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어느 겨울 밤, 황령산 자락의 어느 찻집. 교수인 듯한 50~60대 남녀 두 명과 그 제자로 보이는 젊은 청년 대여섯 명이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둘러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으나, 표정들이 어두웠다. "이쯤에서 그만두는게 좋겠어. 1년 동안 백방으로 뛰어다녀봤는데 뭐 되는게 없잖아. 아직 여건이 성숙되지 않은 모양이야." 50대 남자가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을 내뱉았다. 분위기는 더욱 가라앉았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한 청년이 의자를 앞으로 당겨 앉으며 상기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교수님, 아무리 어려워도 한 번 시도는 해 봅시다!" 그러자 교수들과 나머지 학생들도 마치 기다린듯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그래 여기서 좌절하긴 너무 아깝잖아. 다시 시도해보자구!"
그들이 다시 추진한 프로젝트는 국제광고제 개최. 자칫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뻔했던 그들의 프로젝트는 2년 뒤인 2008년 제1회 부산국제광고제라는 이름을 달고 세상에 태어났다. 그 자리에 있었던 두 교수는 바로 부산국제광고제 현 공동집행위원장인 이의자(69), 최환진(55) 교수다.
지난 8월 22일부터 24일까지 해운대 벡스코(BEXCO)에서 열렸던 국내 유일의 광고제인 제6회 부산국제광고제는 이런 탄생 비화를 안고 있다. 참가국이 28개밖에 되지 않았던 제1회 때와 달리, 올해는 참가국 수만 59개국, 출품작 수는 1만 2,000여 편에 이른다. 부산국제광고제가 세계적인 행사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을 이의자, 최환진 공동집행위원장은 작은 아이디어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실현시킨 결과였다고 회고했다.
부산국제광고제라는 아이디어가 처음으로 거론된 곳은 경성대학교다. 2005년, 당시 이 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던 두 집행위원장은 프랑스 칸에서 열리는 광고제가 칸 영화제와 더불어 전 세계인들에게 동시에 한 세트처럼 사랑 받는다는 것에 영감을 얻어 부산에서도 국제영화제와 더불어 광고제를 한 번 열어보자는 계획을 처음으로 나눴다고 한다.
최 위원장은 “일반적으로 광고제는 도시에서 열리는 도심형과 휴양지에서 열리는 휴양지형으로 나뉘는데, 부산은 도심과 휴양지가 동시에 조화를 이루는 광고제의 최적지”라며 “그때 우리는 국제 영화제와 함께 국제 광고제까지 부산에 생기면, 부산도 진정한 영상 문화 도시로 거듭날 수 있을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광고제 아이디어와 성공에 대한 비전은 있었으나, 부산시의 공무원들과 스폰서인 기업들, 그리고 주축이 돼야할 서울의 광고인들은 광고제 아이디어를 여러 이유를 들어 반기지 않았다. 그래서 부산국제광고제 조직위원회를 구성하는 것 자체가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겨우 출범한 조직위원회는 변변한 사무실 하나 없이 카페를 전전하며 행사를 준비해오다 비로소 경성대학교 안에 있는 작은 회의실을 학교의 양해를 얻어 첫 현판을 겨우 내걸고 둥지로 삼았다.
두 위원장은 5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 3대 광고제와 빠른 시일 내에 경쟁할 수 있는 반열에 오르기 위해 ‘차별화된 전략’을 펼쳤다. 최 위원장이 자랑하는 부산국제광고제만의 가장 큰 차별성은 광고제가 인터넷이라는 온라인과 전통적인 오프라인에서 동시에 진행되기 때문에 365일 누구나 광고 작품을 출품할 수 있는 열린 광고제라는 점이다. 세계 각국의 심사위원들은 물론 네티즌들도 인터넷에 올라 있는 출품작들을 언제 어디서나 감상하고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차별성의 요지다.
최 위원장은 "미국 오프라인 서점 1위가 ‘반스앤노블스’였지만 세계인들이 더 선호하는 온라인 서점 1위는 ‘아마존’이듯이, 프랑스의 칸 광고제가 오프라인 광고제에서 최고라면 부산국제광고제는 온, 오프라인이 융합된 상태에서 세계 최고를 지향한다“고 말했다.
공동집행위원장들이 꼽은 부산국제광고제의 또 다른 특징은 전문 광고인들뿐만 아니라 대중들도 함께 어울릴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부터 운영해 온 '창조 스쿨'은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무료 광고 세미나로 올해는 제일기획 김홍탁 마스터(광고계의 거장을 부르는 칭호), HS애드 황보현 최고광고제작책임자를 비롯한 광고계 대표 인물들이 연사로 나서 창조 경제를 이끌어 나가는 데 필요한 창의력 계발 방법을 전수했다.
최 위원장은 "너도나도 창조 경제를 외치는 데 창조 경제의 견인차는 바로 창의적인 해결능력"이라며 "이를 구현하는 수단이 광고라는 점을 알려주기 위해 힘들게 준비한 프로그램이 바로 ‘창조 스쿨“이라고 전했다. 이의자 위원장도 “모시기 힘든 분들을 연사로 모셨다”며 “무려 2년 전부터 연사들에게 연락하고 협의하는 데 정성을 많이 쏟았다”고 강조했다.
전 세계를 아우르는 다양성을 찾을 수 있다는 것도 부산국제광고제 만의 매력이다. 칸 광고제가 서구 중심의 광고제라면 부산국제광고제는 전 세계를 아우르면서 아시아 참여가 높다는 특징이 있다. 최 위원장은 "세계 3대 광고제는 유럽인들이 주로 즐기는 축제인데 반해, 부산국제광고제는 전 세계 광고인들이 함께할 수 있도록 신경 썼다"며 "그래서 우리의 이념도 다양성의 발견(Discover Diversity)"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올해는 중국의 광고들을 살펴볼 수 있는 '차이나 스페셜' 프로그램이 신설됐다. 이의자 위원장은 "광고 분야에서도 머지않아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앞서 나가게 될 것"이라며 "우리나라와 중국의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그들의 광고를 이해해 보는 기회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또 다양성을 강조하는 부산국제광고제의 특징을 높이기 위해 브라질, 호주, 한국 등 여러 국가의 공익 광고가 어떻게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였는지 비교해 보는 것을 통해서 각 나라의 문화와 정서까지도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배려했다고 한다.
최 위원장은 "(부산국제광고제가) 규모 면에서는 이제 세계 3대 광고제에 속하는 칸 광고제, 클리오 광고제, 뉴욕 광고제와 비교해 뒤지지 않을 정도가 됐다"며 "콘텐츠의 질적 수준은 물론이고 사람들의 관심과 참여까지 더 해진다면 비로소 가장 각광받는 광고제로 성장할 것이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올해로 6회를 맞은 부산국제광고제는 22일부터 24일까지의 모든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수 많은 전 세계 광고인들이 우정을 나누고 재회를 약속하는 시상식과 클로징 파티를 끝으로 그 성대한 막을 내렸다. 두 집행위원장의 꿈대로 부산국제광고제는 세계적인 광고제를 향해 순항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