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기는 우리 한민족 고유의 음식물 저장용기다. 삼국시대까지 그 역사가 거슬러 올라간다. 고령토를 원료로 하는 도자기와 달리 황토를 사용하며 잿물 유약의 유무에 따라 질그릇과 오지그릇으로 나뉜다. 김치나 간장, 된장 등 전통 장을 담글 때 사용되는 김치독, 간장독, 된장독이 바로 옹기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옛날 각 가정마다 마당 한귀퉁이에는 이들 각종 옹기를 진열해놓은 장독대가 있었다.
울산시 울주군 온양읍 고산리 '외고산 옹기마을'은 이름 그대로 옹기로 특화된 마을이다. 옹기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장인인 옹기장(饔器匠)들이 모여살고 있으며, 옹기 전시, 옹기 문화 체험과 같은 옹기 관련 콘텐츠들로 가득차 있다. 마을의 전체적인 정경 또한 옹기를 테마로 디자인된 집과 골목으로 꾸며져 있다. 옹기 제작과정에서 나온 파편을 모아 담장을 쌓고, 마을 지붕은 옹기로 수놓았다. 곳곳에 옹기들이 널려 있으며, 옹기 장인들이 일하는 가마가 여기저기 세워져있다.
기자가 외고산마을을 찾아간 날은 유독 비가 많이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을을 찾아 온 관광객들이 제법 많았다. 부산에서 마을을 찾아왔다는 김모(56) 씨는 "동생이 저번에 여기 와서 옹기를 샀는데, 하도 좋다 해서 나도 와봤다. 직접 와보니까 옹기 질이 진짜 좋다"고 말했다. 그는 마을 분위기에 대해서 "솔직히 그냥 옹기 파는 마을일 줄 알았는데, 진짜 마을 전체가 다 옹기로 되어 있는 걸 보니까 신기하다. 어디 전래동화 속 마을 같다"고 했다.
외고산마을은 옹기를 판매할 뿐만 아니라, 옹기를 소재로 한 콘텐츠도 다양했다. 그 중엔 옹기 만드는 법에 대해 체험해볼 수 있는 체험방도 있다. 아이들과 함께 체험방을 찾은 울산시 권모(32) 씨는 "아이들이 옹기 만드는 법을 보고 되게 즐거워해서, 보는 나도 기분 좋다"라고 말했다.
그 외에도 외고산마을 중앙에 위치한 옹기박물관은 우리나라 옹기를 포함해 전 세계 도자기의 역사와 특징을 전시해놓았다. 박물관 정문에 들어서자마자, 정면에 위엄 있게 서 있는 옹기가 눈에 띠었다. 높이 2m 30cm, 둘레 5m 20cm의 이 거대 옹기는 외고산마을에서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만든, 세계에서 가장 큰 옹기였다. 이는 현재 기네스북에도 세계에서 가장 큰 옹기로 등재되어 있다.
세계 최대 크기 옹기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던 한 관광객은 "우와, 이걸 도대체 어떻게 구운 걸까?"라며 놀란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기네스가 인증한 최대 옹기를 굽는데 성공한 옹기장인 신일성 씨의 며느리 채성희(36) 씨는 이 옹기를 만들기 위해 다섯 번의 시행착오가 있었다고 전했다. 이는 거대한 옹기를 만드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그는 “아버님이 2006년부터 이 옹기를 만들기 위해 애쓰셨고, 2010년에 울산 세계옹기문화엑스포를 앞두고 완성하셨다. 이걸 만드는 과정에서 가마의 지붕이 내려앉은 적도 있다”고 했다.
박물관 내부로 들어 오면, 마치 가마 안에 들어온 듯한 착각이 드는 복도와 황토 빛으로 된 인테리어가 인상깊게 관광객들을 맞는다.
그렇다면 옹기와 일반 도자기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옹기장 신일성 씨는 굽는 방식, 그리고 구울 때 사용하는 흙에 그 차이점이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일반 도자기는 초벌과 재벌이라는 과정을 통해 두 번에 걸쳐 구워내고, 옹기는 한 번 오래도록 구워야한다고 했다. 그는 도자기는 얇고 작은 입자를 가진 흙을 사용하나, 옹기는 입자가 굵은 흙을 사용하는 차이도 있다고 덧붙였다.
옹기가 일반 도자기보다 어떤 면에서 더 뛰어나냐는 질문에 대해, 신 씨는 옹기의 실용성을 들었다. 그는 “옹기는 살아있는 토기다. 도자기를 실생활에 쓰려면 밥그릇밖에 더 있나? 도자기가 예술 작품으로는 더 가치가 있지만, 실용성은 옹기가 더 좋다"라고 말했다. 신 씨가 지적한 옹기의 우수성은 옹기가 숨쉬는 도자기란 사실이다. 그는 "도자기를 구울 때 흙을 채로 걸러 버리는 요소인 모래를 옹기는 그대로 쓴다. 그리고 흙 입자도 굵다. 그 덕분에 옹기는 안팍으로 공기가 드나드는 통기성이 있어서 음식 저장하는 데엔 아주 그만이다. 우리나라에서 많이 먹는 장이나 숙성 음식 등은 모두 이 옹기의 통기성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들이다"라고 말했다
외고산마을에 대한 정보와 문화 관련 활동을 취급하는 시 기관인 옹기문화관 관계자는 이곳이 옹기마을이 된 유래가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 허덕만이라는 명망 높은 옹기 장인이 마을에 들어와 옹기 제작을 시작했을 때부터라고 설명했다.
그는 "처음엔 마을 사람들이 옹기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그저 마을에 새로 들어온 주민이 하는 일로만 치부했었는데, 허덕만 씨의 옹기 사업이 잘 되자, 당시 농업 외엔 별 소득이 없었던 마을 사람들이 대거 옹기업에 뛰어들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마을 전체가 옹기마을로 변했다"고 말했다.
외고산 옹기마을은 옹기 장인들이 몰려 사는 일종의 장인 공동체다. 이를 울산시와 울주군이 2000년에 문화 콘텐츠로 살리기 위한 계획에 착수했고, 지금은 울산시 대표 관광지가 되었다고 옹기문화관 관계자는 밝혔다.
울산시가 나서서 외고산마을을 관광지로 만들게 된 것은 외고산마을 내에 살고 있는 장인들의 노력이 컸다고 마을 옹기장들은 말했다. 무형문화제 2009-04호로 등록되어 있는 마을 옹기장 조희만 씨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조명철(37) 씨는 "우리 마을 사람들이 직접 돈을 모아서 축제 유치하고, 외고산마을에 대해 알리기 시작했다. 옹기장 중에서도 특히 옹기 생산 설비를 갖춘 여덟 명은 외고산 마을을 알리기 위해 홍보비로 약 1,000만 원 정도를 썼다"고 밝혔다. 조 씨는 "나름 전국에서 제일 큰 옹기 공동체인데, 재래식 옹기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떨어지면서 먹고 살 길이 어려워졌다. 그래서 당시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모두 힘을 합친 것이다"라고 말했다.
외고산마을은 마을 전체가 옹기 테마로 이루어져 있는 만큼, 마을 주민 역시 대부분이 옹기업에 종사하고 있다. 옹기문화관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현재 100여 가구 중에 40여 가구 이상이 모두 옹기업에 종사하고 있다.
신모(67) 씨는 2대째 마을에서 옹기 빚는 일을 해 온 베테랑이다. 그는 "여기 마을이 처음 들어설 때만 해도 이곳은 몇 가구만 드문드문 살아가고 있던, 볼 것 없는 땅이었다. 하지만 허덕만 씨와 우리 아버지 세대가 여기 딱 터를 잡고 죽어라 옹기를 빚기 시작했고, 그게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거다"라고 말했다.
지금 마을이 이렇게 번창한 모습을 보면서, 그는 "아주 좋다. 물론 지금도 아쉬운 점이 없지 않아 있지만, 마을 특색이 이렇게 전국방방곡곡 알려져서 우리 마을의 가치가 올라간다는 건 분명 좋은 일이다"라고 말했다.
외고산마을은 이러한 장인들의 노력과 울산시의 지원이 합쳐져 2000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울산옹기축제'가 이곳에서 개최되고 있다.
축제를 총괄적으로 관리하는 울산옹기축제 사무국 관계자는 울산옹기축제는 전국에서 가장 큰 도자기 축제로, 전국 각지에 있는 옹기 장인들과 기타 도자기 관련 공예에 뿌리가 깊은 사람들이 대거 찾아오는 대규모 축제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 축제는 5월 2일부터 시작해 나흘간 이뤄지며, 옹기 관련 행사뿐만 아니라 청소년 예술 경연대회나 각종 행사 공연 등 다양한 행사가 준비되어 있다. 그는 “매년 축제를 준비할 때마다 그 완성도를 높여가는 중이다"라고 밝혔다.
마을을 찾은 관광객들도 이 축제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옹기 구입을 위해 들렀다는 김모(56) 씨는 "5월에 열린다는 축제에 가족들이랑 함께 꼭 다시 와야겠다. 정말 재밌을 것 같다"고 말했다.
외고산마을이 위치한 고산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다가 우연히 이곳을 찾았다는 관광객 이모(31) 씨는 "그 동안 이 마을이랑 축제에 대해 몰랐었는데 흥미를 느꼈다. 꼭 와봐야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