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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만 외쳐도 친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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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만 외쳐도 친구가 된다
  • 김태호 시빅뉴스 스페인 특파원
  • 승인 2014.09.15 0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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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년 만에 1부 리그로 승격한 코르도바의 축구 열기 속으로...
스페인은 축구 강국이다. 마드리드, 바로셀로나는 도시 이름보다 이곳을 연고지로 하는 축구팀 이름으로 많은 한국 젊은이들 머리에 먼저 다가온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스페인은 16강에도 오르지 못하고 우리와 같이 예선에서 탈락하는 신세를 면치 못했지만, 스페인 축구의 위상은 여전하다. 아니 영원하다. 9월 5일, 이동국 선수의 슛이 골망을 연거푸 두 번이나 갈랐다. 월드컵에서 커다란 실망감에 잠겼던 한국 축구팬들은 이동국 선수가 베네수엘라와의 A매치 국가대항전에서 골을 넣고 3 대 1로 물리치자, 한국 축구에 대한 기대감을 다시 한 번 가졌다. 한국이 베네수엘라에게 승리하기 직전, 월드컵에서 스페인 국민들에게 엄청난 실망감을 안겼던 무적함대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도 프랑스를 맞아 월드컵의 아픔을 씻어내려 애썼다. 결과는 프랑스의 1대 0 승리. 무적함대는 그렇게 또 한 번 침몰하고 말았다. 하지만 스페인 국민들은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않았다. 코르도바에서 카페테리아를 운영하는 안토니오 씨는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이 그 동안 거두었던 성과들로 인해 국민들이 많은 기쁨과 행복을 느꼈기 때문에, 한두 번의 실패로 낙담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국가대표팀에 무한한 애정과 성원을 보낼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마치 기다림의 미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듯했다. 한 경기의 결과로 너무 쉽게 울고 웃으며 모든 것을 평가하는 우리 축구팬들과는 달리, 스페인 국민들은 진정 축구 자체를 사랑하는 것처럼 보였다. EURO 2008 챔피언을 시작으로 2010 남아공 월드컵 챔피언, 그리고 EURO 2012 챔피언까지, 스페인이 축구 역사상 최초로 3대 경기 연속 타이틀을 따낼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국민들의 변함 없는 ‘축구사랑’ 때문이 아닐까? 축구에 대한 사랑은 기자가 스페인에 도착하자마자 오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기자는 스페인어를 전혀 몰랐지만 “풋볼(Football)!”이라는 단어 하나만 말해도 금방 스페인 사람들과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스페인 공항에 입국할 당시, 기자는 스페인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있었는데, 지나는 많은 스페인 사람들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무슨 말인지 기자가 알 수는 없지만, 그들의 표정과 억양으로부터 “너도 스페인 축구 팬이구나! 환영한다, 친구야!”라고 말하는 듯했다. ‘이것이 스페인의 축구의 냄새구나’라고 느낄 때, 기자의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각 구단의 레플리카(판매용 선수 유니폼)였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스페인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것이 레플리카 패션이다. 한국에서도 패션 아이템으로 레플리카를 입고 다니는 열성 축구팬이 있기는 하지만, 정말 스페인은 레플리카 천지였다.
▲ 스페인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레플리카 패션을 입고 있는 어린이와 이세호 시빅뉴스 스페인 특파원의 모습. 이 어린이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팬이라서 그 팀의 레플리카를 입었다고 말했다(사진 : 취재기자 김태호)
스페인 사람들에게 축구는 스포츠가 아니라 그저 일생생활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홈팀을 광적으로 응원하고, 그 날의 승패가 도시 분위기를 좌우한다. 기자 일행이 스페인 코르도바에 도착한 날이 공교롭게도 스페인 1부 리그인 프리메라 리가 개막전이 열리는 날이었다. 개막전은 기자 일행이 생활하게 될 코르도바를 연고로 하는 ‘코르도바 CF’팀과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이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축구 클럽인 ‘레알 마드리트’ 팀 간의 대결이었다.
▲ 레알 마드리드와 코르도바 CF의 개막전 경기를 관전하고 있는 코르도바 주민들(사진: 취재기자 김태호)
개막전 열기는 코르도바라는 작은 도시를 강타했다. 시내의 모든 바와 카페테리아는 대형 스크린을 설치해서 지나가던 사람들의 발걸음까지 멈추게 했으며, 우리들 역시 이 역사적인 순간을 놓질 수 없어 바에 앉아서 경기를 관전했다. 롯데 야구 중계를 보는 부산의 대학가 앞 생맥주집 분위기와 너무 흡사했다. 경기는 아쉽게 코르도바 CF의 0 대 2 패배였다. 하지만 코르도바 시민들은 경기 후 웃으면서 자리를 떠났다. 기자는 그 이유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코르도바 팀은 내내 2부 리그를 전전하다가 올 시즌에 드디어 43년 만에 1부 리그로 승격했기 때문이다. 코르도바 시민들은 레알 마드리드를 이기기를 바라는 희망보다는 지역 연고 팀이 1부 리그에서 개막전을 벌인다는 것 자체를 감격스러워 했던 것이다.
▲ 코르도바 CF와 레알 마드리드와의 개막전 전반전을 시청하는 바에서 우리 일행은 기념사진을 찍기에 바빴다(사진: 취재기자 김태호)
코르도바 시민들은 자신들의 홈구장인 에스타디오 엘 안칸젤에서 세계적인 축구 클럽들이 올 해 계속해서 경기를 갖는 것에 흥분해 있었다. 일부 시민들의 티켓 사재기로 많은 축구 팬들이 표를 구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는 얘기도 있었다. 인구가 고작 35만 명인 이 도시에, 2만 명을 수용하는 경기장이 매주 매진되는 것은 스페인의 축구 열기로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 에스타디오 엘 안칸젤 스타디움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기자(사진: 취재기자 김태호)
경기가 없는 다른 날, 기자는 에스타디오 엘 안칸젤 스타디움을 찾았다. 우리를 맞이해준 것은 경기장에서 들리는 함성이 아닌 썰렁함 그 자체였다. 하지만 경기장에 들어서자, 실망감이 녹아 경이로움이 됐다. 코르도바를 후원하는 ‘HYUNDAI’ 광고 문구가 우리를 반겼다. 푸른 잔디, 선수들의 호흡소리가 들릴 만큼 그라운드와 가까운 관중석이 눈에 들어 왔다. 우리는 스페인 축구 경기장을 밟은 기념으로 싸이의 <강남스타일> 말춤을 췄다.
▲ 에스타디오 엘 안칸젤 스타디움에서 한 컷(사진: 취재기자 김태호)
그때 우리는 멀리서 TV 카메라 여러 대가 우리를 촬영하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 우리 일행은 곧장 그곳으로 전력질주했다. 카메라맨은 생김새가 다른 동양인들에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고, 우리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댔다. 우리는 잘하지도 못하는 스페인어로 “Yo soy corea del South(우리는 대한민국 사람입니다)”를 외쳤고, 그들은 우리가 한 말을 알아들었는지 말춤을 추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이 싸이 말춤의 근원지임을 알고 있다는 신호 같았다. 그들은 코르도바 지역 방송국 직원들이었고, 1부 리그 승격 기념 프로를 제작 중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그들과 아미고(Amigo: 친구)가 되었다. 카메라맨들은 그날 밤 지역 TV에 우리 모습이 방영된다고 했지만, 실제로 방영되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 코르도바 방송국 TV 촬영팀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 기념사진을 찍었다(사진: 취재기자 김태호).
그들과 헤어진 우리는 경기장을 천천히 둘러본 후 밖으로 나왔다. 우리는 태양이 뜨거워 근처 바에서 햇빛을 피하기로 했다. 경기장을 바라보며 먹는 맥주가 우리들의 지친 몸을 다시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축구를 안줏거리로 삼아 즐겁게 이야기하고 있던 중, 바 주인이 다가와 자신의 발목에 그려진 문신을 보여줬다. 코르도바 CF의 엠블럼(상징 마크)을 발목에 새긴 주인은 연신 “꼴도바, 꼴도바”라고 외치며 우리들에게 코르도바 팬이냐 물었고, 우리도 “꼴도바, 꼴도바”를 같이 외쳤다.
▲ 코르도바의 한 바 주인이 자신의 팀에 대한 충성심의 표시로 발목에 새긴 문신을 우리에게 보여줬다(사진: 취재기자 김태호).
기자는 수년 동안 한국에서 TV로만 보던 스페인 경기장의 신선한 공기를 직접 마실 수 있었고, 축구에 대한 스페인 사람들의 열정을 직접 목격했으며, 스페인 사람들이 진심으로 축구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감격스러웠다. 기자는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 스포츠는 언어로 하는 것이 아니다. 스페인어를 하지 못해도, 스페인 사람이 아니어도, 기자와 스페인 사람들은 축구로 쉽게 동화될 수 있었다. 기자는 축구의 나라에 온 것을 정말로 실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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