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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라이딩 고수 69세 할머니의 ‘로맨스 그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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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라이딩 고수 69세 할머니의 ‘로맨스 그레이’
  • 취재기자 안우주
  • 승인 2019.11.15 16: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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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 아파 시작한 자전거로 각종 대회 상 휩쓸어
근처 사는 두 동생과 자전거로 전국 누비며 우애 다지기도
90세 넘어도 자전거 타는 날 꿈꾸며 오늘도 ‘하이킹’
“나는 내리막을 즐긴다. 스릴도 있고 올라갈 땐 적금을 붓는 기분으로 하다가, 내려올 땐 적금을 탄 것 같이 기분이 좋다. 힘들게 올라갔는데 내려올 때 정말 스릴 있다. 안 해본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이게 무슨 뜻일까? 그 뜻을 풀어줄 사람은 경남 김해에 거주하고 있는 김영덕(69) 씨다. 김 씨는 장유여성자전거회 2기로 10년 넘게 자전거를 타고 있다. 위 말은 바로 자전거 타고 언덕길을 올라가고 내려올 때의 기분을 적금에 비유한 것이다. 김 씨는 “자전거가 내 일상이다. 자전거는 내 수족이다. 가까운 마트에 가도 자전거를 타고, 딸집에 달 때도 자전거를 타고, 아마 1년 365일 중에서 날 만 좋다면 5일 정도 빼고 매일 자전거를 타는 것 같다. 짧게 타더라도 매일 탄다”고 말했다.
김영덕 씨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자전거에 대한 얘기를 끝도 없이 풀어내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안우주).
김영덕 씨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자전거에 대한 얘기를 끝도 없이 풀어내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안우주).
자전거와 함께한 세월만큼 김 씨의 수상 경력은 화려하다. 2011년 제22회 경남 생활체육 자전거대회 도로 여자 60대 부문에서 1위 수상을 시작으로, 2018년 제29회 경상남도 생활체육대축전 도로 60대 부문 1위 등 1, 2위를 번갈아 차지하며 실력을 보였다. 특히 2014년에는 전국체전과 경남생활체전과 같은 자전거대회에서 3회나 수상했다.
김영덕 씨의 화려한 자전거 대회 수상 경력을 증명하는 상장들(사진: 김영덕 씨 제공).
김영덕 씨의 화려한 자전거 대회 수상 경력을 증명하는 상장들(사진: 김영덕 씨 제공).
많은 대회가 있었지만, 특히 기억에 남는 대회가 있다. 바로 강원도 속초에서 열렸던 전국자전거대회다. 김 씨가 이 대회를 나갈 때 장유여성자전거회는 규모가 작았다. 그래서 60대 부문에 나갈 수 있는 사람이 김 씨를 포함해 단 두 명밖에 없었다. 김 씨는 그렇게 출전했다. 김 씨는 “대화장에 가는 도중에 자전거 경기 중 발이 땅에 닿으면 실격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경기가 시작되고 구불구불한 경기코스를 엄청 열심히 자전거 타고 올라갔다. 다른 사람들은 쉬면서 천천히 가는데 우리는 발이 땅에 닿으면 안 되는 줄 알았기 때문에 한 번도 안 쉬고 계속 달렸다. 그 대회에서 2등을 했다. 대회에 참여한 사람들이 많아서 시상식을 코스 끝 산 정상이 좁아서 그곳에서 못하고 차를 타고 가다가 넒직한 정자에 모여서 상을 받았다. 그런 것들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김영덕 씨가 각종 자전거 대회에서 받은 메달들(사진: 김영덕 씨 제공).
김영덕 씨가 각종 자전거 대회에서 받은 메달들(사진: 김영덕 씨 제공).
김 씨는 1951년 2남 3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그녀 고향은 전남 고흥군 외딴 섬 나로도다. 초등학교는 그 섬에 있었지만 중학교가 없어서, 그녀는 배를 타고 다른 큰 섬에 있는 중학교를 다녔다. 17세에 여수로 이사를 갔고,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진학하지 않고 집안일을 도왔다. 22세에 결혼해 부산으로 넘어가 1남 2녀를 낳고 30년간 지냈다. 그러다 2007년, 경남 김해의 한 주택으로 이사를 갔고 그곳에 땅이 있어 남편과 함께 텃밭을 만들었다. 텃밭 규모는 점점 커져 농사 수준이 됐지만 즐겁게 일했다. 그러나 무리한 노동으로 건강이 악화됐다. 2년 후 김 씨 딸이 텃밭 때문에 건강이 무너지는 어머니 모습을 보며 운동을 권했고, 그 중에서도 평소 관심 있게 봤던 자전거를 추천했다. 딸의 권유를 들은 그녀는 곧바로 자전거를 타게 됐다. 김 씨는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일에 대해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해본 일 중에서 제일 잘 했다고 생각되는 게 자전거였다. 너무 좋다”고 말했다. 김 씨는 부산에 있을 때 허리디스크가 있었고 무릎 관절도 상태가 나빴다. 또 김해에 오고 텃밭을 일구기 시작하면서 허리 통증이 심해졌다. 그러다 자전거를 타게 됐고 그 덕분에 건강을 많이 회복했다. 김 씨는 “주택 3층에 살고 있는데 예전에는 계단을 올라갈 때 난간을 잡고 올라갔다. 그런데 자전거를 몇 년 타면서 올라갈 때는 자전거를 어깨에 메고 올라가고 내려올 때도 자전거를 메고 내려온다. 그러니 건강이 좋을 수밖에 없다. 건강에 자전거가 정말 좋다. 폐활량도 엄청 좋아졌다. 예전에는 숨이 차서 50m도 못 뛰어갔다. 이젠 나이가 들었는데도 뛰어도 숨이 안 찬다. 숨은 차지 않아 너무 좋다”고 말했다.
김영덕 씨가 힘차게 자전거를 타고 있다(사진: 김영덕 씨 제공).
김영덕 씨가 힘차게 자전거를 타고 있다(사진: 김영덕 씨 제공).
김 씨는 지금은 고향에서 공교롭게도 모두 이 지역으로 시집은 두 여동생과 함께 자전거를 탄다. 여동생 중 큰 동생 김채례(59) 씨는 김 씨와 같은 지역에 살고 있다. 큰 동생은 김 씨와 함께 스포츠센터에서 교육하는 자전거 수업을 수료했고 장유여성자전거회 2기가 됐다. 몇 년 후 두 자매의 모습을 보고 역시 김해와 가까운 경남 양산에 거주하던 작은 동생 김채임(56) 씨도 자전거회에 합류했다. 세 자매는 자전거회 일정이 있을 때마다 모인다. 김 씨는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린지 모르겠지만 회원들이 굉장히 부러워한다. 자매는 각각 따로 살다가 여기 모여서 함께 자전거를 타게 되니까 그 즐거움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내가 죽었다 다시 태어나도 자전거는 꼭 탈 거다”라고 말했다.
왼쪽부터 김영덕 씨, 작은 동생 김채임 씨, 큰 동생 김채례 씨(사진: 김영덕 씨 제공).
왼쪽부터 김영덕 씨, 작은 동생 김채임 씨, 큰 동생 김채례 씨(사진: 김영덕 씨 제공).
김 씨는 2009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자전거를 타고 있다.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그녀가 자전거를 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동생들 덕분이다. 김 씨는 “동생들이 나보다 젊다 보니까 자전거로 어디를 가자며 리드를 한다. 따라가면 후회하지 않는다. 동생들이 있기 때문에 믿고 갈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이유는 자전거회 회원들 덕분이다. 김 씨는 “주변에 예쁜 동생들이 함께해서 마음이 같이 젊어진다. 자전거를 이끌고 나가면 너무 예쁜 동생 후배들이 많아서 그 속에 있으면 나도 함께 젊어지는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김 씨는 2018년 1년간 장유여성자전거회 회장을 맡았다. 자전거를 특출나게 잘 타서 회장이 된 게 아니라 나이도 있고 그 만큼 기회도 적다고 생각한 동호회 사람들의 권유로 그렇게 됐다. 회장을 맡은 일에 대해, 김 씨는 “동생이 적극적으로 도와준다고 해서 동생을 믿고 시작했다. 나는 모르는 게 많았다. 대신 총무나 회원들이 많이 도와줬다. 그래서 무사히 1년을 잘 마칠 수 있었다. 회장 일을 잘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많은 회원들 속에서 회장을 맡았다는 사실이 보람찼다”고 말했다. 김 씨는 나서서 일을 주도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적극적으로 밀어붙이지 못한다. 회장이 됐을 때 하고 싶은 일이 몇몇 있었지만 이런 성격 때문에 그런 일을 진행하지 못했다. 그래도 자전거회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다. 김 씨는 “내가 좋아하는 클럽이 자전거만 잘 타고 등수만 높은 게 아니라 행사하는 곳에서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우리 클럽만 독보적으로 보이는 것보다는 다른 팀과 함께 어우러진 모습을 보고 싶다. 장유여성회는 자전거만 잘 타는 줄 알았는데 행사에 봉사하는 모습도 참 보기 좋더라는 말도 듣고 싶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자전거를 타면서 기억에 남는 장소는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가장 좋았던 장소는 세 자매가 함께 했던 장소들이다. 김 씨는 두 동생과 울릉도에 갔다. 자전거를 타고 울릉도 해안도로를 달리고 있었는데, 도로 공사가 진행 중인 바람에 길이 끊겼다. 길을 되돌아가면서 넘어갈 방법을 지역민에게 물어봤다. 지역민이 험난한 길이 있지만 여자들은 무리라고 했다. 어떻게 대처했냐는 질문에, 김 씨는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자전거가 갈 수 없는 길은 자전거를 메고, 길이 좋으면 타고 가서, 결국 길을 넘어갔다”고 말했다.
경남 김해 가야대 인근 꽃밭에서 자전거 라이딩 중 세 자매가 해맑게 웃고 있다(사진: 김영덕 씨 제공).
경남 김해 가야대 인근 꽃밭에서 자전거 라이딩 중 세 자매가 해맑게 웃고 있다(사진: 김영덕 씨 제공).
또 다른 장소는 고향 나로도다. 이 역시 세 자매가 함께 했다. 자전거로 나로도를 한 바퀴 돌면서 예전에 살았던 집도 방문했다. 문이 열려있어 자연스럽게 들어간 집은 축간이 세워지고 문 앞에 차도가 생기는 등 조금 변했지만 대부분이 그대로였다. 김 씨는 고향 섬에 대해 “어렸을 땐 섬이 높고 커보였다. 그런데 다시 동생들과 섬에 갔을 땐 섬이 조금 가라앉았나 싶었다”고 말했다. 자전거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김 씨도 실수를 한 적이 있었다. 김 씨가 자전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처음 동호회에 들어가면 누구나 자전거 수업을 받는다. 보통 스포츠센터 운동장에서 자전거 타는 요령을 수업한다. 그러다 실제 도로에서 수업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김 씨는 자기 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밤에 연습을 하러 나갔다. 남편이 걱정할까봐 남편이 잘 때가지 기다렸기 때문이다. 밤 10시, 김 씨는 어두컴컴한 길에서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길은 일직선으로 곧게 뻗어가다 양 갈래로 나뉘었다. 김 씨는 순간 왼쪽으로 갈지 오른쪽으로 갈지 고민했고, 그 사이에 자전거가 미끄러져 넘어졌다. 그리고 김 씨는 자전거에 깔렸다. 김 씨는 “이 날 무릎과 팔꿈치가 많이 까졌다. 하지만 이렇게 연습했기 때문에 지금처럼 자전거 도사가 됐다”고 말했다. 자전거를 타면서 딴 생각을 하다가 실수한 적도 있다. 내리막길을 즐겁게 내려오던 김 씨는 순간 시선을 차에서 내리는 귀여운 아이들에게 돌렸다. 그리고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그 때 자전거가 넘어지면서 김 씨는 엉덩방아를 찧었다. 김 씨는 “멍이 새파랗게 들어서 오래갔다. 자전거 타면서 딴 생각하면 안 되겠다고 다짐해서 더 조심히 타게 됐다”고 말했다. 김 씨는 매일매일 자전거를 타며 열심히 살고 있다. 그런 김 씨를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다. 바로 남편이다. 김 씨는 꿈이 있었다. 그 꿈은 노후에 남편과 같이 자전거를 타고 가는 데까지 가서 해가 지면 어디든 가서 하룻밤을 지내고 다음날에 또 자전거를 타고 가서 고향까지 가는 것이었다. 남편은 아내 권유에 자전거를 전문적으로 배우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연습 중 양 쪽 팔꿈치를 다치면서 자전거 타는 것을 중단했다. 김 씨는 “양쪽 팔을 다치니 이제 별로 타고 싶어 하지 않더라. 그래서 그 꿈이 깨져버렸다. 그래서 동생들과 계속 자전거를 타게 됐다. 나도 남편이 두 번 다치고 나니까 권유하기 좀 그랬다”고 말했다. 대신 남편은 김 씨를 응원하는데 ‘매진’하고 있다. 김 씨가 자전거를 타러 갈 준비를 하고 있으면, 남편은 자전거를 대기시켜 놓는다. 또 김 씨가 입상을 했을 때 좋은 말도 많이 해준다. 김 씨는 자전거 타는 일이 주된 업이지만 다른 일도 있다. 바로 텃밭을 가꾸는 것이다. 텃밭 때문에 김 씨의 건강은 악화돼 자전거를 타게 됐음에도, 김 씨는 계속 텃밭을 가꾸고 있다. 김 씨는 “텃밭을 가꾸다가 자전거를 알게 됐다. 그러다보니 자전거를 타면서 밭일도 계속 하고 있다. 자전거를 먼저 탔으면 텃밭을 일구지 않고 동호회 사람들과 함께 여기저기 더 많이 다녔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씨는 “텃밭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남편과 함께 힘들게 일군 텃밭을 갑자기 포기하기 좀 그렇더라. 또 심어 놓으면 신선한 작물들을 바로 얻을 수 있으니 좋다. 그런 맛에 계속하고 있지 않나 싶다. 또 많이 뽑으면 자식들 친구들에게 나눠주는 게 좋다”고 말했다. 김 씨의 바람은 자전거를 계속 타는 것이다. 한 번씩 아플 때면 자전거를 못 탈까 걱정한다. 60대 초반 때만 해도 김 씨는 자전거를 계속 탈 수 있을까 걱정했다. 그러나 제주도 ‘환상의 길’에서 자전거를 타던 93세 여성의 인터뷰를 TV에서 보고 마음을 다잡았다. 김 씨는 “93세 할머니 인터뷰를 들어보니 매일 자전거를 탔다고 했다. 그 분을 보면서 자신감이 생겼다. 그 분을 보니까 90세가 넘어도 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자전거를 탄다면 계속 자전거를 탈 수 있겠다”고 말했다.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다. 부지런히 노력하는 사람은 뒤처지지 않고 계속 발전한다는 말이다. 김 씨는 59세에 자전거를 시작했지만 10년간 꾸준히 자전거를 타면서 성장했다. 그 결과는 수많은 상들이 증명하고 있다. 자전거를 분신처럼 여기는 그녀가 앞으로 보여줄 행보는 앞이 창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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