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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을 쓴 내가 아닌, 진짜 ‘나를 찾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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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을 쓴 내가 아닌, 진짜 ‘나를 찾아줘’
  • 부산광역시 안수진, 이정은
  • 승인 2014.11.03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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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면을 쓴 내가 아닌, 진짜 ‘나를 찾아줘’> ‘쏘쿨’이 대세인 시대다. 어떤 것에도 개의치 않는 쿨한 태도가 멋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쿨함’은 우리 사회에 어느 정도 미덕으로 여겨진다. 무슨 일만 있다 하면 “그냥 쿨하게 넘겨”, “쿨하게 잊어버려.” 세상에 진짜로 이렇게 쿨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 몇이나 될까? 우리는 애써 신경 쓰지 않는 ‘척’, 밝은 ‘척’하며 남에게 쿨하게 보이기 위해 감정을 숨기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영화 <나를 찾아줘>는 닉과 에이미가 결혼 후 갈등을 겪으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닉은 한 파티에서 우연히 에이미를 만난다. 그저 그런 작가인 닉과는 다르게, 에이미는 인기 소설의 실제 모델로서 유명세를 펼쳤던 작가다. 닉은 아름답고, 능력 있고, ‘쿨하기까지 한’ 에이미에게 빠져들고 이내 둘은 결혼에 골인한다. 여느 커플과 같이 신혼은 꽤 행복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의 사랑은 점점 식어가고 갈등과 권태기를 겪게 된다. 사실 에이미는 쿨함과는 거리가 먼 여자다. 바람난 남편에 집착하고 남편의 불륜상대인 어린 여성에게 질투하는 평범한 사람이다. 하지만 에이미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쿨한 척, 모르는 척 행동한다. 남편이 에이미의 그런 쿨한 모습을 사랑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남편 닉 역시 마찬가지다. 어느 잡지사의 삼류 작가인 그는 원래 경제적으로 무능하고 게으르기까지 하지만, 에이미 앞에서는 위트 있고 매력적인 신사다. 서로가 완벽한 이상형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상대방의 마음에 들기 위해 진짜 자신을 숨긴 채 거짓된 모습으로 살아오던 두 사람은 결국 거짓된 연출로 인해 파경의 위기를 겪게 된다. 왜 사람들은 자신의 진짜 모습을 숨긴 채 쿨한 척 가면을 쓰고 살아갈까? 미국의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사람의 본성 가운데 가장 강렬한 것은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기를 갈망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현대사회는 외향적인 성격을 선호한다. 면접이나 공공장소에서의 발표, 자기 의견 피력 등 사회의 여러 방면에서 외향적인 사람이 인정받는다. 그렇다보니 내향적인 사람은 자신의 성격을 숨기고 외향적으로 바뀌려고 노력한다. <나를 찾아줘>의 닉처럼 만인이 원하는 세련된 사람이 되기 위해 가면을 쓰는 것이다. 첫인상으로 갖게 되는 선입견이나 이미지는 가면을 쓰고 살아가게 하는 또 다른 원인이다. 우리는 대개 첫인상에서 그 사람의 성격과 됨됨이를 판가름한다. 몇 마디 나눠보지도 않았는데 마치 상대방에 대해서 모든 걸 아는 것처럼 말하고, 생각했던 이미지와 다르면 멋대로 실망한다. 그렇다 보니 타인이 가진 편견에 자신을 맞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나를 찾아줘>에서 남편 닉의 편견에 맞춰 쿨한 척 살아가는 에이미처럼. <나를 찾아줘>는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진실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것은 결혼 생활에 국한되지 않는다. 어느 인간관계에서든, 쿨함이나 세련된 이미지에 현혹되거나 그런 이미지로 상대를 붙잡아 두려 한다면 결국 그들은 연기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물론 살다보면 적당한 ‘사회생활용 가면’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을 공유하는 관계에서 언제나 포장된 삶을 사는 것은 보통의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일 아닐까. 위태롭게나마 사랑이라는 관계에 놓인 사람 중 누군가 연기를 포기하는 순간, 속을 다지지 못한 관계는 무너지고 말 것이다.                                                                                                          부산광역시 북구 안수진 <미디어가 연출한 세상에서 진실을 본다는 것> 매일 쏟아지는 이슈와 루머들, 우린 미디어를 통해 쏟아지는 정보를 얼마나 신뢰할까? 또 우리는 어떻게 진실을 판단해야 할까? 미디어는 실제 현실이 아닌 부분적인 세상만 우리에게 보여준다. 심지어 그것마저 사실적 보도보다 우리의 시선을 끌기 위해 선정적으로 보도하기 바쁘다. 우리는 그렇게 미디어가 연출해낸 세상의 모습을 실제 세상인 양 그것이 진실이라 믿으며 살아가고 있다. 영화 <나를 찾아줘> 속 미디어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객관적으로 전달하기보다는 시청자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자극적인 면모만을 부각해 전달하는 전형적인 ‘옐로우 저널리즘’의 틀을 따른다. 미디어가 의도된 연출로 만든 왜곡된 모습에 속아 넘어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함께 말이다. 영화에서 남편은 사라진 아내의 행방을 찾기 위해 기자회견을 한다. 유명인이었던 아내의 실종은 연일 TV에 도배되고, 세간의 이목을 끌게 된다. 하지만 미디어는 실종사건의 본질 보다, 그 사건을 자신들이 원하는 틀에 끼워 맞추기 바빴다. 확실하지도 않은 단서로 뉴스에서는 남편인 그를 살인 용의자로 만들었고, 전 국민은 그를 비난하기까지 이르렀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생방송처럼 사람들에게 보여줬고, 그가 행동하는 모든 것에 선정적으로 의미를 부여해 그를 더욱 궁지로 몰아갔다. 마치 그가 실제로 아내를 죽인 살인자라고 사람들이 믿도록 만들었다. 어느새 사람들에게, 정말 남편이 아내를 죽인 것인지, 진실을 무엇인 지에 대해서는 더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사건의 본질은 사람들에게 ‘아웃 오브(out of) 안중(心中)’인 셈이 되었다. 미디어는 잘 짜인 각본을 연출하여 우리에게 보여주기도 한다. 영화 <나를 찾아줘>의 극 후반부에는 살인 용의자로 궁지에 몰린 남편이 자신에게 날이 선 여론을 잠재우려고 의도적으로 토크쇼에 출연한다. 자신의 외도를 반성하는 척하고, 아내를 여전히 사랑하는 척 시청자들에게 감정을 호소하며 자신의 진심을 믿어달라고 말한다. 미디어는 그의 가식을 진심으로 포장해서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결국, 미디어의 연출은 그에게 살인자라고 욕하던 사람들이 그에게 동정표를 던지는, 다소 아이러니한 반응을 이끌어 내는 데 성공한다. 이런 장면에서 미디어가 사건을 어떻게 조명하고 보도하느냐에 따라 이를 받아들이는 수용자들의 시각이 달라짐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사건을 다루는 미디어의 태도에 따라 그 사건 속 당사자가 ‘선’이 되거나 ‘악’이 되는 것은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도 일어난다. 얼마 전 연예인 김부선 씨의 난방비 사건은 큰 이슈였다. 미디어는 이 사건도 난방비 비리가 아닌 김부선 씨의 폭행을 먼저 보도했다. 이에 김부선 씨는 주민을 폭행한 ‘악’이 되어 대중들에게 비난을 샀다. 나중이 돼서야 아파트 난방비와 관련한 비리들을 밝혀내는 과정이었다고 밝혀지면서 그녀는 다시 ‘선’이 되었다. 한마디로 미디어가 자신의 의도대로 수용자들을 쥐락펴락한다는 것이다. 의도된 연출로 조작된 세상을 보여주어 수용자의 시각과 생각을 차단하는 미디어의 횡포가 오롯이 미디어만의 잘못은 아니다. 미디어에서 쏟아지는 수많은 모습과 정보를 여과 없이 받아들이는 수용자의 태도에도 그 책임은 있다. 우리는 너무 쉽게 미디어를 믿어버리고, 미디어가 조장한 분위기에 줏대 없이 흔들린다. 즉, 믿고 싶은 것만 믿어버리는 사람들의 편협한 심리는 미디어에 이용되기 쉽다는 것이다. 진실을 파헤치기보다는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데 더 관심이 많은 것이 현재 언론의 행태다. 하지만 우리는 그 속에서 미디어의 농간에 무분별하게 조종당하지 않고,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주관을 가져야 한다.                                                                                                       부산광역시 연제구 이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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