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화분이 지쳐있던 눈을 밝히고, 코끝에는 싱그러운 풀내음까지 맴돈다.“안녕하세요?” 운전 기사의 반가운 인사에 승객들의 입가에 미소가 살짝 번진다. 이곳은 바로 삼화여객 소속 부산 42번 시내버스 안이다.
이색 버스의 주인공은 이종득(59) 기사. 그는 오늘도 즐거운 마음으로, 버스에 오르는 승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인사를 건넨다. 무뚝뚝한 부산 사람들이 그의 인사에 답을 해줄 리 만무(萬無). 하지만 이 씨는 개의치 않고 방송을 이어간다. 머리에는 헤드셋 마이크를 장착한 채다.
“(손잡이)잘 잡으세요. 커브 돕니더.” 정겨운 사투리에 몇몇 승객들은 그제야 이 버스가 뭔가 다르단 걸 느낀 듯 버스 곳곳을 살핀다. 저상 버스라 툭 튀어 올라온 바퀴 공간에는 율무 화분과 빨간 꽃들이 자리하고 있다. 손잡이 옆에도 크기가 딱 맞는 화분들이 자라나고 있다. 테이블 야자, 행복나무, 백송 등 화분만 40개, 그야말로 쌩쌩 달리는 부산 도로 위의 ‘작은 정원’이다.
그때 한 아주머니가 씩씩거리며 버스에 올랐다. “뭐이리 늦게 오능교?” 정류장에서 버스를 꽤나 기다린 모양이다. 기사가 넉살 좋게 웃으며 답했다. “많이 늦었습니꺼? 많이 바빠요?” 웃는 얼굴에 침 뱉을 수 없는 법. 아주머니도 기분이 다 풀린 듯 애교 섞인 소리로 답했다. “그라믄요. 많이 늦었지예~”
버스 운전 기사가 천직인 것만 같은 이종득 씨가 처음부터 이 일을 했던 것은 아니다. 전자과를 전공했지만 그의 인생은 생각지도 못한 곳으로 흘러갔다. 그는 남포동에서 구두 파는 일만 20년을 했다. 종업원에서 사장이 될 때까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 살았지만, IMF의 여파로 장사가 어려워지면서 그 역시도 삶의 터전을 잃게 됐다.
그러던 중 그는 지인의 소개로 버스 운전을 시작하게 됐지만, 어느 날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버스 운전에 걱정이 앞섰다고 한다. 특히 그가 처음 운행했던 155번은 명장동 골목골목을 돌았는데, 혹시라도 위험한 길에서 버스 사고를 내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했단다. 그는 “일이 몸에 익기까지 꼬박 1년이 걸렸어요. 내 생각에는 다른 사람보다 더 오래 걸린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종득 씨는 자신의 인생을 원망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승객들을 더 안전하게 모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그는 직접 헤드셋을 끼고 안내 방송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 운전대를 잡을 때부터 함께 해 온 헤드셋, 이제 12년 차 베테랑 운전기사인 이 씨는 안내 방송도 자유자재다. “재송동, 반여동 방향 가실 분, 여기서 환승하십시오. 환승카드 꼭 찍으시고요.”
이 씨가 버스를 정원으로 가꾸게 된 건 지금의 42번 버스를 몰면서 부터다. 기사들은 버스 한 대를 두 명이서 교대해서 운전하는데, 이 씨와 함께 이 버스를 운전했던 운전사가 유독 나무를 좋아해 버스 안에 화분을 두었다고 한다. 그들은 식물을 놓을 수 있는 공간마다 크기에 맞게 화분을 직접 제작했다. 조금 번거롭기도 했지만 승객들의 반응은 예상보다 좋았다.
얼마 전에는 의외의 칭찬까지 들었다. 한 50대 아주머니가 내리기 전 운전석까지 와서 “기사님, 너무 감사합니다. 제가 차만 타면 멀미를 해서 버스 타는 게 너무 괴로웠는데, 오늘은 나무 있는 차를 타서 그런지 멀미를 안했습니다”며 연신 인사했다. 승객에게 도움을 줬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는지, 이야기를 하면서도 이종득 기사의 얼굴에는 싱글벙글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이 씨는 버스 운전을 시작하고 3년 만에 부산시 친절기사 표창을 받았고, 지역신문은 물론 TV 아침 방송에도 출연했다. 그 덕분에 자신을 알아보는 승객도 꽤 있지만 그는 초심을 잃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 입고 있는 ‘친절 기사 유니폼’때문에 책임감은 더욱 커졌다.
“매일 운전대를 잡기 전에 기도합니다. 오늘도 최선을 다해서 일하기를, 승객들에게 조금 더 친절하게 대하기를. 그렇게 일과를 마치면 그날도 성공한 거죠.” 그는 오늘도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부산을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