주면 돈을 주겠다”는 등의 쪽지가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놀란 정 양은 “그런 거 안 해요”라고 답장했지만 끈질긴 남성의 요구에 점점 겁이 나 앱을 삭제했다. 정 양은 “절대 그런 의도로 앱을 설치한 게 아닌데 너무 무서웠다. 친목을 위해 들어갔어도, 순간 그런 돈의 유혹을 받으면 넘어가는 학생들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들이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이같은 랜덤채팅 앱이 직접적인 성매매 알선의 도구로 변질되어가고 있는 것. 이용자들은 소개말에 자신의 나이와 위치, 거래조건 등을 내걸고 자신과 조건이 맞는 사람을 찾는다. 거래조건에는 1회성 성매매나 스폰서 등 다양한 '성매매 종류'와 이에 따라 천차만별인 거래금액이 포함되어있다. 누군가가 채팅 앱의 소개말을 보고 대화를 걸면, 이들은 서로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고 조건을 협상(?)한다.
거래가 성사되면 시간과 약속 장소를 정하고 만나서 성관계를 가진 후 자신들의 합의조건에 따라 대가를 지불하는 형식이다. 그 중 마음이 맞는 사람들은 성매매를 위한 지속적 만남을 갖기도 한다. 성매매 과정은 오직 당사자들만 알 수 있고 협의 중간에 대화방을 나가버리면 기록은 일체 남지 않는다. 랜던채팅 앱에서 공공연하게 이루어지는 성매매는 이같은 익명성 때문에 알려진 것 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본지 기자는 취재를 목적으로 한 랜텀 채팅창에 쪽지를 남겨 보았다.
"애인이 필요해요, 지금 만나요....주1회 월4회 월 300만원."
가입한 지 채 5분도 지나지않아 약 45건의 불건전한 대화들이 쏟아졌다. 본인 소개란에 고등학생이라고 적어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조건만남, 성매매, 스폰 등을 요구하는 대화들이 쉴 새 없이 날아들었다. 이들의 대화 첫마디는 “얼마에 하냐,” “조건 가능하냐” 등 오직 성매매 조건을 확인하는 말 뿐이었다. 그 중에는 “교복 가능?”이라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이들은 상대가 미성년자임을 알고도 스스럼없이 성매매를 원하고 있었다.
기자는 '버스터'라는 닉네임을 가진 29세 남성과 대화를 시작했다. 그의 첫 마디는 "조건 만남을 하느냐. 돈만 많이 주면 만남이 가능하냐"였다. 기자는 "고등학생인데 괜찮냐"고 물었지만 그는 전혀 고민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는 어디에 사는지, 키와 몸무게는 어떻게 되는지, 심지어는 고등학생인데 성경험이 있는지의 여부를 연이어 물었다. 그러다 자신이 원하는 답이 나오지 않자, 그는 대화방을 나가버렸다.
'19고'라는 닉네임을 가진 또 다른 남성은 대뜸 "만나자"는 쪽지를 보내왔다. 그는 자신의 나이와 거주지를 밝히고 "주말에 A지역으로 갈테니 나오라"며 만남을 주도했다. 그는 자신 역시 고등학생이라고 소개한 후 "사진이 있느냐. 주말에 만나면 바로 방 잡으러 가서 관계를 갖자"고 말했다. 그는 대화 내내 고등학생임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성매매에 전혀 스스럼없는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앱 사용에 나이제한이 없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렇듯 심각한 사회적 문제점을 가진 앱이지만 제대로 처벌하기 힘든 이유는 바로 익명성에 있다. 랜덤채팅은 익명 서비스를 기반으로 해 접속자 기록이 남지 않는다. 특히 공공장소에서 공공 와이파이로 앱에 접속했을 경우엔 IP주소가 남지 않기 때문에 더욱 추적이 힘들다.
처벌이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랜덤채팅 앱의 설치 목적 자체는 불순하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앱 자체가 문제가 있다기 보다는 앱을 악용해 여러 가지 불법을 저지르는 이용자들이 문제이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앱의 설치에 제재를 가하기 힘들다. 이런 사정을 악용해 지금도 채팅 앱의 이용자들은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성매매에 나서고 있는 것.
많은 이들이 채팅 앱을 이용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보통 사람들은 단순히 호기심에 이용하기도 하고, 인간관계에서 지치거나 우울함에 빠진 사람들은 얼굴 모르는 타인과 소통을 원하기도 한다. 또는 가슴속에 걱정이나 주변인들에게 하지 못할 말들을 가진 사람들이 익명성을 이용해 전혀 모르는 남과 채팅을 하며 답답함을 풀기도 한다.
부산 동래구에 사는 남성 정모(23) 씨는 조용하고 소심한 성격 때문에 학교에서 인간 관계를 넓히지 못해 걱정이 많았다. 외로웠던 정 씨는 고민 끝에 자신의 성격을 드러내지 않고 사람을 사귈 방법으로 랜덤 채팅을 선택했다. 정 씨는 랜덤 채팅을 하면서 점점 자신감이 생겼고 인간 관계도 넓혀갔다. 최근엔 채팅으로 남성 친구를 알게 됐고 맘이 통해서 실제로 만나 여행도 다녀왔다. 정 씨는 "처음엔 외로운 마음에 큰 의미 없이 랜덤 채팅을 시작했지만 지금은 나에게 가장 친한 새 친구를 만들어 준 고마운 존재"라고 말했다.
애초엔 이처럼 삭막한 현대생활에서 인간관계의 폭을 넓히게 하는 취지로 채팅 앱이 개발됐지만, 불법 성매매의 알선 도구로 변질되고 있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조진경 십대인권센터 대표는 최근 2개월 동안 약 300-400명의 청소년들이 채팅으로 성 상담을 요청하고 있다고 밝혔다. 적지 않은 수의 청소년들이 성 관련 상담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조 대표는 채팅 앱이 성매매를 알선하는 도구로 사용되기 때문에 청소년들에게 유해할 수밖에 없는 매체라고 지적했다. 조 대표는 성매매 알선의 장으로 쓰이는 랜덤채팅 앱에 대해 "익명 서비스를 기반으로 하는 채팅 앱에서 청소년들이 낯선 사람과 대화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전했다.
조 대표는 청소년들에게 낯선 사람과 만나지 말라고 주의를 주는 것 만으로는 채팅 앱을 통한 성매매의 근본적인 근절 방안이 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앱 자체를 점검해 불법 '성매매' 등에 악용될 경우 정부 부서나 경찰 내 전담부서를 통해서 제재조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조진경 대표의 십대여성인권센터는 성매매에 노출된 청소년에게 성매매 예방∙피해 지원활동∙알선 사이트 신고 등의 반(反)성매매 활동을 펼치고 있다. 조 대표는 “채팅 앱과 같은 신(新)문화가 아이들에게 유해하게 작용하고 있다. 대책은 반드시 어른들이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