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그룹 하이라이트 콘서트 ‘4년만에’ 개최
코로나19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동시에 공연장은 함성 소리
집회·모임 가능, 공연장 팬들의 모임은 ‘나눔’ 현장으로
영업시간 제한 사라지자 공연 후 빠른 귀가 대신 ‘뒷풀이’ 몰린다
“이거 무슨 나눔 줄이에요?” “오늘 공연 응원법 다 외우셨어요?”
지난 20일부터 22일까지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4년 만에 열린 아이돌 그룹 하이라이트의 콘서트. 공연장 바깥은 1만 명 이상의 팬들로 북적였다. 공연장 주변은 5분 이상 대화를 이어 나가기 힘들 정도로 인파들이 붐볐다. 공연장의 열기는 엄청났다. 14년 차의 위력을 증명하듯 전석 매진이라는 쾌거를 이뤄내면서 현장 분위기는 후끈 달아올랐다. 사실 이 열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바로 4년 만에 팬들을 대면으로 만나는 콘서트라는 점이다.
2년 전 멤버 전원이 국방의 의무를 마치고 팬들 곁으로 돌아왔지만, 코로나 시국으로 의도치 않은 4년이라는 공백이 생겼다. 하지만 이날 공연장을 찾은 팬들에게서 공백기의 모습은 전혀 찾을 수 없었다. 팬들은 오랜만에 느끼는 열기에 공연장 이곳저곳에서 사진 찍기 바쁘다.
그동안 여러 대중가수의 콘서트는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팬과 가수가 하나가 되어 신나게 뛰는 것이 콘서트의 묘미였지만, 코로나로 인해 좌석 거리두기는 물론 어떠한 함성도 지를 수 없었다. 비말전파 위험으로 함성이 허가되지 않았던 것. 떼창으로 유명한 하이라이트 팬들에게 이러한 정책은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였다. 하이라이트 팬 박지민(23, 부산시 해운대구) 씨는 “팬이 가수의 무대에 대한 감상과 마음을 전할 수 없다는 게 가장 아쉬웠다. 함성은 그저 만족의 표시가 아니라 서로가 함께 나아갈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그러니 이번 함성 금지 해제와 거리두기 해제는 이들에게 더욱 단비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또한, 얼마 전까지만 해도 팬들은 공연 관람만 하고 급하게 짐을 챙겨 귀가하기 바빴다. 이들은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불미스러운 감염경로를 만들어 가수에게 해를 끼치지 말자는 것이 암묵적인 룰이었기 때문이다. 일정인원 이상 모여있기 어려웠던 지난날들과 달리 이제 모든 집회와 모임 또한 가능해졌다. 즉, 팬들끼리의 만남이 가능해졌다는 뜻이다. 공연장에서 팬들과의 만남은 ‘나눔’을 뜻한다. 가수가 공연을 준비한다면 팬은 팬들에게 줄 선물을 준비한다. 자신이 직접 제작한 엽서, 포토카드, 슬로건 등을 어떠한 이윤도 남기지 않고 공연장에 오는 팬들에게 ‘나눔’하는 것. 나눔하는 장소와 시간을 사전에 공지하면 팬들은 줄을 서서 굿즈를 받아 간다. 인기 있는 굿즈일수록 나눔이 빨리 끝나기 때문에 서둘러야 한다. 공연장 근처에서 들리는 “나눔 시작할게요”라는 큰 소리는 이제 안 들리면 서운할 정도다.
이날 간식을 나눔한 배수빈(24, 안산시) 씨는 예전부터 나눔을 주고받는 따스한 팬 문화를 좋아해 콘서트 때마다 ‘나눔’을 즐겼다. 수빈 씨는 “이번 콘서트 나눔때도 대부분의 팬들이 제게도 똑같이 무언가를 챙겨주었다. 공연 외에도 이런 문화들이 콘서트의 묘미”라고 말했다.
굿즈 이외에도 먹거리, 휴지 등 재미있는 나눔 현장을 목격했다. 작은 봉투 안에 터질 듯 눌러 담은 과자와 젤리는 ‘엄마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달콤한 간식은 체력소모가 심한 콘서트 공연에 센스있는 나눔이다. 30분 정도 공연장을 배회하다 보면 양손은 무겁고 마음은 따뜻해진다.
공연 1일 차가 끝나자 SNS에는 “떼창이랑 함성으로 공연장이 찢어져서 보수 중”이라는 재밌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팬들은 곡마다 다른 응원법을 목이 터져라 외치며 4년간 쌓인 서러움을 함성으로 푸는 듯했다. 팬들은 공연 초반 오랜만에 외치는 응원법에 조금 헷갈리는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금세 자신감을 되찾고 무대를 향해 응원을 보냈다.
팬들이 준비한 카드섹션 이벤트도 성공적이었다. 문구는 ‘라이트가 살아가는 모든 이유’. 라이트는 하이라이트의 팬덤 명이다. 검은색 카드와 흰색 카드로 글씨를 만들고 멤버를 상징하는 색인 파란색, 노란색, 초록색, 보라색 카드로 하트를 만들었다. 떼창 금지와 좌석 거리두기가 풀리지 않았다면 시도하지 못할 이벤트였다.
공연 후 뒤풀이도 빠질 수 없다. 영업시간 제한이 사라지면서 공연이 끝난 늦은 시간에도 한곳에 모여서 회포를 풀 수 있게 된 것. 잠실 체육관 일대 식당은 공연 뒤풀이하는 팬들로 북적였다. 형형색색의 응원봉과 포토카드를 맞대어 음식과 함께 ‘예절 샷’을 남긴다. ‘예절 샷’이란 트위터에서 유행이 시작된 문화로, 좋아하는 대상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왔다는 인증을 위해 음식과 포토카드 사진을 찍어 예절을 차리는 행위다. 7명의 일행과 식당에 방문한 김여름(21, 서울) 씨는 점원에게 재밌는 질문을 받았다. 여러 사람이 같은 그룹의 포토카드를 꺼내는 모습을 보고 점원은 콘서트를 보러온 팬들이라고 눈치를 챈 것. 점원은 “다들 얼마나 오래 좋아하신거에요? 그러면 가수가 팬을 알아보는 경우도 있어요?”라며 순수하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쳐다봤다. 김여름 씨는 손사래를 치며 “여기에는 (알아보는 사람) 없어요” 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뒤풀이는 뒤로 갈수록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3시간 조금 넘게 진행된 공연을 나노 단위로 곱씹다 보면 팬들에게 새벽이 오는 건 그리 특별한 일도 아니다. 팬들은 해가 뜨고 첫차 운행이 시작되자 다음 행사 때 또 만나기를 약속하며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하이라이트뿐만 아니라 다양한 가수들이 속속들이 오프라인 행사를 잡고 있다. 단독콘서트부터 대형 음악 페스티벌까지. 추억 속에 잠겨있던 축제들이 다시 관객을 찾을 예정이다. 오는 7월에는 3년 만에 ‘워터밤’ 축제가 개최될 예정이다.
여전히, 50명 이상 인원이 밀집된 공연장이나 야구장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애정하는 대상을 직접 만날 수 있고 응원의 목소리도 낼 수 있다. 사람들은 지겹게 마주하던 코로나 속에서 작은 행복을 발견했다. 앞으로 코로나 방향성은 알 수 없다. 하루아침에 위기를 맞을 수도 있고 종식이라는 마침표를 찍을 수도 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상황이라면, 당장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작은 행복감을 누려보는 건 어떨까? 물론 최소한의 방역 수칙을 지키면서 말이다. 코로나 암흑기를 잘 버텨낸 스스로에게 행복을 선물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