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의 마지막 날 부산 A대학교 중앙도서관 열람실. 점심시간 이후 한창 북적거려야 할 시간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학생은 예닐곱 명 정도. 나머지 100여 석의 열람석은 텅텅 비어 있었다. 그나마 앉아 있는 학생들에게 다가가 보니 그들이 읽고 있는 책은 대부분이 전공 도서였다. 고전이나 인문학 서적을 읽으며 삼매경에 빠진 학생은 단 한명도 없었다. 요즘 대학생들이 얼마나 책을 잘 읽지 않은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한 단면이었다.
썰렁한 도서관 풍경은 이 대학 만의 것은 아니다. 부산의 명문이라고 하는 B대학, C대학, D대학 등도 사정은 마찬가지라고 한다. C대학 도서관의 한 관계자는 "한 학기 두번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시험기간에만 열람실이 학생들로 붐빌 뿐 나머지 기간엔 항상 파리 날린다"며 쓴 웃음을 지었다.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책을 제대로 읽지 않는 실정은 심각한 수준이다. 캠퍼스를 거니는 학생들 중 절반이 책을 손에 들거나 옆구리에 끼고 걷지만, 대부분이 전공 서적이거나 허접한 연예잡지 일 뿐이다. 교양서적을 들고 다니는 학생은 가뭄에 콩 나듯 드문드문 눈에 뜨일 정도다. 캠퍼스 안팎에서 만난 대학생들에게 최근 베스트셀러가 무엇인지 물어보면 열에 열, 모두가 "모른다"는 응답이었다. 간혹 매스컴을 통해 베스트셀러 책이름을 들어본 적 있다고 대답하는 학생은 있지만 그 책을 직접 읽어보기는커녕 그 내용이 무엇인지 조차 모른다며 고개를 설레설레 젓기 일쑤다.
대학생들의 독서 외면 풍토를 잘 보여주는 또 다른 증거는 서점가에서도 확인된다. 부산 해운대에 소재한 한 대형 서점 직원 이모(25) 씨는 “우리 서점에 오는 손님 10명 중 5명 정도는 학생들이지만 그들이 사 가는 책은 토익 책이나 자격증 관련 서적일 뿐, 베스트셀러나 교양서적을 구입해 가는 경우는 한 두 명 정도에 불과하다"하고 말했다.
지난해 한국 대학신문협회가 실시한 전국 대학생 의식 및 인물 선호도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학생들의 월평균 독서량은 2.2권인 것으로 나타났다. 독서를 얼마나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독서를 "전혀 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18.4%나 됐다. 책을 읽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로는 '과제 등의 학업 부담 때문에 독서에 시간을 투자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지난 10월말 부산 서면 소재의 한 대형서점에서 만난 몇몇 대학생들의 독서에 관한 의견은 대략 이랬다. 부산의 C대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라고 밝힌 정모(23) 씨는 “학교 과제만 해도 산더미 같은데, 책은 무슨 책"이냐며 "취업이 급한데, 당장 도움 안 되는 뜬구름 잡는 책읽기보다는 조금이라도 취업에 힘 쏟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C대학 3학년 최모(21) 씨는 “교양서적을 읽어야 할 필요성을 잘 못 느낀다. 친구들끼리 수다를 떨 때도 책에 대한 주제는 거의 없고 게임이나 연예인들에 관해서만 얘기를 많이 할 뿐이다. 그다지 책을 꼭 읽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 대형서점 빌딩 벽면엔 'Good readers are good leaders'라는 대형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리더로서 자질을 갖춘다는 뜻이다. 강의시간 도중 틈틈히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경성대 신방과 강성보 교수는 "지금의 대학생들은 세계의 미래를 상상하고 창조하며 이끌어나갈 주체다. 그들에게는 지금 학점과 스펙보다 폭 넓은 독서로부터 미래를 꾸려나갈 힘을 얻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청년들이 책을 통해 자신을 더욱 빛나게 하는 법을 깨닫는 날이 어서 오기를 바란다"고 충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