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개그 프로그램에는 ‘시청률의 제왕’이라 불리는 드라마 제작사 ‘박 대표’가 등장한다. 그는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간접광고를 마구 삽입하고 비현실적인 상황을 앞뒤 안 가리고 주문한다. 그러자 시청률은 수직으로 상승하고, 박 대표는 하늘을 닿을 듯 뛰어 오르며 좋아한다. 실제 드라마 제작사의 대표도 그럴까?
지난 6월, SBS에서 인기리에 종영한 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와 TV조선에서 방영 예정인 <백년의 신부>를 제작한 아우라 미디어 고대화 대표(50)가 이번 시빅뉴스 ‘사람이야기’의 주인공이다.
통상, 드라마는 방송사 자체에서 만드는 것과 외주 제작사를 통해 제작하는 방법이 있다. 현재 국내 TV에서는 외주 제작 비중이 커지는 추세다. 실제로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에 따르면, 2012년에 지상파에 방송된 드라마는 59편인데, 그 중에서 외주 제작사가 만든 드라마가 46편으로 방영작의 77.9%나 된다.
고 대표에 따르면, 드라마 제작사는 말 그대로 드라마를 기획하고 제작해 방송사에 납품하는 일을 한다. 제작사는 제작비 조달부터 캐스팅,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을 수행한다. 한마디로 제작사는 ‘멀티 플레이어’다.
대본이 정해지면 그에 맞춰 캐스팅을 하게 되는데, 사실 <장옥정>은 방영 전부터 김태희, 유아인, 한승연 등 화려한 캐스팅으로 화제가 됐다. 고 대표는 이들을 주인공으로 선정한 이유를 한마디로 정리했다.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드라마가 제작되기 위해서 먼저 작가, 연출자, 제작사가 같이 상의해 캐스팅을 하는데, 캐스팅 기준은 오직 작품에 어울리는 배우를 우선적으로 고려한다고 한다.
그는 “장희빈이라는 당대 최고 미녀에다, 권력 투쟁 속에서 비운의 삶을 살다 간 여주인공이니 김태희 씨가 적역이라 생각했고, 기대만큼 잘 소화해줬다. 유아인 씨는 그 시대의 왕으로서의 강인함과 10대의 부드러움, 순수함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주연 배우들의 캐스팅 뒷얘기를 들려준다.
<장옥정>에서 숙빈 최 씨로 연기자 신고식을 치룬 아이돌 그룹 카라의 한승연처럼 아이돌이 노래 무대에서 벗어나 드라마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다. 한승연은 연기자로 호평을 받았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돌도 많은데, 시청자들은 소위 ‘발연기’하는 아이돌이 나오는 드라마를 꺼리는 편이다.
고 대표는 아이돌의 드라마 진출에 대해 우호적이지만 충분한 준비와 좋은 연기를 가진 경우에 한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그는 “K-POP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아이돌들이 열심히 연기 연습해서 좋은 연기를 보여 줄 수 있다면 한류의 유지와 확산을 위해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시청자들이 아이돌 출연 못지않게 꺼려하는 것이 바로 간접광고라고 불리는 PPL(Product Placement)이다. PPL은 특정 브랜드의 물품을 드라마 제작사에 비용을 제공하고 드라마 속에 소품 등으로 제품을 노출시켜 마케팅 효과를 얻는 전략이다.
고 대표는 한 회당 2억에서 5억 정도 하는 제작비를 충당하기 위해선 제작사에게 PPL은 필수라고 보고 있다. 그는 “PPL이 드라마의 질적인 수준을 저하시키는 것은 문제지만 현재 구조상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존재한다”고 말했다.
최근 고(故) 김종학 PD의 드라마 <신의> 출연료 미지급 사태로 인해 외주 제작사의 제작비 조달 어려움에 대한 문제가 잇달아 제기됐다. 보통 외주 제작사의 드라마 제작비 중 출연료가 약 40~50% 정도 차지하는데, 그 이유는 기획된 드라마가 방송사의 선택을 받기 위해선 우선 몸값이 비싼 톱스타와 스타 작가를 영입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에 따른 제작비 부족으로 결국 드라마 제작사는 막대한 빚을 질 가능성이 높은 게 현재 국내 드라마 제작사의 현실 시스템이라 것이다. 고 대표는 방송국의 선택을 얻기 위해 스타 작가와 톱스타를 써야 하는 상황은 최근 어느 정도 개선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물론, 드라마 흥행 때문에 과감한 신인 발굴보다는 이미 검증된 작가나 스타를 선호하는 현상은 어느 정도 계속 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종학 PD 사건 이후 방송통신위원회에서는 방송사와 외주 제작사 간의 상생 협의체를 운영해 외주제작사의 좋은 작품이 방송사의 수익 창출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정부의 이 계획이 외주 제작사에 실효성이 있는지 여부는 아직 판단하기 어렵다고 고 대표는 생각하고 있다. 그는 “시간이 지난 후에 실효성에 대해 말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말을 아꼈다. 그는 “드라마 제작 환경 문제는 한 때의 정부 정책이나 방송사의 노력으로 모두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시간을 두고 관련자 모두가 같이 해결해 나가야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영화는 한 편 히트하면 대박 났다고 한다. 몰리는 관객만큼 수익이 고스란히 제작자나 투자자에게 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TV 드라마는 사정이 다르다. 고 대표는 드라마는 시청률이 대박 났다고 해서 그게 모두 제작사 수익으로 오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드라마 하나 대박이 났다고 드라마 제작사가 대박이 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좋은 작품을 연속적으로 기획하고 만들어야 하는 강박감을 가지고 있다며 “결국 제작사는 늘 경쟁력 있는 기획을 꾸준히 해야 생존하는 숙명을 가지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고 대표는 자신이 만든 드라마를 시청자들이 보고 위안도 얻고, 즐거워도 하고, 눈물도 흘리는 것이 좋아 드라마를 만드는 제작사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국경을 넘나드는 가슴 절절한 사랑 이야기나 한국에서 잘 되기 어려운 추리 드라마, 법정 드라마, 상고사 이야기 등 앞으로 만들고 싶은 드라마가 매우 많다고 했다.
고대화 대표는 장난기가 많은 소년 같은 인상을 지녔지만 서울대 경제과라는 이 업계에서 보기 드문 학벌과 회계사라는 전문 자격증 소유자다. <풀하우스>, <주몽>, <황진이>, <파스타> 등을 제작해 업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2008년 SBS 연기대상 제작공로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