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만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고부갈등이 최근 사회문제로 자리 잡은 가운데, 최근 결혼을 앞둔 커플들 사이에서 명절을 맞아 ‘예비’ 고부갈등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직장인 박모(26, 경남 창원시) 씨는 4년 동안 교제한 연상의 남자 친구와 결혼을 약속했다. 오는 3월 초로 상견례 날짜도 잡았다. 결혼식은 올 12월쯤 치를 것으로 예정했다. 주위 사람들은 박 씨에게 "식장에 들어가기 전까진 아무도 모른다"고 조언했지만, 박 씨는 마냥 행복했다.
그러나 행복도 잠깐, 박 씨는 설을 앞두고 남자 친구와 크게 다퉜다. 남자 친구 어머니가 박 씨에게 명절에 집에 잠깐 들릴 것을 권했기 때문. 남자 친구 할머니가 예비 손주 며느리를 보고 싶다고 말한 것이 화근이었다. 박 씨는 “명절에는 우리 가족들과 오붓하게 보내고 싶다”며 거절했지만, 남자 친구는 “우리 어머니가 많이 서운해한다”고 맞받아치면서 언성이 높아졌다.
박 씨는 “안 가자니 미래의 시어머니에게 미운털이 박힐 것 같고, 가자니 결혼도 안 했는데 불편한 자리에서 눈칫밥 먹을 것 같았다”며 “예비 시어머니가 벌써 이렇게 호출하는데 결혼하면 더 하실 것 같아 이참에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려 한다”고 토로했다.
명절을 앞두고 예비 시어머니와의 소소한 갈등에 얼굴을 붉히는 이는 비단 박 씨만이 아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명절에 꼭 남자 친구 집에 가야 할까요?”, “예비 시어머니의 설 호출” 등 관련 글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오는 6월로 예식 날짜를 잡은 30대 A 씨도 그중 하나다. A 씨 커플은 아직 양가 친척들에게 인사를 올리지 못한 상태. 올 추석 전 결혼을 예정하고 있어서 이번 설이 A 씨가 마음놓고 즐겁게 자기 기족과 보내는 마지막 명절이다. 그러나 예비 시어머니는 A 씨에게 설 연휴 집에 들러 미리 친척들과 인사 나눌 것을 부탁했다. 남자 친구도 예비 시어머니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A 씨는 “아직 정식 며느리도 아닌데 꼭 가야 하나요?”라고 온라인 커뮤니티에 고민을 털어놨다.
온라인에서 A 씨가 조언을 구하자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 대다수가 가족들과 명절을 보낼 것을 권유했다. 기혼자인 한 네티즌은 “나도 결혼 전 당시 예비 시어머니와 남편의 성화에 못 이겨 시댁에 갔다”며 “지금 생각해보니 결혼하면 싫어도 시댁 먼저 가야 하는 데 마지막 명절일수록 친정에서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것이 맞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기혼자는 “결혼식도 올리기 전에 시댁에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남자는 가부장제에 얹혀 편히 살아가겠다는 가치관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며 “만약 예비 시댁에 가면 설거지, 과일 깎기 등을 놓고 ‘내가 해야 하나?’라고 천 번을 고민할 것”이라며 현실적인 조언을 남겼다.
예비부부가 양가에 똑같이 방문할 것을 권하는 의견도 적지 않다. 특히 슬하에 딸만 둔 부모들이 섭섭함을 내비쳤다. 주부 김모(48) 씨는 “결혼 전 시댁, 큰 집 방문 충분히 있을 수 있다”며 “그러나 딸만 둘인 엄마 입장에선 예비 사위도 똑같이 우리 집에 들렀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뜨거운 반응을 다소 이해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최모(29) 씨는 “물론 여자친구의 의견을 가장 존중한다”며 “그래도 명절 연휴 중 하루 잠깐 남자 집에 들러 밥 한 끼 먹는 일이 그렇게 힘들고 고민할 일인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주부 한모(51) 씨는 “우리 세대는 결혼 전에 얼굴 비추는 것을 예의라고 생각했다”며 “서로 한 발짝만 물러서면 되는 데 사소한 문제로 굳이 싸워야 하나”라고 혀를 찼다.
예비 고부갈등 논란을 전문가는 어떻게 바라볼까. 서울 가정문제상담센터 김미영 소장은 예비 며느리는 관계가 확정되지 않은, ‘아들의 손님’이라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결혼식을 올려야 커플의 관계가 확정되는 것”이라며 “며느리가 시댁에 가는 행위는 관계가 맺어진 이후에 부여되는 의무라고 말했다.
김 소장은 이어 갈등 발생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예비 남편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김 소장은 “아직 정식 부부의 관계가 아니니 예비 시어머니가 먼저 나서기보다는 예비 남편을 통해 권유하고, 결정권은 예비 며느리에게 주는 것이 갈등을 줄이는 한 방법”이라며 “낯선 상황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마주하는 어려운 상황에 놓인 예비 며느리를 시어머니가 이해하고 아껴주는 마음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