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캠퍼스에 군복 입은 여자가 등장했다. 2010년에 여성 ROTC 제도가 신설됐기 때문이다. ROTC(Reserve Officers’Tranining Corps)는 대학 재학생 중에서 우수한 사람을 선발해 2년간의 전공 공부도 하고 군사훈련을 받게 하여 소정의 군사 지식과 전투 능력을 갖춘 장교를 양성하는 제도다.
경성대학교 체육학과 여현경(23) 씨는 이 대학에서 유일한 여성 ROTC이다. 여 씨는 2011년 경성대가 배출한 첫 여성 ROTC가 됐다. 그래도 그녀는 여성 ROTC라고 다를 게 없고 애국심은 똑같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여 씨는 ROTC 생활을 통해서 애국심이 많이 생겼다. 그녀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리나라를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어요. 전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리나라가 좋은 면이 많은 나라라고 생각하고 사랑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여 씨가 ROTC에 지원하게 된 동기는 단순했다. 그녀는 어느날 학교 도서관에서 ROTC 홍보하는 걸 관심 있게 봤다고 한다. 그녀는 "내가 체육학과 학생이다 보니 ROTC를 하는 선배를 접할 기회가 많아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지원하게 되었죠”라고 말했다.
여성 ROTC는 이 대학에서 본인이 처음이어서 준비하기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ROTC는 필기시험, 체력 검정, 면접의 3단계를 거쳐 선발된다. 여 씨는 “여자라서 준비할 게 많았어요. 그래서 6개월 동안 준비했어요”라고 말했다. 특히, 경성대 학군단에서 여성 지원자들을 많이 도와줘 합격에 도움이 됐다는 것이다. 그녀는 “학군단에서 기출 문제지도 복사해줬고, 필기 통과 이후에도 체력 검정이나 면접 때 많이 신경써주었어요”라고 말했다.
열심히 준비하고 결과를 기다리다 최종 합격이 됐다고 들었을 때의 기분은 어땠을까. 여 씨는 그때 기분을 생각하면 아직도 얼떨떨하다. 그녀는 “솔직히 합격 못할거라 생각해서, 됐다고 했을 때 놀랬어요. 차차 시간이 지나고 정신이 들면서 뛸듯이 기분이 좋았어요”라고 말했다.
ROTC에 들어가기 위해 철저히 준비하고 합격까지 했지만, 그녀는 처음엔 적응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첫 여성 ROTC다 보니 시설에서 불편한 점이 많았다. 여 씨는 남자들 사이에서 혼자 여자라는 사실에 위축되기 일쑤였다. 그녀는 “남자 샤워장만 있어서 불편하기도 했는데, 이런 것보다는 혼자 여자라는 점에서 외로움이 가장 힘들었어요”라며 "그래도 시간이 지나서 남자 동기들이랑 친해지니까 괜찮아졌어요”라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과연 여성 ROTC도 남자와 똑같은 훈련 강도로 훈련을 받는가를 궁금해 하는데, 대답은 당연히 "똑같다"였다. 여 씨는 “사람들이 만나면 가장 많이 물어보는 질문이 이건데, 여자도 남자와 똑같이 훈련을 받아요. 똑같이 받는다고 말해도 안 믿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땐 남자 동기들이 말해주지요. '여자가 더 독하다'고”라고 말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여 씨는 사람들이 여자는 남자보다 체력적으로 당연히 못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제일 답답하고 속상하다. 그녀는 “당연히 남자보다 체력적으로 떨어지는 부분이 있겠지만, 오히려 이런 시선 때문에 더 잘해야 된다는 생각에 발에 물집이 잡혀도 아픈 티 내지 않고 더 열심히 한다”고 말했다.
유일한 여성 ROTC다 보니 사람들의 시선을 많이 받게 되는데, 여 씨는 처음에는 시선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지금은 더 잘해야겠다 다짐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지나가던 교수님이 불러서 자기도 ROTC 출신이라고 밝히면서 열심히 하라고 말씀해실 때마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마음가짐이나 행동도 바르게 해야겠다 느끼죠”라고 그녀는 말했다.
ROTC를 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일까. 아무래도 힘든 훈련이다. 여름방학 때 4주, 겨울방학 때 2주 입영 훈련을 가는데, 날씨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한다. 여 씨는 “다른 지역에 가서 훈련을 받다보니, 날씨가 더 덥거나 더 추어요. 양말을 몇 겹씩 신어도 다 얼 정도로 추운 경험도 있어요”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여 씨는 훈련이 힘들기도 하지만 좋은 점도 있다고 말한다. “훈련 중에는 군것질을 못하는데, 그러다보니 훈련 받는 내내 사탕 한 알만 먹어봤으면 하고 바라면서, 그동안 내가 얼마나 행복하게 살았는지를 느껴요. 그러다보니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더 열심히 살게 됩니다. 훈련을 갔다 오면, 인간적으로 많이 성숙해져요”라고 그녀는 전했다.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군 가산점제도나 여성의 병역 의무화에 대해서 그녀는 조심스레 의견을 말했다. 여 씨는 “제 입장에선 아무래도 가산점제도가 있는게 좋다고 봐요. 군대 갔다오면 분명히 달라지는 점이 있어요”라며 군 가산점제도에 대해선 찬성을 했지만, 여성의 병역 의무화에 대해선 반대 입장을 보였다. 그녀는 “여성 병역 의무화까지는 아니라고 봐요. 남자들도 군대에서 못 버티는 경우가 많은데 상대적으로 체력이 부족한 여자들이 군대에 가기엔 아직 문제가 있어요”라며 고개를 흔들더니 대안을 말했다. “인터넷에서 보니 여자는 행정이나 간호를 배우게 해서 전쟁 시에 일할 수 있게 하자고 하던데 우스갯소리로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괜찮다고 봅니다.”
여 씨는 ROTC를 통해 많이 성장했다며 여대생들에게 ROTC 지원을 적극 추천했다. “나는 원래 말도 잘 못하고, 부끄럼도 많고, 우유부단했는데 ROTC 덕분에 리더십이 생겼어요. 지금은 토론하면 말도 잘해요”라며 “무엇보다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어요. 몸은 체력적으로 건강해졌고, 마음은 나라에 대해 배우면서 건강해졌어요”라고 그녀는 설명했다.
여 씨는 아직 진로를 정하진 못했지만 남들보다 선택지가 하나 더 많다. 기업에 장교 우대 전형도 있고, 기업들은 통상 ROTC 출신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ROTC도 하나의 취업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꼭 장교 우대 전형이 아니더라도 끈기나 이런 면에서 장교 출신이 기업에 충분히 어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그녀는 힘주어 말했다.
ROTC 생활이 재밌어서 힘든 것보다는 좋은 것밖에 생각나지 않는다는 여현경 씨는 지금 이 순간들이 모두 미래의 자산이 되고 있다고 믿는다. “다 쌓이고 있는거에요. 힘든 것도 좋은 것도..”라고 활짝 웃으면서 말하는 그녀는 이미 씩씩한 군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