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소리, 작은 대화 소리가 마음 안정에 도움...백색 소음기 출시 등 산업화 전망 밝아 / 이지후 기자
"비는 하늘에서 들으면 아무 소리도 나지 않을 거야. 비가 땅에 부딪치고 돌에 부딪치고 지붕 위에 부딪치고 우산에 부딪쳐서 비 소리가 들리는 거잖아. 비가 옴으로 인해 우리는 옆에서 잠자고 있던 사물의 소리를 듣게 되는 거야."
영화 <가을로> 속의 명대사다. 대부분 사람들은 옆에서 잠자고 있던 사물의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안정된다고 한다. 왜 그럴까?
"툭툭툭, 툭툭툭." 조용해야 하는 독서실에 비가 오는 소리가 작게 들린다. 올해 고등학교 3학년인 여지민(19, 부산진구) 씨는 요즘 이 독서실을 꾸준히 찾고 있다. 여 씨는 “너무 조용한 것보다 오히려 이런 소리가 조금씩 들리는 게 공부 할 때 더 집중된다. 이렇게 비 내리는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안정된다”고 말했다.
비 내리는 소리, 사람들의 작은 대화 소리 등을 백색 소음이라고 한다. 백색 소음은 넓은 주파수 범위에서 거의 일정한 스펙트럼을 가지는 소리로 귀에 쉽게 익숙해지는 소리다. 일정한 청각 패턴 없이 전체적이고 일정한 스펙트럼을 가졌으며 흰 빛과 같은 형태의 주파수 형태를 띠기 때문에 백색 소음이라고 불리며, 들리는 패턴이 무작위적이기 때문에 랜덤 노이즈라고도 불린다.
원래 소음은 듣는 사람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소리를 뜻한다. 하지만 백색 소음은 학습에 이로운 효과를 준다. 한국산업심리학회는 백색 소음이 집중력 향상 47.7%, 기억력 향상 9.6%, 스트레스 감소 27.1%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요즘 뜨고 있는 카공족(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도 이 백색 소음과 관계가 있다. 조용한 도서관보다 약간 소란스러운 카페에서 그들이 공부하는 이유는 바로 백색 소음 때문이다. 카페에서 사람들의 대화 소리나 차 지나다니는 소리는 방해가 되기보다 오히려 그들의 집중력을 향상 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는 것.
대학생 이도현(24, 부산진구) 씨는 “처음에는 공부할 때 도서관이나 조용한 곳을 찾으려고 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갈 곳이 마땅치 않아서 카페에서 공부했는데 평소보다 집중이 잘 되는 것 같았다”며 “생각해보니 너무 조용한 것보다 조금씩 들리는 사람들 소리가 뭔가 마음을 안정시켜준 것 같다” 고 말했다.
최근에는 백색 소음을 활용한 백색 소음기도 나오고 있다. 잠을 잘 못 이루는 사람들을 위해 가정용으로도 출시되고 있으며, 어떤 독서실은 다른 카페로 가는 손님들을 붙잡기 위해서 독서실 내에 백색 소음기를 설치했다고 홍보하기도 한다.
백색 소음을 들려주는 사이트들도 늘어나고 있다. 여기서는 빗소리뿐만 아니라 외국에 와 있는 느낌을 주는 소리, 어느 카페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소리, 눈 위를 걷는 느낌을 주는 소리 등 다양한 백색 소음을 들려준다.
직장인 문다영(26, 부산 해운대구) 씨는 “최근에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백색 소음이 도움이 된다고 해서 속는 셈 치고 백색 소음을 틀고 자 보았다. 완전히 조용해도 잠을 잘 못 자는데 이상하게 물이 흐르는 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안정되었고 평소와는 달리 쉽게 잠에 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단, 백색 소음도 적당한 볼륨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산업심리학회는 "지나치게 크게 튼다면 오히려 집중력이 약해질 뿐만 아니라 소음성 난청이 생길 수도 있다. 백색 소음은 80dB 밑으로 트는 게 좋으며 장시간 들은 후에는 잠시 동안 귀를 쉬게 해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알렸다.
한국수면산업협회에 따르면, 최근에 바쁘고 지친 현대인들이 잠을 잘 못 이루고 있으며 불면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어서 국내 수면 시장에 백색 소음을 활용한 산업은 전망이 밝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