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음식은 육수 내는 게 중요해요. 탕국에도, 나물에도 육수를 넣어야 맛이 나죠.” 명절 음식 만들기 요리 수업을 듣는 초보 주부들의 표정이 진지하다. 혹시라도 배운 것을 잊어버릴까 선생님의 말을 열심히 종이에 적고 있는 주부들도 보였다.
“선생님, 내가 한 고사리(나물)는 왜 질겨요?” 한 여성이 서툰 한국말로 질문을 던졌다. 그 뒤로도 어딘가 어색한 질문들이 이어졌다. 지난 11일 저녁, 부산여성회관에서 결혼 이주자를 위해 열린 ‘추석 전통음식 만들기’ 행사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한국으로 시집 온 이주 여성들에게는 아직도 명절 음식이 어렵고 복잡하지만, 30명의 ‘열혈 학생’들은 선생님을 따라서 한국의 멋과 맛을 내기 위해 열심이었다. 이들은 여기저기서 생각보다 예쁘게 빚어지지 않는 송편을 붙들고 씨름을 벌였다. 올해는 특별히 이주 여성들뿐 아니라 시부모, 남편, 자녀들이 함께 행사에 참석해 더욱 활기가 넘쳤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하지만, 이들에게는 여전히 낯설고 어려운 게 추석이다. 추석은 그들에게 요리도 요리지만 문화 차이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더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이주 여성 중에서 베트남과 중국에서 시집 온 두 명의 ‘한국 며느리’들을 시빅뉴스가 만났다.
드엉녹민(38) 씨는 베트남을 떠난 지 벌써 5년이 된 ‘한국 아줌마’다. 요즘은 한국 사람들도 집에서 직접 쌀가루를 반죽해 송편을 만드는 경우가 드문데, 드엉녹민 씨는 이번 명절에도 탕국과 나물, 튀김, 송편까지 손수 만들 예정이다. 이는 옆에서 하나하나 가르쳐주는 시어머니가 있기에 가능하다.
그래도 요리에 자신 있는 눈치는 아니다. 베트남에는 한국 명절 때 먹는 국과 부침 요리가 흔치 않기 때문이다. 사실 베트남에는 추석이라는 명절도 없다. 베트남의 가장 큰 명절은 크리스마스인데, 베트남 사람들은 그때 가족이 어울려 자유롭게 즐기고,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대로 만들어 먹는다. 그래서 한국의 제사 문화나 차례 음식, 성묘 등이 그녀에게는 여전히 새롭고 신기하다.
명절은 즐겁지만, 온 가족이 모이면 베트남 가족 생각에 마음이 먹먹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밀려오는 향수 때문에, 그녀는 처음 한국에 왔을 때 하루가 멀다 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고 한다. 특히, 말도 안 통하고, 문화도 다르다 보니, 생활하는 모든 것이 그녀에게는 어렵고 힘들었다.
중국에서 온 숴옌쌍(38) 씨도 같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돼 병원에 간 적이 있는데, 몸이 아픈데다가 의사 소통까지 안돼서, 너무 답답하고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또 숴옌쌍 씨는 처음에 특히 한국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고생했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먹기도 힘들었던 한국 음식을 꽤 먹고 만들 수 있는 3년차 주부가 됐다. 고향에서 만두를 빚던 실력으로 한국 사람보다 더 예쁜 송편을 만드는 그녀지만, 아직도 그녀의 입에는 송편보다는 월병이 더 익숙하다. 중국 전통 음식인 월병은 중국의 중추절에 만들어 먹는 둥근 밀가루 빵으로 환한 보름달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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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숴옌쌍 씨가 '추석음식만들기' 행사에서 송편을 빚고 있다. 오른쪽은 결혼 이주 여성들이 만든 송편이다(사진: 취재기자 조나리). |
한국에서는 반달을 닮은 송편을 만드는 반면, 중국은 보름달을 닮은 둥근 월병과 둥근 과일을 먹으며 중추절을 보낸다. 숴옌쌍 씨는 “중국에서 추석이 되면, 가족들과 함께 중국 명절 음식을 먹고, 달에 소원을 빌며, 밤하늘을 보면서 밤 늦도록 얘기를 나누었다”며 추억을 회상했다. 그녀는 “두 나라 추석이 비슷하지만, 한국 며느리들은 음식을 많이 해야 해서 재미가 없고 힘들다”고 말했다. 그녀도 설날과 추석이 끝나면 온 몸이 쑤시는 ‘명절병’을 앓는다. 영락없는 한국 며느리다.
매번 명절이 지나갈 때마다, 이주 여성들에게 한국은 점점 더 가까워진다. 그러나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할 것 같지만, 시간이 갈수록 커지는 걱정도 있다. 그것은 내년이면 다섯 살이 되는 드엉녹민 씨의 딸 아이가 초등학교에 가서 받게 될지도 모르는 차별 걱정이다. 아이들이 당하는 차별은 결혼 이주 여성들의 모임에 가면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대화 주제이다. 드엉녹민 씨는 “아이가 아직 어려서 차별 없이 다 잘 어울리지만, 초등학교에 가면 괴롭힘을 당할까 걱정이다. (이에 대해서) 엄마로서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너무 미안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항상 따뜻하지만은 않은 한국 사람들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드엉녹민 씨와 숴옌쌍 씨는 인터뷰 내내 한국에 대한 나쁜 말보다 좋은 말을 더 많이 하려고 애를 썼다. 그들은 풍성하고 넉넉한 한가위 같은 인심으로 한국 사람들이 다문화 가정을 안아주길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