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시간에 자전거 타기, 양궁 경기 도입...체육 싫어하던 여학생들 선풍적 참여
체육복 디자인 공모전 개최...단점 보완해 입고 싶은 체육복 디자인 내놔 제작키로
“체육 시간의 가치를 찾는 ‘부산체육교과연구회’ 활동 널리 알리고 싶다” 희망
여학생들에게 체육활동이란 벤치에 앉아서 남학생들이 체육하는 것을 구경하거나 친구들끼리 수다를 떠는 게 통상적이다. 그런데 땀 흘리기 싫어하는 여학생이 체육시간만 되면 헐레벌떡 뛰어 나가고, 체육수업이 끝나는 ‘딩동댕동’ 종이 울리면 아쉬워하는 학교가 있다면 매우 신기한 일일 것이다. 그 신기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곳이 실제로 있다. 부산 삼성여고다. 여학생들의 자발적인 체육활동을 이끌어내기 위해 다양한 체육수업을 시도하고 있는 별난 체육교사의 흥미진진 도전 이야기가 있다.
주인공은 부산 사하구에 위치한 삼성여고 체육교사 김정욱 씨다. 입시에 직접적으로 반영되지 않는 예체능 과목들은 뒤로 밀릴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도 김정욱 씨는 자전거와 양궁수업, 그리고 체육복 디자인공모전을 여는 등 체육으로 행복한 학교 만들기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시도 중이다.
그는 왜 그냥 쉽게 체육수업을 형식적으로 하지 않고, 심지어 고3에게도 정성을 다해 체육수업을 하게 됐을까? 그 이유를 찾아 그의 학창시절로 돌아가 보자. 1981년 서울에서 태어난 김정욱 씨는 학창시절부터 체육활동을 매우 좋아하는 소년이었다. 그는 아침에 비가 오는 날이면 체육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하루 종일 기분이 안 좋을 정도로 체육을 좋아했다. 고등학교 때 체육학과를 가기로 결심한 뒤 조심스럽게 이 사실을 부모에게 알렸으나 부모님의 반대로 공대나 상경대 쪽으로 진로를 바꿔서 2001년 대학에 진학하기도 했다. 그러나 원래 꿈이었던 체육교사가 되고 싶어 과감히 대입에 재도전, 마침내 2003년 서울대학교 사범대 체육교육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내가 운동을 하고 누군가를 가르칠 때 가장 즐겁고 행복하다고 느껴서 체육교사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2009년 대학을 졸업하고, 체육에 열정이 가득했던 그는 공부를 멈추지 않고 2012 대학원 졸업을 거쳐 2014년 박사과정까지 밟았다. 그러던 중 그해 9월, 박사과정을 휴학하고 삼성여고에 오게 됐다. 그의 나이 34세였다. 그는 “박사과정을 그만 두면서 공부에 염증도 많이 느꼈고 서울에서 살기 싫다는 생각도 있었는데, 우연히 학교선배가 삼성여고 교사 자리를 추천해줘서 오게 됐다. 마침 바닷가에 살고 싶었던 아내의 의견도 있었다”고 말했다.
체육은 공부에 찌든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수업
삼성여고 체육교사 김정욱 씨는 학교에서 학생들이 참여하는 체육수업의 가치를 절대로 낮추어 보지 않았다. 심지어 고3에게도 체육수업은 공부에 찌든 고3이 단지 놀거나 쉬어가는 수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2014년 9월, 처음 삼성여고에 왔을 때 넓은 운동장이 있음에도 체육수업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이었다. 2015년 3월, 1, 2학년뿐만 아니라 3학년도 체육 과목을 이수해야한다는 교육부의 교육과정 변동으로 갑자기 3학년 체육시간이 생겼다. 고민 끝에 그는 의외로 두발 자전거를 타지 못하는 학생이 많았음을 알고, 고3 학생들에게 부담이 적다고 생각해서 자전거 타기 수업을 시작했다. 김 씨는 “더군다나 그해 처음 체육활동을 시작하는 고3학생들을 위해 학교에서 특별예산을 잡아줘서 자전거를 쉽게 구매할 수 있었고, 자전거 타기를 시작했을 때 아이들의 밝은 표정을 보고 체육수업이 꼭 필요하다고 확신하게 됐다”고 말했다.
실외골프장이 양궁장으로 탈바꿈하다
원래 삼성여고에는 김정욱 씨가 오기 훨씬 전인 2000년 운동장 한 켠에 골프수업을 하기 위한 10타석에 길이 약 25m 실외골프장이 있었다. 그런데 더 이상 골프장을 체육시간에 사용할 수 없게 됐다. 올해 5월 강풍에 와이어가 끊어지면서 골프장 그물이 내려앉은 것이다. 공을 치면 그물 밖으로 공이 나가고 예산문제로 골프장을 수리할 수 없어 골프 수업을 진행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김 교사는 마침 여학생 체육활성화와 관련된 논문에서 격렬한 신체활동을 기피하는 줄 알았던 여학생들이 경쟁하는 신체활동을 선호하는 연구결과를 읽게 됐다. 실제로 김정욱 씨가 경쟁 스포츠 수업을 해봤는데 여학생들이 좋아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결국 그는 표적을 이용한 경쟁 스포츠 양궁을 골프장에서 하기로 결심했다. 그때 우연히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민체육진흥공단이 함께 주관하는 ‘스포츠스타 체육교실’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이것은 스포츠 스타를 강사로 파견하여 원하는 스포츠 종목 강습 및 멘토링 등 체험 프로그램을 지원해주는 사업이었고, 김 교사는 여기에 신청했다.
스포츠스타 체육교실은 전국 204개 학교가 지원했는데, 덜커덕 삼성여고가 그 중 지원 대상의 한 학교로 선정됐다. 그는 “대도시는 스포츠스타 체육교실 선정 우선순위에서 배제되지만 더 이상의 골프장 사용불가, 양궁과 학업성취도의 연관성을 사연에 적어서 신청했는데 운 좋게 우리 학교가 선정됐다”고 말했다.
올해 8월 28일, 런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였던 최연주 선수가 삼성여고에 방문했다. 스포츠 스타 체육교실은 국제대회 메달리스트, 전현직 지도자, 국가대표, 선수 경력자 및 체육 전공자로 이루어진 전문강사와 함께 수업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학교에서 두 시간 동안 학생들과 최연주 선수가 양궁수업을 같이 했다.
국민체육공단에서는 고맙게도 활과 화살 등 약 100만 원 어치 장비를 지원해줬지만, 과녁판은 학교에서 준비해야만 했다. 김정욱 씨는 학교 돈은 한정적이고 과녁판이 너무 비쌌기 때문에 결국 과녁판을 스스로 만들자고 결심했다. 학교 안에 있는 ‘무한 상상실’이라는 목공실 선생님을 찾아가 과녁판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지만, 목공실 선생님도 양궁 과녁판을 본 적이 없고 설계도가 없어서 만들기 어렵다고 했다. 포기를 모르는 그는 “미술 잘 하는 학생에게 스케치를 떠 달라고 부탁했는데, 기가 막히게 잘 그려서 줬다. 그 후 스케치 사진을 보고 목공 선생님과 함께 직접 양궁판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지금도 양궁수업은 여전히 실시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김정욱 씨는 일반인이 접하기 쉽지 않은 스포츠 양궁을 운 좋게 대학교에서 한 차례 배운 적이 있어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수월했다. 그는 “옛날에는 골프장 가자고 하면 학생들이 싫어했는데, 지금은 양궁 하러 가자고하면 좋아한다. 내가 힘들어도 뿌듯하다”고 말했다.
내 손으로 디자인하는 삼성여고 체육복
9월, 김정욱 씨는 학교체육복 디자인 공모전을 열었다. 김정욱 씨는 삼성여고 체육복 원단이 면이라서 무릎도 나오고 헤지면 후줄근해 보이는 게 불만이었다. 멋에 민감한 여고생들이 스스로 입고 싶은 체육복을 디자인하게 시키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김 씨는 “원래 체육복 디자인을 바꿀 때는 업체로부터 시안이 나오면 그 중에서 하나를 학교가 선택하는 방식이지만, 학생들로부터 디자인을 받아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이 제출한 8개팀의 포트폴리오 중 투표로 한 개의 디자인을 선정했다. 선정된 디자인에서 공모전에 참가한 모든 학생들과 선생님이 기존 체육복의 단점을 보완하고 수정하기를 반복했다. 최종 완성된 체육복 디자인은 발목에 밴딩이 있는 조거팬츠가 아닌 일자바지로 하되, 밑단 사이즈 조절을 도와주는 조임끈인 코드락을 안 보이게 안으로 넣었다. 코드락은 오른쪽 바깥과 왼쪽 바깥으로 내면 양반다리할 때 코드락이 걸려서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을 반영하여 코드락을 뒤로 뺐다. 김정욱 씨는 “아이들이 들고 온 체육복 디자인 디테일에 놀랐다”고 말했다. 디자인 최종 승인이 나고 업체로부터 샘플이 들어오면 포토폴리오에 선정된 학생들과 선생님이 함께 회의를 진행해서 체육복을 제작할 예정이다. 그는 “디자인에 참여한 학생들은 곧 졸업하기 때문에 체육복을 입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후배들을 위해 열심히 참여했다. 나는 틀만 짜주고 실제로는 아이들이 체육복을 만들어 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체육교사로서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
김정욱 씨는 학생들이 상시적으로 체육수업에 바라는 점, 평가 등을 할 수 있는 QR코드를 체육관에 붙여 놨다. 휴대폰으로 QR코드를 찍으면 구글설문조사 페이지로 이동하여 학생들이 설문에 참여할 수 있다. 그는 “설문조사를 익명과 실명 중 어느 것으로 할지 고민이 많았는데 실명을 쓰게 되면 아이들이 자유로운 이야기를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익명으로 했다. 조용하고 내성적인 학생들은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소극적인 학생들을 위한 장치를 마련한 것이고 수업에 반영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김정욱 씨에게는 아이들의 반응이 다른 일도 시도해 볼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아이들이 졸업, 교원평가 등을 통해서 ‘평생 못 탈 줄 알았던 자전거를 배워서 타게 될 줄 몰랐어요’, ‘체육시간이 힘들고 땀이 나지만 그래도 뭔가 배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같은 아이들의 반응이 힘이 된다”고 말했다.
앞으로 이루고 싶은 일이 더 있다면?
그 외에도 김정욱 씨는 학교에 카바디부와 입시 체육반을 만드는 등 체육활동 활성화를 위해 정성을 다하고 있다. 그는 심지어 카바디 심판 자격증도 가지고 있을 만큼 열정이 대단하다. 카바디란 여럿이 둘러싸서 한 사냥감을 잡는다는 개념의 스포츠 종목이다. 그는 “교사 임용 후 체육이나 스포츠에 대한 이미지가 앞으로 평생을 살면서 체육활동에 참여하는 시도에 영향을 끼친다는 생각으로 체육수업에 임했다. 학창시절 즐거운 스포츠 영향력을 학생들에게 길러 줄 수 있는 수업을 하려고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김정욱 씨는 체육활동을 가치 있게 생각하는 선생님들이 모여서 각자의 수업, 노하우를 공유하는 모임인 ‘부산체육교과연구회’에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는 입시체육반도 사실 그곳에서 정보를 얻고 시작하게 된 것. 김 씨는 “나보다 훨씬 열심히 체육 수업을 준비하는 사람도 많은데 부끄럽다”고 겸손을 표했다.
김정욱 씨는 언제까지 체육을 가르치는 일을 할 수 있을지,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그는 부산체육교과연구회에서 하는 일을 최대한 널리 알리고 싶어 했다. 김 씨는 “모임에 참여하는 선생님들처럼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정보를 공유하는 모임이 계속 이어나갈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주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