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서점을 방문했을 때, 표지부터 나의 시선을 확 사로잡은 책이 하나 있었다. 표지에 등장하는 긴 머리에 빨간 옷을 입은 여자가 총을 든 모습은 나의 상상력과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나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사실 책을 멀리한 지 꽤 되었기 때문에, 이 책을 밤에 잠이 오지 않을 때 사용할 셈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잠자기 위해 읽은 책을 나는 그날 밤 다 읽어버렸다. 그 정도로 책의 내용은 흡입력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책이었지만, 이미 내 머릿속에선 영화 한 편을 본 듯했다.
파리 경찰청 여성 강력계 팀장 ‘알리스’는 정체불명의 사건에 놓이게 된다. 우선 아무런 설명 없이 파리에 살던 알리스가 뉴욕 센트럴 파크에서 눈을 뜨는 상황은 내 궁금증을 유발했다. 어떤 과정을 통해 센트럴 파크로 오게 되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알리스는 재즈 피아니스트를 가장한 FBI 남성요원 ‘가브리엘’을 만나게 되고, 그들은 하나의 공통된 목표로 서로 협력하게 된다. 이 두 사람의 공통된 목표는 바로 ‘에릭보간’이었다.
에릭보간은 희대의 연쇄 살인범이었다. 그는 알리스에게 크나큰 상처를 안겨주고 비극의 시작을 알린 인물이다. 그러나 동시에 에릭보간은 알리스가 가브리엘과 협력할 수 있게 만들어준 인물이기도 하다. 알리스는 오래전 죽은 에릭보간이 살아 돌아와 자신과 가브리엘에게 이런 일을 꾸미고 있다고 확신하고 그를 쫓기 시작한다. 그들이 에릭보간을 추격해 나가는 과정에서 책의 분위기는 섬뜩하고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책에 몰입하게 됐다. 책을 보면서 이렇게 소름이 끼친 일은 처음이었다.
내용이 끝에 다다를수록 나는 내 두뇌를 모두 가동했다. 왜냐하면, 마치 추리소설을 방불케 하는 내용 때문이었다. 마치 스릴러, 공포를 느끼게 했던 책의 결말은 반전 그 자체였고 정말 신선했다. 두 사람이 추격하던 에릭보간은 예전에 이미 죽었다. 그리고 범인의 윤곽이 드러났을 때, 그 범인은 바로 가브리엘이었다. 이 부분은 소설에서 가장 충격적인 부분이었다. 그러나 반전은 따로 있었다. 가브리엘은 FBI도, 재즈 피아니스트도 아닌 정신과 의사였다. 알리스가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었고, 그녀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그래서 모든 사건은 가브리엘이 알리스를 병원에 데려오려는 방법으로 꾸민 시나리오였다. 비록 거짓 상황이었지만, 가브리엘의 마음은 거짓되지 않았고, 알리스는 깊은 상처 끝에 가브리엘이라는 사람을 얻음으로써 책은 마무리된다.
사람들은 누구나 아픔을 가지고 있으며, 그 아픔을 숨기고 산다. 알리스는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누구보다 더 비극적인 인물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여러 가지 상황을 통해 그의 상처를 극복하고 희망을 얻었다. 또한, 알리스의 아버지나 동료 등을 통해서 볼 수 있었던 인간에 대한 애정은 알리스의 희망 중 일부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각각의 등장인물들이 주는 감동은 책에서 빼놓을 수 없는 희망의 장치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상처가 깊고 절망적일지라도 언제나 조그마한 희망은 존재한다는 것을 생생한 이야기로 간접 체험할 수 있었다. 이 책이 선사한 한 편의 영화 같은 이야기는 오래도록 내 기억에 남아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