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라는 책을 읽고 조지 오웰의 책에 관심이 갔다. 그래서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자연스레 보게 됐다. 동물들을 사용하여 은유적으로 표현된 이 책 속의 사회, 즉 동물농장을 통해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먼저 이 책은 ‘장원농장’이라는 동물농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이 농장의 동물들이 자신들이 일하는 것에 비해 받는 처우에 불만을 갖고 ‘인간’이 유일한 적임을 인지한 뒤, 농장주인 ‘존스’를 몰아내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처음에는 동물 모두가 공평하고 평등하게 지내면서 동물들 스스로가 원하던 삶을 사는 듯 보인다. 그러나 돼지들은 자신들이 정했던 규율마저 어겨가며 점점 동물들의 지도자로 군림한다. 그리고 결국 돼지들은 동물들이 적이라 불렀던 인간의 모습과 똑같이 닮아가고 그 사회는 변질되고 만다.
소설에서 돼지들은 마치 모든 동물들을 위해 위하는 척 하지만 우유나 사과를 생산해도 일부 돼지들이 독차지 할 뿐이지, 나머지 다른 동물들에게 분배가 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인간과 동물 사이의 계급이 허물어졌지만 돼지가 또 다른 지배 계급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부분을 보면서 우리 현실에서 어쩔 수 없이 계급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계급의 장벽이 무너지고 나면 곧 어떤 다른 계급의 장벽이 들어서기 마련이다. 역사적으로 봐도 과거 레닌이 볼셰비키 혁명을 일으켜서 러시아를 무너뜨리고 소비에트 연방을 만들었지만, 정부의 이름만 바뀌고 통치 형태만 바뀌었을 뿐 달라진 것은 거의 없다. 조지 오웰은 이런 부분에서 동물들의 사회를 빗대어 소비에트연방과 스탈린주의를 비판하려고 한 것이 분명하다.
어떤 문제든 해결하지 못하고 오래 놔두면 그것이 곪아서 터지기 마련이다. 조지 오웰이 이 소설을 썼던 1945년 당시부터 있었던 이러한 문제를 그 누구도 해결하지 못했고 그 누구도 해결하지 않으려 한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본다.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이러한 소유문제를 참아오며 곪았던 것이 이제는 터져 버린 것이다.
이 책에서 동물과 인간은 마치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처럼 보인다. 분명 조지 오웰도 인간에게 착취당하는 동물들의 모습을 보며 노동자 계급이나 가지지 못한 자를 떠올렸을 것이다. 우리 사회를 언뜻 돌아보면 마치 우리는 평등한 사회 속에서 누구나 공평하고 대등하게 살아가는 듯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철저한 자본주의 속에서 처절하게 살아가는 것, 아니 심지어는 이 세상에서 살아남는다는 표현이 더 맞을 수도 있겠다. 수많은 불평등과 소유정도에 따라 계급화 된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뒤돌아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지금 미국의 월街(Wall Street)를 점령한 수많은 젊은이들이 외치는 것, 그것은 바로 1%의 가진 자들이 나머지 99%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불만이다. 그리고 한국에서 반값 등록금을 외치는 대학생들 역시 가진 자들에 대한 가지지 못한 자들의 목소리라는 부분에서 비슷한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에게 유토피아는 없는 것일까? 아니다 분명 그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을 통해 조지오웰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하는데 있어 어떤 지도자들의 타락이나 부패, 탐욕, 부의 분배 등의 문제 때문에 유토피아의 실현 가능성이 파괴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설령 유토피아에 100% 다가가지 못할지라도 최대한 그 이상향에 가까이 다가가려 하루하루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