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10-25 15:38 (금)
사과와 용서가 화답하는 추석을 위하여
상태바
사과와 용서가 화답하는 추석을 위하여
  • 편집위원 박시현
  • 승인 2016.09.11 14:46
  • 댓글 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편집위원 박시현

우리는 대개 자신의 관심사를 중심으로 세상을 본다. 어떤 경우는 자기 관심에 몰두하다가 세상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미디어 심리학에서는 이를 선택적 과정(selective process)이라 부른다. 사람은 자신의 관심과 다른 것은 아예 주목하지도 않고, 관심 밖인데도 어쩌다 주목한 것은 인지하지 못하며, 관심 밖이지만 간혹 인지한 것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게 이 이론의 내용이다. 이처럼 아전인수 격으로 사물을 보는 현대인들에게 요즘 SNS는 관심거리는 물론 관심 밖의 변화도 보게 하는 효능이 있다. SNS를 잘못해서 한글 자판으로 치면 ‘눈’이라고 찍힌다. 신기하게도 SNS는 우리에게 또 다른 세상을 접하는 ‘눈’인 것이다.

얼마 전 나는 SNS에서 진정한 사과의 의미를 다시 느끼게 한 글을 읽게 됐다. 그 내용은 이렇다. 가톨릭교회의 남자 수도단체인 예수회는 아주 오래 전부터 미국 워싱턴 DC에 조지타운 대학을 설립하고 운영하고 있다. 조지타운 대학은 사립 종합대학교로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예수회 대학이자, 가톨릭대학이며, 미국 대학 중 명문 반열에 올라 있다. 그런데 이 대학은 1838년 경영난을 극복하기 위해 노예 매매로 수익을 올렸고, 그 돈으로 대학을 운영한 검은 역사가 있었단다. 최근 이 대학은 178년 만에 기자회견을 열어 어두운 과거를 고백하고 사과했다. 그리고 이 대학은 노예 후손들에게 대학 입학 시 우대 혜택을 주기로 했으며, 노예 매매 정책과 연루된 총장 2명의 이름을 딴 건물 두 동의 이름을 바꾸기로 했다. 그리고 그 두 동 건물 중 하나의 새 이름은 당시 이 대학의 노예 매매 명단에 있는 남성 노예 한 명의 이름을 붙이기로 했다. 이 대학의 사과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케 했으며 피해 당사자들 자손의 용서를 이끌어 냈다고 한다.

우리가 과거사에 대한 사과를 언급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바로 일본의 과거사 문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에게 진정어린 사과 한 마디 하는 것을 듣고 싶은 염원을 한국 사람들은 갖고 있지만, 일본은 정부 차원에서는 단 한 마디도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사과(謝過)는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비는 것이다.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비는 것이 일본 정부에게 왜 그리 힘든 일일까? 내가 아는 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원하는 것은 금전적 보상이 아니다.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이 전쟁 야욕이란 한 국가 권력에 의해 무참히 짓밟혔으니 그 자존심을 회복해 달라는 것이 할머니들의 애타는 소원이다. 최근 한일 정부는 위안부 재단을 만들고 그 재단에 일본 정부가 돈을 출연했다고 한다. 그게 당키나 한 얘기인가. 할머니들은 일본 정부가 본인들의 명예와 자존심을 무시했다고 분노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강은희 여성가족부 장관이 지난 8일 경기도 광주에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숙소인 ‘나눔의 집’을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강 장관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일본 정부가 잘못했다고 반성하고, 사과하고 빌었으며, 얼마 전에 그 뜻으로 재단에 돈을 보내왔다고 했다. 강 장관은 그 돈을 할머니들께 나눠 드릴 터이니 마음 편하게 사시라고 말했다. 여성 가족부 장관이 일본 정부가 하지도 않은 공식 사과를 대신해서 전하는 것도 이상하고,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돈 받고 끝내자고 설득하는 모양새도 어처구니가 없다.

진심어린 사과는 사람을 자유롭게 한다. 나는 사과하지 않는 사람의 마음도 편하거나 자유롭지는 못할 거라고 믿는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먼저 꺼내기를 어려워한다. 그것은 솔직하게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려는 용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또 상대가 사과를 진정하게 받아 들일까 하는 염려도 사과를 주저하게 만든다. 결국, 용서받을 자와 용서할 자는 원래 사회적 관계를 맺은 사람들이고 사과와 이에 따른 용서가 그 관계를 회복하게 해야 해피엔딩이 된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나는 짝꿍과 물건 때문에 몇 날 며칠을 다툰 적이 있다. 당시 우리 집은 부유하지 않았다. 어느 날 없는 돈에 학용품을 사 주셨던 부모님의 정성을 생각하여 나는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그 학용품에 이름을 적어두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짝은 내 연필과 지우개와 공책을 가져갔다. 내 이름 석 자가 쓰여 있는 학용품에 칼로 그어 내 이름을 지우고 그 자리에 본인 이름 석 자를 써 넣었다. 그 학용품은 내 것이 분명했지만, 그 친구는 자기 물건이라고 결사적으로 우겼다. 우리는 자기 물건이다, 아니다 하면서 옥신각신 싸웠고, 급기야 나는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학용품만이 아니었다. 어머니께서 수를 놓아 손수 만들어 주신 손수건도 가져가서 자기 것이라고 우겼다. 그 손수건에는 어머니께서 나의 이름을 수놓아 주셨는데, 내 짝은 이름이 수놓인 것을 뜯고 그 자리에는 짙은 펜으로 자기 이름을 적어 놓았다. 속이 상할 대로 상한 나는 어머니께 이 모든 사실을 고자질했다. 어머니께서는 자초지종을 들으시더니, “속상했겠구나” 하시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고 나를 꼭 안아 주셨다. 나는 드디어 어머니가 내일 당장 학교에 가서 이 친구를 혼내주는 장면을 상상했다.

그러나 며칠 후 어머니는 연필 한 타스, 지우개 두 개, 공책 열 권, 손수건 두 장을 내 앞에 내놓았다. 그리고 연필 한 타스의 반을, 지우개 두 개 중 하나를, 공책 열 권 중 다섯 권을, 손수건 두 장 중 한 장을 나에게 주시면서, “나머지 반은 네 짝에게 가져다주어라”라고 말씀하셨다. 심지어 손수건에는 그 친구의 이름이 수놓아져 있었다. 나는 상상대로 상황이 전개되지 않은 것에 대해 어린 마음에 속이 상했지만, 어머니 말씀대로 다음날 짝에게 이들을 가져다주었다. 학기말이 다되어 갈 때쯤, 그 친구는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됐다. 전학 가기 전날, 그 친구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네 엄마한테 가서 ‘고맙습니다’라고 해라. 내가 잘못했다.” 내 짝은 이 말을 하기 전, 우리 어머니의 선물을 받은 시점부터 이미 달라졌다. 내 물건은 물론 일체 남의 물건에 손을 대지 않았다. 그리고 헤어지게 된 마지막 날, 말로 진심어린 사과를 내게 한 것이다. 어머니는 내 짝을 마음으로 용서했다. 그 용서의 마음이 내 짝에게도 전해져, 내 짝은 말과 행동이 달라졌던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지금도 서로가 서로에게 진심어린 사과와 용서가 필요한 일들이 많다. 과거사의 반성 없는 일본 정부는 물론, 세월호 관련 가해자들, 공적 자금을 들어 먹은 해운사와 조선사 책임자들,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돈과 이권을 나누었던 권력자들, 그리고 옥시 사태 가해자들까지도 진심 어린 사과가 있다면 그에 화답하는 용서가 뒤따를 것이다.

어디 국가적 문제만 사과와 용서가 필요할까. 가족은 서로를 잘 아는 사이이기에 마음의 상처를 더 크게 주기도 하고, 사과와 용서가 그냥 스쳐 지나가는 남들보다 더 어려울 수 있다. 추석이 다가온다. 가족이 모인 명절에 쌓이고 얽힌 가족사 때문에 가족 간 폭력이나 살인 사건이 뉴스를 타는 일들이 가끔 벌어진다. 안타까운 일이다. 온 가족이 둘러 앉아 가족 간 깊은 정을 나눌 수 있도록, 이번 추석은 가족 간 서로의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번 추석에는 한가위 보름달이 더욱 휘영청 밝았으면 좋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6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김태호 2016-09-13 19:27:51
불미스러운 사건들이 이번 한가위에는 일어나지 않길 바랍니다.
선배 즐거운 한가위되세요^^

우미선 2016-09-13 11:13:17
사과와 용서와 사랑이 있는 명절을 지향합니다
좋은 글 감사~~~

기드온 2016-09-13 10:31:50
인간이기에다소의
잘못은있을수있겠지요.
그러나잘못한것에대한
진심어린반성이
개인이건나라이건필요하지요.
(우리나리의정치를보면~휴우)
좋은글입니다.
감사합니다.
즐겁고복된추석명절보내세요.

장데레사 2016-09-13 09:06:05
어머니 대단하십니다 그 친구도 어머니께 받은 사랑의 방식으로 자녀를 키우지않을까 싶네요

안안젤라 2016-09-13 08:58:40
! 나도 나름 애국자라고 생각하는데 정책이나 국민의식 등으로 지쳐있는 중. 그래도 깨어있는 생각으로 한걸음씩 내딛어봅시다.가브렐라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