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에게 먼저 미안하다는 말부터 해요 지금 미화원 아줌마들이 파업을 하고 있어요 시험 기간에 깨끗하게 못해주어서 미안해요 파업 정말 힘들어요 우리 문재(문제의 오자임) 해결 빨리 끝나는 대로 돌아와서 깨끗이 청소해줄께요 학생들 사랑해요! 미화원 아줌마”
파업 중인 중앙대 청소노동자 한 분이 지난 12월 중순 써 붙인 대자보의 전문이다. 이 대자보에 대해 중앙대 측은 학교 건물에서 농성을 하거나, 노동가요를 부르고 구호를 외치거나, 대자보를 붙이고 펼침막을 걸거나, 동영상을 틀고 사전승낙 없이 시위를 위해 건물을 출입하는 경우 1회에 1인 당 100만원씩 내도록 해달라고 법원에 간접강제 신청을 내는 것으로 응답했다 한다. 참으로 졸렬한 짓이다.
학교 측은 ‘학교와 상관없는 용역업체와 청소노동자 사이의 문제인데 점거농성 등으로 학교에 손해를 끼쳤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래도 ‘기본급 119만원 전후인 청소노동자들에게 1회에 1인당 100만원씩 청구’하는 그 무지막지하고 대범한 발상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그것도 ‘사람이 미래’라고 광고해대는 두산이라는 거대 기업이 운영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대학인 중앙대에서 말이다.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한 대응으로 기업들이 자주 쓰는 방법 중 하나가 법원에 손해배상과 가압류(이하 손배가압류)를 청구하는 것이다. 손배가압류는 기업주가 노동자들의 쟁의로 영업 손실을 입었다면서 손해배상 소송을 내고 노동조합과 노조원 심지어는 그 가족들(신원보증인)에게까지 급여, 퇴직금, 부동산 등을 가압류하는 것을 말한다.
기업주들은 1990년대 초부터 손배가압류를 노조를 무력화시키는 수단으로 악용해왔고 1990년대 말 경제위기 이후 그 빈도가 증가했다고 한다. 급기야 2003년에는 배달호(두산중공업)와 김주익, 곽재규(한진중공업) 등의 노동자가 그 가압류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죽음을 택했고, 2013년 현재 민주노총 소속 사업장에 대한 손해배상 액수는 1천억 원이 넘는다고 한다. 최근 철도 민영화 문제로 파업을 했던 코레일 노조의 경우에도 8000명이 직위해제되고, 490명이 파면·해임되고, 198명이 고소·고발당하고, 77억원의 손해배상 가압류를 당한 상태라고 한다.
손배가압류가 노동자들과 그 가족에게는 얼마나 끔찍한 고통을 안겨줄 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주들이 노동자들의 단체행동을 무력화시킬 의도로 손배가압류 소송을 이용하는 것이기도 하겠다.
최근에는 비단 기업주들뿐만 아니라 정부기관들도 이렇게 소송을 통해 개인이나 단체의 행동을 무력화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개인의 권리구제 차원을 넘어 공적 참여를 막기 위한 목적으로 악용하는 소송을 일컬어 ‘전략적 봉쇄 소송’이라 하는데, 반드시 승소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피소자에게 고통을 줘서 반대의견 표명을 제약하기 위한 의도로 제소하는 것이 그 특징이다. 최근 정부기관이 제기한 소송 중 상당수가 이에 해당하는 듯하다.
국정원이 대표적인데, 진선미 민주당의원, ‘나는 꼼수다’의 진행자들, 표창원 경찰대 교수, 서영석 전 서프라이즈 대표, 최승호 ‘뉴스타파’ PD(명예훼손), ‘오늘의 유머’ 운영자(개인정보보호법 위반), 그리고 민주당 관계자들(주거침입 및 감금), 현 서울시장인 박원순 당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손해배상) 등이 국정원으로부터 고소당했다.
이 외에도 김지영 시사저널 기자가 청와대 비서관에 의해, 국민일보가 청와대로부터, 한국일보가 법무부장관에게, 한겨레와 부산일보가 경남지사로부터 명예훼손 등으로 소송을 당했다.
정부기관의 경우 대개 국민의 세금으로 고소하고 소송에서 져도 책임을 묻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쉽게 소송을 제기하는지 모르지만, 기자 등 피소자들의 경우 설사 이겼다고 하더라도 돌아오는 건 무죄라는 사실 뿐이고 그 기간 동안 법원과 검찰에 들락거린 시간과 비용을 되돌릴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더한 문제는 손배소송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잠재적 위협이 상대적 약자인 개인이나 단체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전략적 봉쇄 소송의 배후에는 당면한 사안 의 해결 뿐 만이 아니라 장기적으로도 자유롭게 의견을 표명할 수 없도록 하는 위축효과를 일으켜 정권에 비판적인 의견의 표명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속셈이 있다. 그래서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의 경우에는 전략적 봉쇄 소송이 제기되더라도 법원이 바로 각하하거나, 국가가 소송을 남발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를 갖추고 있다고 한다.
최근 우리나라가 사회안전망 지표와 관용사회 지표에서 31개 OECD회원국 중 꼴찌를 기록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리고 2014년 신년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사회 곳곳에 뿌리박힌 비정상적 제도와 관행을 파악해 정상화하는 ‘비정상의 정상화’ 작업을 핵심 국정과제로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소송이 강자의 무기로 전락하고 무분별하게 남용되고 있는 이런 비정상적 상황부터 정상화해야 하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