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만나 본 적은 없습니다. 다만 90년대를 유년시절로 지나오면서 그가 만든 드라마를 통해 감수성을 길러온 한 후배 PD로써 김종학 선배님이 떠난 지금 가슴 먹먹한 심정으로 그를 추억합니다.
볼 게 별로 없던 시절, 공중파에서 매일 제공되는 드라마는 다음날 등굣길 친구들과 가장 먼저 나누는 대화의 소재였습니다. "니 어제 그거 봤나?" "그럼! 당근 봤제. 야, 진짜 재미나데. 엄마 아빠도 푹 빠져 눈을 떼지 못하더라 아이가." 그런 인기 드라마의 정점에 김종학 PD의 '여명의 눈동자'가 있었습니다.
한 방울씩 떨어지는 눈물 같은 피아노 선율로 시작해 고난으로 가득했을 주인공들의 일제강점기 하 인생사가 파노라마처럼 이어졌습니다. 아릿한 하프 선율이 잔잔하게 흐르고 다시 현악기와 피아노가 급격히 어울려가는 2분도 안 되는 오프닝 음악은 지금도 그때 그 감정 그대로 또렷이 기억납니다.
그 당시 처음으로 음악으로 기억하는 드라마를 접한 것 같습니다. 드라마 사이사이, 주인공들마다 등장하는 테마곡들은 당시 드라마의 화려하고 다양했던 로케이션처럼 아름다웠습니다. 그렇게 마음 가는 대로 레코드 가게 너덧 군데를 지나서야 겨우 구할 수 있었던 게 '여명의 눈동자' 드라마 삽입곡 테이프였습니다.
당시 집에는 전축이라 할 만한 게 없었고, 그저 작은 카세트 플레이어가 하나 있었는데. 결국 큰맘 먹고 남포동 깡통시장에서 밀수된 소니 워크맨을 하나 구입했습니다. 손 안에 쏙 들어오는 크기며 정교한 내부 부속에 이어폰과 연결된 리모컨까지, 세상을 다 가진 듯 했습니다. 그저 '가요톱10'에 나오는 인기가요를 모아 파는 리어카에서 1000원짜리 테이프를 사서 가사도 없는 드라마 OST를 듣고 다녔습니다. 하지만 저는 마치 수준 높은 클래식이나 지금도 알아먹기 힘든 오페라 따위를 듣고 다니는 듯, 괜히 혼자서 우쭐해 했습니다.
그렇게 그 드라마에서 정신대라는 세 글자를 알게 됐고 731부대의 마루타도 알 게 됐으며 제주도의 4·3사건도 어렴풋이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후 얼마안돼 김 선배님의 걸작 '모래시계'가 있었지요. 그 드라마에서 저는 역시 광주민주화운동을 알게 됐습니다. 저의 뇌리에 각인된 우리나라 근 현대사 중 상당 부분이 김종학 선배님이 만든 드라마의 시각 이미지로 각인된 셈입니다.
김 선배님은 그 자신 '모래시계'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 못지않은 유명 연출자가 돼 대학 강단에 서기까지 했지요. 그의 강연을 들어본 적은 없지만 매체에서 보이는 그의 모습과 작품 덕분에 저 역시 이후 막연히 방송국에서 일하는 것을 꿈꾸게 됐습니다. PD가 되겠다는 꿈을 꾸게 된 것입니다.
모래시계 이후 10년. 하도 자주 튼 바람에 축 늘어날 정도로 낡아버린 테이프는 이제 MP3 파일로 대체됐습니다. 그 테이프는 아마 책상 속 어딘가에서 잠을 자고 있을 것입니다. 저역시 그동안 먹고 살 걱정으로 바쁘게 살아오는 동안 드라마를 볼 시간이 없었지만 어릴 적 꾸었던 꿈 그대로 PD가 됐습니다. '여명의 눈동자'도 잊었지만 방송 현장에서 김종학 PD는 전설이 돼 있었습니다. 제가 막 외주제작사로 신분을 옮길 무렵, 이미 드라마 외주제작사로 이름을 드날리던 그는 태왕사신기라는 드라마로 MBC에 다시 입성했었지요. 예나 지금이나 독하다는 소문은 그대로였습니다. 제작 현장에서 촬영이 제대로 안 되면 그 누구에게나 쌍욕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무서운 PD. 후배들에게 독하게 하는 PD로도 유명했다는데요. 저 역시 당시 막 후배들이 생기기 시작할 때라 어떤 선배, 어떤 PD가 될까 고민할 때 그분을 많이 생각했습니다. 능력이 있는 만큼 후배를 포함한 세상에 당당해지고 그 당당함을 넘어서 오만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런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분처럼은 안 될 것이다’라고 편하게 생각했습니다.
이후 다시 8년. 글을 쓰는 지금도 밤을 새고 있습니다. 저는 주로 밤에 생각이 잘 됩니다. 그러다보니 방송 편집이나 후반 작업을 밤에 많이 합니다. 방송 일이라는 것이 결국 창의력의 싸움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창의력이 발현되는 조건이나 시기가 PD 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에 자기가 일하기 좋은 시간에 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PD이자 제작자로, 허구의 이야기로 어떻게 사람들의 이목을 끌 드라마를 만들까 고민했을 김종학 PD 역시 그 창의력으로 승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방송 현실은 그 노고를 결국 품어주지 못한 것입니다. 아이디어나 크리에이티브에 대한 적절한 보상보다는 거품이 너무 많은 제작 현실에서 그는 좁은 고시텔 쪽방에 마지막 몸을 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 그의 이름이 들어간 제작사가 있고 그 제작사에서 지금도 한창 인기리에 방송 중인 드라마가 있습니다. 그 드라마 역시, 그의 이름 하에, 요즘 모든 드라마처럼 제작 현실이라는 미명으로 뻔한 간접광고들이 넘쳐납니다.
매체가 주는 정보가 넘쳐나 주체할 수 없는 세상입니다. 거대 자본과 많은 노동력이 투입되는 드라마라도 이젠 액세서리처럼 주머니에 넣고 들고 다니면서 쉽게 즐기는 세상이 됐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도 단순히 옛 것이라고 폄하하기 힘든 고전들도 많습니다. 유년 시절 감수성을 키워주던 그 드라마는 감수성만 키워준 게 아니라 과외로 배움을 주던 역사 교과서이자 제 꿈을 키워주던 본보기였습니다. 아직도 그 시절 수목드라마를 기다리는 설렘으로 세상을 살고 싶습니다. 자극으로 다가오는 말초적인 콘텐츠 말고 세상을 재밌고 아름답게 할 방송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고전으로 평가받을 방송을 만들어 보는 꿈을 꿔 봅니다. 오늘 밤 편집 배경 음악에는 '여명의 눈동자' 드라마 삽입곡 중에서 한 곡을 고르면서 다시 한 번 김종학 PD를 추억해 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