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격 휴가를 위한 선택, 독서와 여행
독만권서(讀萬卷書) 행만리로(行萬里路)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 의미 새겨볼 때
'디지털 뉴딜' 성공하려면 독서 기초체력 긴요
부산에서 먼저 지식·독서 강국의 길 열어보자
7월 눅눅한 일상을 털고 8월 작은 휴가 계획을 세운다. 계획없는 인생은 허망하다. 영화 <기생충>에서 송강호가 부러워한 게 ‘인생 계획’ 아니었나. 그래, 계획이 있어야지….
나의 여름 계획은 소박하다. 어디 조용한 곳에서 책이나 몇 권 읽고, 호젓하게 산책을 즐기는 정도다. 산책 중 ‘산책(山冊)’을 발견하고 도반(道伴, 길동무)이라도 얻는다면! 그런 기대나 설렘만으로도 나의 여름 계획은 포실해진다.
지천명(50세)이 되면 1년에 한 달 정도는 여행자로 살겠다는 꿈을 꾸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제라도 여행자의 꿈을 이뤄야겠다. 프랑스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셸은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란 개념으로 ‘여행하는 인간’을 해석한다. 어딘가로 떠나려는, 떠나야 하는 존재가 인간이라나.
독만권서(讀萬卷書) 행만리로(行萬里路)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 의미 새겨볼 때
'디지털 뉴딜' 성공하려면 독서 기초체력 긴요
부산에서 먼저 지식·독서 강국의 길 열어보자
책 속의 길, 길 속의 책
흔히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하지만, ‘길 속에 책이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세상사 모든 게 길이 아니던가. 사는 것도, 연애하는 것도, 공부하는 것도, 노는 것도, 죽는 것도 모두 길 위의 일들이다. 길을 읽고 받아들이려면 여행 체험이 최고다.독(讀)과 행(行)의 동행
독서와 여행, 이 두 가지는 사실 인간교육의 핵심이다. 조용헌의 설을 빌려보자. “독서만 하고 여행을 안해보면 머리만 있고 가슴이 없다. 여행만 많이 하고 독서가 적으면 머리가 적을 수 있다. 머리에 뭐가 좀 들어 있으면서 여행을 하면 새로운 장면과 상황에 맞닥뜨릴 때마다 통찰이 오고 스파크가 튄다.” 공감 백배. 서양 속담에 “자식이 귀하면 여행을 보내라”는 말이 있다. 여행은 자신이 사는 집과 고향을 떠나 나그네 또는 이방인이 되는 것이다. 호모 비아토르가 여기서 태어난다. 독(讀)과 행(行)은 ‘따로 또 같이’ 가는 개념이다.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요, 여행은 걸어다니면서 하는 독서다. 동양의 오래전 가르침은 지행합일(知行合二为一)이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을 일치시켜야 참 학문이 탄생한다고 본 거다. 행(行)함에 있어 중요한 것은 ‘무엇을 보느냐’보다 ‘어떻게 보느냐’다. 책 만 권을 읽어도 자신의 시각과 관점을 갖지 않으면 봐도 헛 본 게 된다. 시간과 공간을 남다르게 읽어내는 법을 터득하지 않으면, 아무리 먼 여행을 떠나도 눈과 마음에 담아올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무자서·부작란·무작정의 경지
선지자(先知者)들은 책을 읽으며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들으려 했다. 그렇게 도를 닦고 행한 결과, 무자서(無字書)을 쓰고, 부작란(不于蘭)을 치고, 무작정(無作亭)을 지을 수 있었다. 단순한 언어유희가 아니다. 무자서. 글자가 없는 책? 그런게 어디 있나 싶겠지만, 만지거나 볼 수 없는 무형의 책이 있다. 중국 명말 홍자성(洪自城)의 <채근담>에 이런 말이 나온다. "사람들은 글자로 쓴 책(有字書) 안에 든 뜻만 풀려고 할 뿐, 글자로 쓰이지 않은(無字書) 자연의 미와 신비로운 자연의 조화는 알려 하지 않는다…. 이러고도 어찌 학문의 깊이와 가야금 소리의 참맛을 알 수 있으랴?" ‘무자서’는 자연과 속세에서 얻는 체험과 경험, 즉 여행을 일컫는다. 독서와 여행이 내밀하게 소통하고 동행한다. 앞서 언급한 ‘독서만권 행만리로’는 바로 ‘무자서’의 경지가 아닐텐가. 시·서·화에 모두 능했던 추사 김정희. 제주도의 유배지에서 추사는 갈필을 세 번 꺾어 난을 치는 ‘부작란(未作蘭)’을 그렸다. 당시 추사의 마음의 풍경을 담은 걸작이다. 난을 그리고도 그리지 않았다니 무슨 까닭인가. 추사는 스스로 "난을 치지 않은 지 스무 해 만에 뜻하지 않게 깊은 마음속 하늘을 그려냈다"는 설명을 덧붙여 놓았다. 제대로 그리지 않고도 그렸다고 우기는 화공이 있는가 하면, 그려놓고도 그리지 않았다고 물러서는 화가가 있음이다. 70평생 열 개의 벼루를 갈아 없애고 1000자루의 붓을 다 닳게 했다는 추사. 그는 글을 쓸 때 마음에 들 때까지 계속 쓰고 또 썼다고 한다. 그렇게 수행 정진해 마침내 완성한 것이 추사체(秋史體)다. 추사의 걸작 <세한도>(국보 제180호)는 시공을 초월해 변주되는 정신 유산이다. <세한도>를 보고 시인은 ‘추사체로 뻗친 길’을 찾아내고, ‘매웁고도 아린 향기 자오록한’(유안진) 묵향을 맡는다. 독서가 주는 그윽한 선물이다. <완당 평전>을 쓴 유홍준 교수는 “추사는 한국인으로서 자기 분야(시·서·화)에서 세계 최정상을 차지한 몇 안 되는 위인 중 한 분”이라고 평한다. ‘추사를 읽는 날은 밤이 짧다’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디지털 뉴딜과 독서기본소득
“좋은 책을 읽는 것은 과거의 가장 뛰어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과 같다(데카르트)." “하버드대 졸업장보다 더 소중한 것은 책 읽기 습관이다(빌 게이츠)."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현실은 냉랭하다. 문화체육관광부 2019년 국민 독서 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 성인의 연간 독서량은 7.5권이다. 독서율로 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 수준. 학생들의 교과서를 제외하면 독서량은 더 떨어진다. 책을 읽는 성인 58%가 자신의 독서량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다. 지식·독서 강국은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 최근 정부가 내놓은 한국형 뉴딜 정책에서 작은 실마리를 찾아보자. 정부는 디지털 뉴딜의 네 분야로 D.N.A(데이터, 네트워크, 인공지능) 생태계 강화, 교육 인프라의 디지털 전환, 비대면 산업 육성, SOC 디지털화를 제시했다. 이 과제를 이루려면 국민적 독서 역량, 독서 기초체력을 키워야 한다. 그것도 피부에 와닿게 구체적으로. 디지털 미래의 성패는 ‘생각하는 힘’에 달려 있다.저작권자 © CIVICNEWS(시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