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10-25 15:38 (금)
먼저 인사하면 이긴다!
상태바
먼저 인사하면 이긴다!
  • 편집위원 박시현
  • 승인 2014.02.17 09: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은주(개명 前 필자 이름) ~”
“네!”
“오늘 방송국 정문을 통과하면서 만나는 사람한테 모두 고개 숙여 인사 잘 하고 와.”
“네!”
“특히, 청경 아저씨와 청소하시는 아주머니께 인사 잘 하고 와.”
“네!”

이 대화는 필자가 1994년 KBS부산 총국에 첫 방송하러 가는 날에 모친께서 대문을 나서는 필자를 불러 하신 말씀이다. 방송국 가는 필자를 모친이 부르기에 당연히 “우리 딸 녹화 잘 하고 오라”는 당부의 말씀일 거라고 생각했으니, 모친의 당부는 예상 밖이었다.

그러나 착한(?) 딸이었던 나는 모친의 당부를 잊지 않고 청경 아저씨가 있는 방송사 정문 앞에서부터 만나는 분들마다 머리 숙여 공손히 인사 드렸다. 로비에서 걸레질하고 있는 청소 미화원 아주머니께도 모친의 지침대로 허리 굽혀 깍듯이 인사를 드렸다. 7층 제작국으로 가는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모든 분들께도 빠짐없이 인사를 잘 하라는 모친이 준 임무를 성실히 수행했다. 그 덕분이었는지, 생애 첫 방송 녹화도 무사히 잘 끝냈고, 짧은 시간 안에 방송사 직원들에게 ‘박은주’라는 이름이 각인됐다.

인사 잘 하는 아이로 이름을 날리며 8개월 간 첫 방송사에서 생활한 후, 필자는 KNN 전신인 PSB 방송국 아나운서로 이직하게 됐다. 방송사를 떠나는 필자에게 많은 분들이 승진(?) 축하 말씀을 건넸다. 아직도 기억이 또렷한 그때 그 말씀들은 한결 같이 처음 봤을 때 인사를 잘하는 아이였기에 무언가 달랐다는 거였다. 돈이 들 리도 만무하고 밤샘 공부도 필요 없는 인사하기는 두 번째 방송사 근무 10여 년 동안에도 계속됐다. 어느새 사람들은 나를 인사성 밝은 사람으로 기억하게 됐다. 인사는 나의 트레이드마크였다.

인사는 인간 사회에서 사람이 사람을 만날 때 맨 처음 행하는 ‘의식’이다. 인사는 서로를 알고 있고, 서로의 안부를 궁금해 하며, 서로를 존중하자는 일상적 행위다. 아는 사람인데 모르는 척 인사 안 하고 지나간다는 것은 인간관계의 단절 내지는 소외를 의미한다. 많은 사람이 오가는 번화가에서 나를 모르고 지나치는 아는 사람이 있을 때, 나도 그냥 가버리는 경우도 있고, 달려가 누구 아니냐고 그를 돌려 세워 반갑게 인사하는 경우도 있다. 그 차이가 바로 인간관계의 ‘부피’다. 가식적이거나 형식적인 인사도 있지만, 적어도 인사가 오가는 인간관계는 아직도 미래에도 관계를 지속하자는 의미를 갖는다.

봄과 함께 대학에도 새 학기가 다가온다. 올해도 어김없이 신입생 새내기가 입학한다. 그들은 새로운 교수와 선배들을 만날 것이다. 그들은 올해도 교수와 선배들에게 인사할 것이다. 처음에야 얼굴을 잘 모르니까 인사를 잘 안 하겠지만, 피차 안면이 익으면, 인사를 피하지는 않을 것이다. 얼마나 진심으로 인사를 하고 인사를 받는지는 그 후 사제지간과 선후배 사이 인간관계의 척도가 된다.

아직도 학교 내에서 인사의 양상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자기 학과 교수나 선배를 외면하고 인사 안하는 신입생은 없다. 그러나 교수일 수밖에 없는 연배 사람을 자기 학과 건물에서 보고 자기 학과 교수가 아니므로 인사 안 하는 풍조는 생긴 지 오래 됐다. 미화원 아주머니나 수위 아저씨에게 인사하는 대학생은 사라진 지 오래 됐다. 요즘 가정이나 초등학교에서는 아마도 모르는 사람에게는 인사하지 말라고 가르칠 것이다. 인사가 교육의 시작이며 예의의 기본이지만, 모르는 사람에게 인사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가르치는 게 사회적 공감대를 얻고 있다. 인사를 사람 가려해야 하는 각박한 사회 현실이 불현 듯 안타깝게 느껴진다.

그러나 대학생은 성인이다. 길거리 낯선 사람을 조심해야 할 초등학생이 아니다. 대학 구내에서 낯선 어른에게 인사했다고 유괴될 일은 없다. 인사는 예의라는 덕목의 시작이므로 학생들은 대학 구내에서 모르는 웃어른이라도 공손하게 인사하는 것을 꺼려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사를 자주 하는 학생의 이름이 더 기억나는 것은 가르치는 선생의 입장에서는 자연스런 일이다. 많이 해서 손해 날 일 없는 인사는 교수들에게 무언가 그 학생의 이름 이상의 인상을 남긴다. 인사 잘 하는 학생들에게 교수들은 인간성 좋다는 평가를 덤으로 주게 마련이다.

졸업 시즌을 앞두고 많은 학생들이 취업에 목을 맨다. 요즘 기업의 채용 방향은 실력과 학력보다는 조직과의 융합 가능성과 업무에 대한 열정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한다. 아마도 인사는 그런 판단의 기본적 기준이 될 것이다. 취업 면접 학원에서 가르치는 가식적인 ‘배꼽인사’말고 무언가 솔직한 인사하기를 학생들이 체득했으면 좋겠다.

이번 소치 동계 올림픽에서 누구보다 많은 박수를 받고 있는 이를 꼽는다면, ‘빙상 위의 백전 노장’ 이규혁 선수다. 그는 어느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경쟁 상대인 다른 선수들에게 인사를 잘 해서 올림픽에 여섯 번 참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규혁 선수의 이런 특유의 인사성은 선수들이 피하고 싶은 징크스와 정반대되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규혁 선수는 어떤 스포츠 영화에서 ‘경기 당일 아침에 먼저 인사하는 선수가 진다’는 장면을 보게 됐고, 그 이후 경기장에서 만나는 다른 선수들과 인사하는 것이 신경 쓰였다고 한다. 인사를 먼저 하면 진다는 그 영화의 징크스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경기장에서 찜찜했지만 다른 선수들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일일이 인사를 나눴다고 한다. 물론 그는 그런 경기에서 이기기도 했고 지기도 했다. 다만, 그는 이기고 싶은 마음에서 징크스를 피하기 위해 경쟁자들과 눈이 마주쳐도 인사를 기피하고 싶지는 않았고, 지는 한이 있더라도 아는 선수에게 징크스 때문에 인사 안하려 고개를 외면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이규혁 선수는 한국 선수로는 동하계를 통틀어 여섯 번이나 올림픽에 참가한 기적의 선수다. 그는 1991년 13세의 어린 나이에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고 그 뒤 20년이 넘게 한국 스피드 스케이팅의 간판 스프린터로 활약했다. 그가 이처럼 오랜 기간 동안 태극 마크를 가슴에 달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물론 그의 철저한 자기관리였다. 여기에 하나를 덧붙인다면, 인사 먼저 하면 진다는 징크스에 개의치 않은 그의 인사성이 아니었을까. 치열한 승부보다 앞섰던 그의 인간성이 이규혁 선수의 진수였고, 그래서 우리는 그를 진정한 ‘영웅’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서정적인 글로써 신앙을 전하는 것으로 유명한 이주연 목사는 자세를 낮추고 의식을 높여야 멋진 인생이 펼쳐질 거라 설파했다. 자세를 낮추고 의식을 높이는 것, 이것이 곧 인사가 아닐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