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연안 도시 중 로스앤젤레스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도시인 샌프란시스코. 기자는 친지의 초청으로 최근 이 도시를 방문했다. 일행은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자마자 케이블카를 먼저 타러 갔다. 한국에서 케이블카라고 하면 산처럼 높은 곳을 연결해 사람이나 짐을 운반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의 케이블카는 공중이 아닌 기차처럼 땅에 붙어 다니고 있었다. 알고 보니 전차처럼 선로(케이블)를 이용해 이동하기 때문에 케이블카라고 불린다고 한다.
관광객들은 모두 빽빽하게 케이블카에 올라타 자리를 잡았다. 나는 운 좋게 케이블카 바깥에 매달려서 탈 수 있었다. 케이블카 바깥에 있는 봉을 잡고 서서 달리다 보면 아슬아슬하게 건너편 도로의 차들을 스쳐지나가게 되는데, 그 아찔함이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서서 케이블카를 타 보니 스피드가 온몸으로 느껴지고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샌프란시스코의 모습을 가슴에 담을 수 있어 좋았다.
케이블카를 타고 샌프란시스코 시내를 돌아다니는 내내 안개에 둘러싸인 집들을 보며 샌프란시스코의 몽환적 분위기에 연신 감탄하기 바빴다. 아름다운 분위기를 연출한 안개이지만 가시거리를 좁혀 차들이 운전하기에 위험해 보였다. 하지만 안개와 어우러진 개성 있는 집들은 이런 곳에서 한 번쯤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누구나 가지게 할 만큼 신비로웠다.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가는 귀국행 비행기에서 <인사이드 아웃>이라는 영화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돌아다닌 그 길이 바로 영화의 배경이었기 때문. 마치 한국 영화를 보다가 익숙한 우리 동네 거리 풍경이 나오는 걸 봤을 때처럼 반가움이 느껴졌다.
샌프란시스코는 세계적인 관광 항구도시라는 명성에 걸맞게 시내에서 버스로 몇 분 걸리지 않은 거리에 바다가 있다. 항구에는 좀 전의 빽빽한 집들과 안개가 자욱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탁 트인 바다를 보니, 부산이 떠올랐다. 다른 듯 비슷한 두 항구도시를 생각하다 이역만리 샌프란시스코에서 문득 정겨운 부산이 그리워졌다.
항구엔 유람선을 탈 수 있는 선착장이 있었고, 그 너머로는 샌프란시스코의 랜드마크인 금문교가 보였다. 금문교는 골든게이트(Golden Gate)라는, 골드러시 시대 샌프란시스코 만(灣)을 부르던 별칭에서 따온 이름이다. 금문교는 골든게이트 해협을 가로질러 샌프란시스코와 북쪽 맞은편의 마린 카운티를 연결하는 길이는 약 2,800m의 아름다운 주홍빛의 다리로, 걸어서 건널 경우 40~50분 정도 소요된다.
금문교를 조금 더 가까이서 보기 위해 우리 일행은 유람선을 탔다. 안내방송 라디오 기기를 받아 들고 유람선의 2층 창가에 자리를 잡고 금문교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안내방송에는 한국어도 있어서 창밖 풍경 해설을 듣는 데 언어 장벽이 없었다. 멀리서부터 금문교의 주홍색 금빛 색깔이 눈에 띄었다. 배를 타고 금문교를 향해 나아갈수록 대단한 무언가를 볼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컸다. 샌프란시스코의 상징 건축물인 만큼 엄청난 무언가가 있을 것 같았지만, 정작 눈앞에 보이는 건 그냥 엄청나게 큰 다리일 뿐이었다. 아마도 외지 사람들이 부산의 광안대교를 보는 듯한 느낌이 아닐까. 유람선이 금문교 바로 밑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길에는 알카트라즈 교도소를 볼 수 있었다. 외딴 섬에 홀로 있는 교도소로 현재는 폐쇄됐지만 옛날에는 알 카포네 같은 최고 악질의 죄수들을 수용했다고 한다. 영화 <알카트라즈 탈출>, <더 락> 등의 무대로도 잘 알려진 곳이다.
유람선을 타고 바다 위에서 금문교를 바라본 다음, 기자는 두발로 직접 금문교 위를 걸어봤다시작 지점에서 끝까지 총 2.8km를 건너는데 한 시간쯤 걸렸다. 출발할 땐 금방이면 도착할 것 같았지만 끝이 없는 금문교의 길이를 실감할 수 있었다. 자전거로 지나다니는 사람들부터 조깅하는 사람들까지 관광객이 아닌 현지인의 모습들도 많이 보였다.
미국 여행 중에 고향인 부산의 향기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던 곳이 샌프란시스코였다. 항구도시에서 나오는 동질감이 향수에 젖어들게 했지만, 부산과는 다른 바다색과 각종 외국상점들은 해외만의 이색적인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안개가 자욱한 시내와 한가로이 누워 휴식을 취하는 물개들이 어우러지는 항구까지 샌프란시스코의 얼굴은 다채로웠다.
샌프란시스코는 1960년대 전쟁, 자본주의적 소비문화, 기득권을 거부하는 히피들의 발생지로 알려져 있다. 진보적인 젊은이들이 모여들었던 샌프란시스코는 평화와 사랑을 외치는 그들을 ‘꽃의 아이들(flower children)’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래서 스코트 맥켄지라는 가수가 부른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머리에 꽃을 꽂으세요>라는 노래는 당시 히피들의 애창곡이며 그들의 찬가였다고 한다.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다시 다른 여행지로 향하면서, 기자는 맥켄지의 가사 한 대목을 읊조렸다.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 머리에 꽃을 꽂으세요 /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열심히 돈 모아서 저도 샌프라시스코 여행가고 싶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