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지하철 1호선 중앙역 7번 출구에서 나와 코모도 호텔 쪽으로 10분 정도 걸으면, 부산평화방송센터가 나온다. 이 건물 1층으로 들어서면 조그만 매표소가 있고 그 앞에 초인종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이 초인종을 누르면, 직원이 나와 손님을 반갑게 맞이한다. 조그만 매표소, 초인종... 이곳은 도대체 무엇을 하는 곳일까?
부산평화방송센터 건물 1층에는 ‘씨앤씨(C&C)’라는 꼬마 영화관이 있다. 정식 명칭은 아트씨어터 씨앤씨다. 이곳은 상업적인 영화가 아닌 소규모 독립영화, 다큐멘터리, 그리고 부산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들이 만든 영화를 상영한다. 씨앤씨의 가장 큰 특징은 관객들이 원하는 맞춤형 작품을 상영한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뜻일까? 이곳은 ‘아트씨어터 C+C’라는 이름의 블로그를 통해 관객들이 보고 싶은 영화를 요청받아 상영작을 결정한다. 윤채원(21, 부산 해운대구) 씨는 2년 전 부산에 이런 극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가끔 남들이 잘 모르는 독립영화를 영화가 보고 싶을 때 이곳을 찾아간다. 윤 씨는 “내가 볼 수 있는 영화를 블로그를 통해 신청하고 내가 원하는 영화를 관람하는 이곳이 정말 좋다”고 말했다.
씨앤씨 영화관은 가톨릭센터의 후원을 받고 있다. 그래서 영화 관람료는 6,000원인데, 가톨릭 신자들은 특별 할인 혜택을 받는다. 뿐만 아니라 부산의 소규모 공연 단체인 ‘바다무대’를 후원하는 동호회 회원들도 할인을 받을 수 있다. 이 영화관이 처지가 비슷한 지역 공연단체인 바다무대를 서로 후원하기 때문이다. 씨앤씨 영화관은 바다무대 회원들과 함께 어울려 프로그램을 만들어 진행하기도 한다.
작품의 상영기간 역시 일반 영화관과 차이를 보인다. 일반 영화관은 작품의 흥행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한 영화를 짧게는 일주일, 길면 한 달 정도 상영한다. 하지만 이곳은 한 작품을 오래 트는 것이 특징인데, 길면 세 달 정도 상영한다. 현재 상영하는 작품으로는 <춘희 막이> <미라클 벨리에> <마리이야기> <노블> 등이 있다. 또 다른 차이로는 극장의 스크린과 의자다. 일반 영화관은 대형 스크린과 푹신하게 앉을 수 있는 관람석을 갖춘 반면, 이곳은 곡면 스크린과 철제 의자가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아트씨어터 씨앤씨 대표 이상영(38) 씨는 독립영화를 연출하다가 방송국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그는 직장 일을 그만두고, 다시 영화 연출하는 일을 시작했다. 부산 중앙동에서 국도예술관을 맡아 운영하다 대연동으로 옮겨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었다. 그 후, 이 씨는 사람들이 영화에 대해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현재의 위치인 중앙동에 씨앤씨 영화관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이곳은 원래 부산 가톨릭센터 소극장이 있던 곳으로 이곳을 영화·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이 씨는 관객들이 자극적, 수동적인 문화보다는 직접 찾아가 느끼는 능동적인 문화를 접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게 블로그를 통한 보고 싶은 영화 신청 제도다.
현재 독립영화 전용관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으며, 부산에는 씨앤씨 영화관을 포함해 총 4곳의 독립영화 전용관이 있다. 이 씨는 “크게 인기를 끈 영화들은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갖지만, 독립영화나 아마추어 작가들이 만든 영화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 영화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사람들이 함께 호흡하는 것이 목적이다”고 말했다.
씨앤씨 영화관은 일반 영화관처럼 많은 관객이 찾는 것은 아니지만 운영이 지속될 수 있는 이유는 영리를 목적으로 두지 않기 때문이다. 이곳은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지원을 받아 운영됐지만, 몇 년 전부터 그 지원이 끊기고, 이제는 카톨릭센터의 도움을 받고 있다. 이 씨는 가끔 영화관을 찾는 사람들에게 영화에 관한 강의도 한다. 이는 그가 이곳을 문화 공간으로 유지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이 씨는 “이 공간이 끝까지 유지되는 것이 소박한 꿈”이라며 “사람들이 많이 찾을 수 있도록 힘을 다할 때까지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씨앤씨 영화관의 가장 큰 특색은 초인종을 누르면 직원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매표소에 따로 직원을 두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매표소에 놓인 초인종은 일종의 절약의 지혜였다. 이상영 씨는 안의 사무실에서 일을 보고 매표소에는 직원이 없다. 손님들은 영화관에 오면 매표소 앞의 초인종을 누룬다. 그러면 이상영 씨가 매표소로 달려간다. 이상영 씨는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우리 영화관은 손님이 와서 초인종을 누르면 표를 파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전했다.
씨앤씨 영화관의 또 다른 특징은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소품 연극을 한다는 것이다. 그밖에도 여기서는 감독과 관객과의 대화를 갖거나, 인디 밴드를 불러 공연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한 달에 한 번 정도 무료 상영회를 갖는다. 무료 상영회에는 100명 정도의 사람들이 찾는다. 연령은 1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하다. 무료 상영회는 오든 사람들이 영화를 자유롭게 보라는 운영자의 배려가 담겨 있다.
▲ 관객과의 대화(사진: 네이버 블로그 아트 씨어터 캡쳐)
▲ 부산 인디밴드 초청공연의 모습(사진: 네이버 블로그 아트 씨어터 캡쳐)
조은설(21, 부산 금정구) 씨는 씨앤씨 영화관의 매력에 빠졌다. 이곳은 복잡하고 시끄러운 곳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조 씨는 “늘 가는 영화관에서 보는 영화가 아니라서 신선하고 좋다”며 “집에서 멀지만 시간이 나면 자주 이용하고 싶다”고 말했다.
예술영화와 독립영화를 즐기고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어 씨앤씨 영화관은 지금보다 더 북적일 것 같다. 이 씨는 “이 영화관의 미래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한 달 후에 문을 닫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영화에 대한 순수성을 잃지 않고 꾸준히 이곳만의 특색으로 꾸려진다면, 더 멋진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