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김모(47, 경기도 파주시) 씨는 지난해 여름 가족들과 제주도 함덕해수욕장을 방문했다가 파라솔 임대업자와 실랑이를 벌였다. 그가 개인 파라솔을 설치하자 파라솔 임대업자가 와서 자신들이 지자체에게서 해수욕장 파라솔 설치 구역을 임차했기 때문에 개인이 파라솔을 칠 수 없고, 자신들의 파라솔을 돈 주고 빌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개인 파라솔을 설치하려면 어디서 허락을 받아야 하냐고 물으니, 관리소에 가서 알아보라며 개인 파라솔 철거를 요구했다. 김 씨는 “가족들과 기분 좋게 간 휴가의 시작부터 기분이 상했다”고 그때 일에 분개했다.
대학생 신모(24, 부산 진구) 씨도 올해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지난달 26일 친구들과 부산 송정해수욕장에 물놀이를 간 신 씨는 파라솔 임대 업자의 제지로 모래사장에서 공놀이를 하지 못했다. 신 씨에 따르면, 파라솔 임대업자가 자신들이 임차한 지역의 모래사장에서 공놀이를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신 씨는 “공놀이를 하는 사람도 없고 말다툼을 하고 싶지 않아 공놀이를 그만 두었지만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고 말했다.
파라솔 임대업자의 이같은 횡포는 수년전부터 지속해서 제기되어 온 문제지만 뚜렷한 해결책이 없어 매년 전국의 해수욕장을 찾는 이용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제주 특별자치도청 홈페이지의 민원 코너에는 2009년부터 꾸준히 해수욕장 파라솔 문제가 제기되어 왔고, 부산광역시청 민원 코너에도 매년 파라솔 임대업자의 횡포에 대한 글이 올라오고 있다.
파라솔 임대업자는 무슨 근거로 해수욕장을 찾는 이용객들에게 파라솔 대여를 강요하는 것일까? 파라솔 임대업자들은 ‘관리청의 허가를 받지 않고 시설물을 설치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지자체별 해수욕장 준수사항 규정을 근거로 자신들만이 지자체에서 해수욕장 파라솔 임대 허가를 받아 장사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들은 일반 개인은 지자체의 허가를 받지 않았으므로 개인 물품을 모래사장에 설치할 수 없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부산 송정해수욕장의 한 임대업자는 “준수사항에 보면 개인 시설물은 설치하면 안 된다고 나와 있고요, 우리는 허가를 다 받고 장사를 하고 있어서 해수욕장에서는 우리 파라솔을 대여해서 사용해야 합니다”라고 주장했다.
직장인 김모(37,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씨는 2014년에 거제도 와현 해수욕장으로 휴가를 가서 그늘막과 돗자리를 설치하고 있는데 임대업자가 와서 돈을 요구했다. 그는 해수욕장에서 장비를 설치하려면 비용을 내는 것이 맞는지 의아스러웠지만 휴가지에 와서 시비하기 싫어서 임대업자들에게 돈을 냈다. 그리고 올해 해운대 해수욕장으로 휴가 온 그는 파라솔을 대여해야 한다는 임대업자의 말에 의문이 들어 고객 안내센터로 전화를 했더니, 파라솔 설치 허가 지역이 아닌 곳에서까지 파라솔을 못 치게 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해운대 해수욕장 안내센터 직원은 일반 개인은 해수욕장에 설치된 파라솔을 무조건 돈 주고 빌려야 그 그늘 아래에 개인 돗자리를 펼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임대 지역 이외의 모래사장에서는 개인 파라솔을 설치할 수 있다. 임대업자가 착각한 듯하니 조치를 취하겠다”며 임대 파라솔 강매는 옳지 않은 행위라고 설명했다.
해수욕장은 법률상 공유수면에 해당한다. 공유수면이란 국가 소유에 속하는 하천, 바다, 소호(沼湖)나 기타 공공의 목적으로 사용되는 수면을 말하는데, 이는 사적 소유가 아닌 국가 소유이다. 이용객의 편의를 위해, 해당 지자체는 공유수면 점용·사용을 허가해 파라솔 임대업을 허용하고 있다. 그리고 허가 시 임대된 모래사장 내 위치와 면적을 지정하고 있다. 하지만 파라솔 임대업자들은 허가를 받고 임대업을 한다는 이유로 허가받은 위치뿐만 아니라 모래사장 전체에 일반인들의 개인용 장비를 설치하지 못하게 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자체별로 매년 파라솔 임대업자의 횡포를 단속하고 있다지만, 형식에 그쳐 이용객들은 여전히 피해를 보고 있다. 부산 해운대구 등은 개인 파라솔 설치를 막는 임대업체에 벌점이나 과징금을 부과하고, 다음 해에 이를 반영해 해당 업체에게는 파라솔 임대를 허가해주지 않는다는 규칙을 정해 놓고 있지만, 실제로 벌점이나 과징금이 부과되는 사례는 드물다.
심지어 파라솔 임대업자 편에 서서 이용객에게 이해를 요구하는 구청 직원도 있다. 대학생 황모(25, 부산 해운대구) 씨는 담당 부서에 해수욕장 임대업자의 횡포를 따지는 전화를 했다. 담당자는 “해수욕장 개장 기간에는 여러 이용객의 편의를 위해 (임대업체가 주는 불편에 대해) 양해를 부탁한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황 씨는 “내가 계속 문제를 제기하자 담당자가 오히려 언성을 높였다”면서 “담당 부서가 이런 식으로 문제를 덮으려고 하는 것은 이용객들의 불만을 더 키우는 꼴”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해마다 파라솔 임대업자들의 횡포가 기승을 부리면서 해수욕장 이용객 수도 줄어들고 있다. 지난해 전국의 해수욕장 이용객 수는 약 9,985만 명이었지만, 올해 해수욕장 이용객은 메르스를 겪은 지난해 여름보다도 오히려 적은 추세다. 해운대 해수욕장은 지난 해 6월 개장 후 8월 중순까지 772만 명에서 올해에는 같은 기간 690만 명으로 방문객이 80여 만명이나 준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까지 부산 지역 해수욕장 이용객 감소에 대한 부산시의 공식적인 원인 분석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해수욕장의 관리 문제가 원인이라고 지적하는 이용객들이 적지 않다. 올여름 해운대 해수욕장을 찾은 대학원생 김모(27, 부산 남구) 씨는 “여름마다 해수욕장을 찾았지만, 해마다 파라솔이나 탈의실 등 공공시설의 이용료가 오르는 데다 업자들의 횡포도 심해지는 것 같다”며 “차라리 돈을 더 쓰더라도 워터파크나 다른 물놀이를 가는 게 더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해운대 해수욕장을 찾은 대학생 이모(25, 부산 진구) 씨도 “사람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는 어딜 가든 장사꾼들의 횡포가 있는 것 같다. 장삿속인줄 알면서도 매번 당하니까 장사꾼들은 그걸 당연시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매년 사라지지 않는 파라솔 임대업자의 횡포에 이용객들은 지자체가 뚜렷한 해결책을 세워 단속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관광객 정모(26, 대구시 중구) 씨는 임대업자의 횡포를 줄이기 위해서는 지자체가 단속 인력을 상시 투입해 이용객들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것을 근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부분 사람들은 공유수면이나 해수욕장 준수사항 등을 모르기 때문에 임대업자가 목소리를 높이면 반박하기 어렵다”며 “해수욕장 개장 기간 동안에는 경찰 인력이라도 배치해 이용객들이 부당한 피해를 받지 않도록 조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해운대구청 관계자는 “매년 임대업자의 횡포를 막기 위해 집중단속을 하고 민원에 즉각 대응하는 등 근절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일부 몰지각한 상인들이 이를 어기며 피해를 주고 있는 것 같다”며 “모호한 규정을 개정하고 확실한 대안을 세워 횡포를 근절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제주도청 관계자 또한 해수욕장 횡포에 “해수욕장의 파라솔 임대업자에게 지정된 금액 이상의 요금을 받지 않도록 엄중히 경고하며, 개인 파라솔 설치 문제도 읍, 시, 도에서 지도 감독에 철저를 기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