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벼리(22, 대구 북구 복현동) 씨는 최근 특이한 페이스북 그룹으로부터 친구 신청을 받았다. 그 폐이지 이름은 ‘벼리모음.’ 자기 이름과 같은 그룹이어서 친밀감을 갖고 친구 신청을 받아주고 해당 페이지에 들어가 본 그녀는 “내 이름이 특이한 줄 알았는데, 벼리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그 그룹 속에 모여 있었다”며 신기해면서도 왜 이런 페북 그룹이 생겼는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벼리모음,’ ‘은주모음,’ ‘찬영모음’ 등은 최근 페이스북에서 유행하는 그룹명이다.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이는 일명 ‘이름모음’. 계정은 페이스북 페이지 혹은 개인용으로 만들어지고, 계정 운영자들은 동명이인들에게 무작위로 친구 신청을 한다. 같은 이름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큰 거리낌 없이 가입하는 사람이 많아 친구 모집도 쉽고 빠른 편이다.
이렇게 모인 이름모음 페이스북 그룹 수는 수백 개에 육박한다. 이런 계정 운영자들은 “00님들 뭐 하세요~?” “저녁에 비 온대요!! 외출하실 분 우산 챙기세요!!!!” 등 일상적인 이야기를 통해 수많은 동명 친구들과 소통을 시도한다. 하지만 흔한 이름일수록 중복되는 페이지가 많아서 서로가 원조라 주장하는 상황도 연출된다. 그리고 더 많은 회원수를 확보하려고 경쟁하기도 한다.
이름이 같은 사람들끼리 모이는 그룹을 만들고 또 회원수 늘리기에 집착을 하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복잡한 현대 생활에서 섬처럼 고립된 삶을 꾸리는 현대인들이 공통점을 찾아 유대관계를 맺으려는 심리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진단한다.
그러나 페이스북을 이용해 수익을 창출하려는 새로운 형태의 마케팅 수단이라는 분석도 있다. 페이스북이 거대한 SNS 마케팅 플랫폼이 됐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의 친구, 팔로우, 좋아요 수가 많은 페이지는 돈으로 거래된다. 인기 있는 폐이지가 광고 운영자에게 값비싼 돈에 팔리면서, 페이스북 페이지가 새로운 수익 창출의 수단이 된 것이다.
이러한 페이스북 페이지 거래가 법적으로 문제되진 않지만, 피해는 고스란히 페이스북 이용자에게 돌아간다. 동명이인 페이지라고 무심코 가입했는데, 이용자도 모르게 불법 음란 광고에 노출되는 피해도 발생하는 것. 문수진(22, 부산 부산진구 가야동) 씨는 “재밌는 영상을 보고 좋아요를 남겼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영상은 온데간데없고 야한 만화로 바뀌어 있었다”고 말하며 당혹함을 토로했다.
페이스북에서 한창 선물이나 현금을 준다고 '좋아요'를 유도했던 페이지가 유행했던 적이 있다. 이름모음도 동명이인이라는 동질감을 이용했을 뿐, 같은 방법으로 광고 수단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 대학생 이보현(24, 부산 중구 보수동) 씨는 이런 의심에 동명 페이지의 친구 신청을 받아주지 않았다. 이 씨는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회원이 되었다가 괜히 신상이 털릴 것 같아서 친구 신청을 무시했다”며 “페북의 동명 그룹은 단순 친목용이라기에는 의심 가는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라며 불쾌함을 표했다.
반면, 단순히 재미를 위해 이러한 계정을 운영하는 경우도 있다. 은주모임 그룹 운영자는 “내 이름도 은주인데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하는 궁금증에서 시작하게 됐다”고 그룹 페이지 운영 이유를 설명했다. 찬영모임 계정 운영자도 “다른 이름은 계정이 있던데, 찬영이라는 이름만 없길래 호기심에 만들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페이스북이 여러 형태로 진화하는 가운데 ‘대신 전해드립니다’ 페이지가 여기저기에서 생긴 것처럼 이름 모음도 페이스북의 새로운 유행인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