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제43회 성년의 날을 맞아 오전 11시 30분부터 한 시간 동안 경성대 실내체육관에서 이 학교 인문고전학 전공(구 한문학과)에서 주관하는 전통 성년식 행사가 열렸다. 이 대학에서 매년 열리는 성년의 날 행사는 과거 한국의 전통 성년식 원형을 재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성년의 날은 대통령령으로 1973년 4월 20일로 정했다가, 1975년 5월 6일로 한 차례 변경된 뒤, 1985년부터는 5월 셋째 월요일로 고정됐다.
경성대의 올해 성년식 행사에는 장관자(將冠者, 남자 성인이 되는 의식인 ‘관례’를 올릴 남자아이) 10명, 장계자(將笄者, 여자 성인이 되는 의식인 ‘계례’를 올릴 여자아이) 19명이 참여해 관례식(冠禮式)과 계례식(筓禮式)을 치루고 성년이 됐다. 식의 순서는 집례를 맡은 교수들이 여학생들에게는 비녀를 꽂아주는 계례(筓禮)를 한 후, 천지신명에게 어른으로서 서약을 하게 하고, 술을 마시는 예절을 가르치는 의례인 초례(醮禮)를 치루며, 어른으로서 덕을 드러내는 이름인 자(字)를 지어주는 순서로 진행됐다. 여학생들의 계례식이 끝난 후, 남학생들은 머리에 갓을 쓰는 관례(冠禮)를 시작으로 앞과 같은 순서로 성년식이 진행됐다.
전통 성년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관례와 계례의 의미가 중요하다고 주관자 경성대 인문고전학 전공 신승훈 교수가 말한다. 신 교수에 따르면, 관례란 전통사회에서 어린 아이의 세계에서 어른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공식화하는 의례라고 한다. 관례식에서는 한 사람의 성인이 된다는 의미로 관, 갓, 유건(유생들이 쓰던 검은 베로 만든 실내용 관모) 등을 썼다. 관, 갓, 유건을 쓰게 되면, 한 사람의 성인 남자가 된다는 뜻이고, 성인의 일을 할 수 있다는 표시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반면, 여성들은 비녀를 꽂아 성인이 되었음을 나타낸다. 이런 여성의 의례를 계례라 하는데, 여기서 ‘계’는 비녀를 말한다고 한다. 계례식에서 여자 아이의 머리를 틀어 올려 쪽을 짓고 이를 고정하기 위해 비녀를 꽂는다. 비녀를 꽂아 머리를 올리면, 여성으로서 역할을 수행하게 됐다는 표시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관례식과 계례식이 끝난 후, 어른들이 성인이 된 학생들에게 덕담을 하고, 학생들은 집례를 해준 어른들께 절을 올리며 답례하는 것으로 전통 성년식 행사는 마무리됐다.
성년식에 참여한 김효영(21, 경성대 인문고전학 전공) 씨는 일생에 한 번 뿐인 성년식을 전통적인 방식으로 치루고 싶어서 이 행사에 참여하게 됐다. 김 씨는 “성년식을 준비하면서 옷도 많이 불편하고 힘들었지만, 새로운 경험이라 그런지 재밌었다”며 “성년이 되는 의식이라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지은영(21, 경성대 일어일문학과) 씨는 친한 친구와 같이 나란히 이날 성년식에 참여했다. 지 씨는 “성년의 날이 인생에 한 번밖에 없으니까 꼭 한 번 친구와 함께 참여해 보고 싶었다”며 “식을 치르고 나니, 성년의 날 되기 전보다 마음가짐이 좀 더 성숙해진 느낌이 들었다”고 소감을 말했다.
올해 만 20세가 된 김주형(20, 경성대 인문고전학 전공) 씨는 “1995년생이 맞는 성년의 날을 전통적인 방식으로 관례를 하고 나니 나 스스로가 커진 느낌이고, 의젓해진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날 성년식에는 교수들과 학교 관계자, 학부모, 학생 등이 참관했다. 복식문화원 회원 정애선 씨는 아이들에게 한복 입는 것을 도와주고 전통 성년식을 지켜봤다. 정 씨는 “학생들이 뜻 깊은 날에 모여서 한복을 입고 성년식을 치르는 모습을 보니 대견하고 예쁘다”고 말했다.
신승훈 교수는 매년 전통 성년식을 하고 난 후 일부 학생들의 행동에 변화가 생기는 모습을 봤다며 뿌듯해 했다. 신 교수는 “성인식을 한 후, 일부 학생들들은 다음날 행동이 완벽하게 달라지진 않지만 일부 태도가 바뀌어 자세와 마음가짐 뿐 아니라 말씨도 어른스럽게 바뀌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 대학생들이 갖는 성년의 날 모습을 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성년의 날만 되면, 어김없이 SNS에서는 장미꽃과 향수 인증 사진으로 타임라인이 도배된다. 대학생들에게 성년의 날은 향수, 장미꽃, 키스를 선물 받는 날로 인식 돼있다. 대학생 성지안(22) 씨는 20세 되던 해에 재수를 하고 있어서 아무에게도 장미꽃, 향수 등을 받지 못해 섭섭했던 기억이 있다. 성 씨는 이날 장미꽃을 파는 노점상을 보고 성년의 날임을 알고, 20세가 된 여동생이 생각나 장미꽃을 샀다. 성 씨는 “남자 친구가 없는 여동생이 성년의 날에 아무것도 못 받으면 섭섭해 할까봐 싶어 장미꽃을 샀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성년의 날의 본질적인 의미를 잘 모르는 대학생들이 늘어나는 세태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성년의 날이 됐다고 비싼 향수를 선물하고 술 마시는 것은 퇴폐향락”이라며 “성년의 날은 가족 친지들과 스승이 모여 성인이 될 아이들을 격려해주는 날인데, 그런 성년의 날이 상업 자본에 휩쓸려 물질만능주의가 되는 건 의미가 없다”고 안타까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