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남구 대연동에서 여성구두 쇼핑몰을 운영 중인 오영경(25) 씨는 요즘 심각한 신경쇠약 증세로 정신과 병원을 다니고 있다. 누구보다 낙천적인 성격으로, 웬만한 일엔 스트레스를 잘 받지 않던 오 씨가 병원 신세를 지게 된 것은 지난달 고객으로부터 받은 반품 박스 때문이었다.
지난 6월 쇼핑몰을 개장한 오 씨는 사업에 성공하려면 남다른 서비스를 선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심 끝에 그가 꺼내든 카드는 반품 택배비를 부담한다는 조건이었다. 오 씨는 "상품에 하자가 있거나 맘에 들지 않아 반품할 경우 반품 택배비는 쇼핑몰 측에서 부담하겠습니다"라는 구호를 내걸고 장사를 시작했다.
그러기를 몇달여. 오 씨는 충격적인 반품 박스를 받아들었다. 제품만 들어 있어야 할 자리에 이미 사용된 '여성용품'이 동봉된 것이다. 오 씨는 "상상을 초월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며 "장사를 접고싶은 마음까지 생긴다"고 고개를 저었다.
뿐만 아니다. 벽돌, 벌레, 심지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동물의 시신도 반품 박스에 담긴다. 신고해도 경찰에서는 처벌할 근거가 없다는 대답만 한다고.
이 쇼핑몰 직원 김주현(29) 씨는 "배송자가 '그게 같이 들어간 줄 몰랐다'고 발뺌하면 더는 책임 추궁하기도 쉽지 않더라"며 "몇 차례 이런 일을 겪다 보니 반품 박스를 열어 보기 전에 기도하는 습관까지 생겼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처럼 반품 배송비 무료 제도를 악용해 처리하기 어려운 쓰레기를 동봉해 보내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반품 무료 반송제는 지난해 11월 소셜커머스 '티몬'을 선두로 일부 인터넷 쇼핑몰에 도입됐다. 소비자가 단순 변심으로 제품을 반송해도 판매업체에서 배송비를 부담한다는 새 판매 전략의 하나. 도입 초반엔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가 늘면서 쇼핑몰 매출 상승으로 이어졌으나 최근 이를 악용하는 소비자들이 늘어 쇼핑몰 업체가 골치를 앓고 있다. 이물질, 혐오물질 등을 함께 동봉해 쇼핑몰 측으로 반품하는 일이 자주 발생하는 것.
이 같은 사례에 대해 쇼핑몰 관계자들은 소비자가 반송비 무료라는 점을 악용해 제품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쇼핑몰을 운영 중인 박지민(34) 씨는 "이전에는 이런 경우가 없었는데 무료 반품을 시행하한 후 가끔 이런 손님들이 있다"며 "서비스업이라 대놓고 항의를 하기도 어렵지만, 말 그대로 '테러'를 당하는 기분"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법적 제재를 가하기도 어렵다. 반품 신청 후 제품을 보내지 않으면 사기죄가 되지만 반송 박스에 이물질을 제품을 함께 보낸 경우에는 처벌 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상대가 공포심을 느낄 만한 욕설이나 협박이 없기 때문에 협박죄도 성립하지 않는다. 더구나 서비스업이라는 특성 때문에 쇼핑몰 측에서 끝까지 문제 삼는 사례는 찾기 어렵다고 한다.
경찰 측은 "과거 쇼핑몰 관련 범죄라고 하면 소비자가 피해를 입었다는 신고가 대다수였는데 요즘에는 이렇듯 반대 상황도 더러 있다"며 "해당 사례는 범죄로 특정할 명확한 근거가 없어 처벌 규정을 찾는 게 힘든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