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사태: 정부와 의료 집단 간 싸움에 국민 건강 실종
학교폭력: 가정에서 못 배운 공동체 정신, 학교생활로 이어진 것
학부모 갑질: ‘괴물 부모’는 남 자식, 자기 자식 모두 망친다
출생률: 단기적으로 재정 지원은 효과적...장기적으로는 가치관 변화 절실
세계 최하위 한국 출생률 문제를 보자. 한국 출생률은 OECD 38개국 중 최하위다. 2023년 신생아 수는 23만 명으로 합계 출생률은 0.721명이다. 그리고 2023년 4분기 출생률은 사상 처음으로 0.6명 대에 진입했다. 1970년대 한 해 신생아 수는 100만 명을 넘었는데, 너무 짧은 시간에 다른 세상이 확 다가온 듯하다. 출생률이 이 모양이니, 우리나라는 국토를 지키는 병사 수가 부족해서 안보에 위협을 느낄 정도라는 말이 나돈다. 최근에는 50∼60대 인력을 군대의 경계, 군수, 행정, 요리, 청소 등 비전투 분야에 투입하자는 의견이 국회에서 나왔다. 부족한 병사 문제를 해결하고 일자리 창출도 된다고 많은 사람이 이에 맞장구쳤다. 나라가 부르면 언제든지 국가 안보에 헌신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장노년층 회원 2000명이 모여 결성한 자발적 민간 군사 훈련 단체 ‘시니어 아미’가 있는데, 이들은 유사시 참전을 불사한다는 기개(氣槪)가 넘친다고 한다. BBC는 한국 초저출생 문제를 집중취재하고 “Why South Korean women aren't having babies(//vo.la/TzuEoms)”란 제목으로 올 2월 기사화했다. 여기에 실린 저출생 이유는, 일과 육아 병행이 힘들다, 과도한 노동시간/늦은 퇴근 시간으로 주말 링거 투혼하는 주부도 있다, 여성은 경력 단절/승진 누락/퇴사 압력에 시달린다, 여성 고등 교육이 최강이고 여성 야망은 높지만 사회 여건이 부족하다, 어머니 역할은 과거 속으로 사라졌다, 주거비와 사교육비가 살인적이다, 등등으로 끝이 없다. 지금까지 중앙 정부와 각종 지자체는 출생률을 높이기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고 있다. 부모 급여 인상, 세액공제, 기저귀/분유 지원, 어린이집 지원, 신생아 건강관리 지원, 육아휴직 기간 확대, 출산 가구 특례 대출 등등 종류도 다채롭다. 최근에는 2년 이내 출생한 자녀(임신, 입양 포함)가 있는 가구는 ‘신생아 특별공급(일명 특공)’으로 주택 청약을 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여기에 한술 더 떠서, 부영그룹은 자사 직원의 2021년 이후 태어난 자녀에게 현금 1억 원을 지급한다는 정책을 올해 2월에 발표했다. ‘파격적’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세계 최악의 저출생 문제를 놓고 우리가 ‘현금을 주자 말자’ 논쟁하고 있는 사이에, 깜짝 놀랄 만한 통계가 나왔다. 통계청이 9월에 발표한 ‘7월 인구 동향’에 따르면, 올 7월 출생아 수는 2만 601명으로 1981년 월간 통계 작성 이후 7월 기준으로 가장 크게 늘었고, 이는 작년 7월 출생아 수보다 1500명이 증가한 수치였다. 7월 혼인 건수도 통계 작성 이후 월간 기준으로 가장 크게 늘었다. 이어서 발표된 올 8월 출생아 역시 2만 98명을 기록, 작년 8월보다 1124명이 늘어서 5.9% 증가했다. 8월 혼인 건수는 1만 7527건으로 작년 8월 대비 2917건 늘어서 20% 급증했다. 올 7월과 8월 두 달 연속 출생아 수가 늘면서, 연간 출생아 수가 9년 만에 처음으로 증가세를 보일 거라는 희망이 보이기도 한다.
이에, 언론들은 코로나 사태로 혼인을 미뤘던 커플 결혼이 증가했고, 금전 지원 정부 정책이 효과를 나타내기 시작했다는 분석을 내놨다. 어떤 언론은 신생아 특공이 주효했을 것으로 봤다. 정부의 물질 지향 인센티브가 우리 젊은 세대의 아이 출생 동기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전혀 엉뚱한 것은 아닌 듯하다. 그런데 서울대 경제학부 김병연 교수는 돈으로 계산하면 가치가 사라지는 것 중에 결혼과 출산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결혼과 출산은 과거에는 사람의 가치였지만 지금 젊은이들은 자신 생애에 지출해야 할 비용으로 본다고 했다. 그는 선진국이 출생률이 높은 이유는 결혼과 출산을 돈이 아니라 인간 가치 영역으로 여기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단기적으로는 돈이 출생률을 높이고 있는 게 한국 상황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게 얼마나 오래 갈 것인가. 본질적으로 우리 가치관이 변하지 않으면, 출생률은 장기간 꾸준히 오르지는 않을 것이다. TV에 출연한 어느 제주도 해녀 할머니는 젊었을 때 해산이 임박해도 생계를 위해 물질을 나갔다가, 산통이 와서 급하게 배로 귀가하던 중, 배 위에서 아이를 출산했다고 증언했다. 과거 세대는 그렇게 출산도 숙명으로 생각하고 치열하게 치렀다. 최근 조계종이 양양 낙산사에서 템플스테이 형태의 청춘 남녀 만남을 위한 ‘나는 절로’라는 이름의 행사를 가졌다. 결혼이 선택이라는 젊은이 비율이 70%에 이르고, 종교계도 출생률 향상에 팔을 걷고 나선 게 요즘 현실이다. 우리 젊은 세대는 경쟁이 심한 사회에서 살아 남아야 한다. 물질 지향적 욕망이 맞부닥치는 전장(戰場)에서 이기주의는 그들의 '생존 무기'가 됐고, 그들 인생에서 자녀 출생은 후 순위로 밀리고 있다.의료 사태: 정부와 의료 집단 간 ‘우리’ 대 ‘그들’ 싸움에, 국민 건강은 실종
정부의 의료 개혁 강공 드라이브에 맞서는 전공의 파업, 의대생 동맹 휴학, 의료계 전반의 의대 증원 반대가 해결책을 보이지 않고 마주 달리는 열차처럼 정면충돌 양상이 계속되고 있다. 의료계를 잘 모르는 일반인이 의료 사태의 잘잘못을 판단하기는 쉽지 않지만, 이번 의료 사태에 나타난 각종 문제 중, 전공의들이 그렇게 적은 박봉에,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철야 근무를 수시로 할 정도로 격무에 시달리는지 우리는 잘 몰랐다. 응급의학과, 산부인과, 소아응급과, 흉부외과 등 필수 의료 분야를 지원하는 의사 지망생이 적어서 해당 분야 응급실, 진료실 운영이 어렵고, 환자들은 구급차에 실려 부족한 응급실을 찾아 뺑뺑이를 돌다 생명에 위협을 받는 문제도 우리는 이번에 실감하고 있다. 이런 필수 분야 진료 수가를 높여서 그들에게 충분한 재정적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고, 정부가 여기에 예산을 넉넉히 배정해야 한다는 여론도 많다.시골 동네에 의사가 없어서 대도시로 나가야 하는 지방 주민들도 많고, 사소한 증상으로 서울 소재 대형 병원으로 몰리는 환자들 때문에 의료 체계가 엉망이란 말도 나왔다. 또한 진단, 처방, 수술 과정에서 법적 분쟁에 억울하게 휘말리는 의료인이 많다는 고충도 이번에 드러났다. 분만 의료 사고 보험료의 국가 부담을 증액하고, 기타 응급외과 등 필수 의료 분야 의료진들이 진료를 기피하거나 소극적으로 방어 진료하지 않도록 국가가 법적 보호망을 탄탄히 만들어줘야 한다는 의견도 맞는 얘기다.
위에서 나열한 각종 의료계 현안들은 수개월 동안 제시됐고, 그 대책 또한 자주 발표됐다. 이제는 '여야의정 협의체'에 정부, 여당, 야당, 그리고 의료 단체들이 모두 참여해서 의료 정상화 방안을 논의하자는 단계까지 와 있다. 현재 의료 분쟁 현안으로 아직도 끈질기게 남아 있는 이슈는 결국 의대 증원 강행이냐, 철회냐, 아니면 절충 여지가 있느냐, 있으면 2025년부터냐, 아니면 2026년부터냐 하는 것들이다. 때마침, 국세청은 ‘2014∼2022년 귀속 전문직 종사자의 업종별 사업소득 현황’을 발표했다. 1위 의사의 연평균 소득은 4억 원이었으며, 이는 2위 회계사 연평균 소득 2.2억 원의 두 배였다. 곧이어, ‘OECD 보건의료통계 2024’도 발표됐다.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인구 1000명 당 임상(진료) 의사 수 최하위 국가는 멕시코와 한국으로 2.6명, 그다음이 일본 2.9명 순이었고, 그 반대로 오스트리아가 최고로 5.4명, 노르웨이가 그다음으로 4.9명이었으며, 전 세계 인구 1000명 당 의사 수 평균은 3.8명이었다. 또한, 의대 졸업자 수의 인구 10만 명당 전 세계 평균이 14.3명인데, 가장 적은 이스라엘이 7.2명, 그다음이 일본 7.3명, 캐나다 7.5명, 한국 7.6명 순이었고, 가장 많은 나라는 라트비아로 27.5명, 그다음이 덴마크 21.7명, 아일랜드 26.0명 순이었다. 우리나라 의사들의 임금 소득은 19만 4857달러(2억 5900만 원)로 OECD 평균 12만 8368달러보다 많았다. 이에, 의협은 같은 자료에서 한국의 기대 수명, 영아사망률, 암에 의한 사망률 등에서 우리나라가 최상위 의료 선진국에 속한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이처럼 우수한 우리나라 의료 현황을 대통령실과 보건복지부는 애써 외면하고 의사 수 부족만 얘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의협은 “(정부는) 더 이상 왜곡된 주장으로 국민을 호도하지 말고, 우리의 우수한 의료 시스템을 붕괴시키는 현재의 잘못(아마도 의대 증원을 가리키는 듯)을 즉각 중단하기 바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의대 증원이 국민 건강 지키기의 기본이라는 정부 주장과, 의사 수 증원이 모든 의료 문제 해결책은 아니라는 의협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어느쪽이 국민 건강을 지키는 주장인지 시중에는 의료 사태를 보는 다양한 시각과 의견이 좌충우돌하고 있다. 어느 경제학 교수는 이번 의료 사태 시 전공의, 의대생들이 돌아오지 않는 이유는 의대 증원에 따라서 미래 의사인 자신들의 미래 소득이 감소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의사들이 의사라는 직업을 소득 창출 도구로 ‘물신화(物神化, reification)’시켰기 때문이라는 게 이 주장의 근거였다. 의사 수입이 상위를 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고등학교 우수 인재들이 돈과 사회적 지위를 한꺼번에 거머쥘 수 있는 의대 지망으로 쏠리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사실, 문과 우수생은 검사 시키고 이과 우수생은 의사 시킨다는 말이 부모 사이에 유행한 지 꽤 오래됐다. 이런 직업 특권의식을 언론은 ‘검사 캐슬’과 ‘닥터 캐슬’이라고 불렀다. 드라마 ‘SKY 캐슬’에서 따온 별칭이다. 2000년대부터는 전국 1등부터 전국 의대 총정원인 3058등까지는 의대 가고 나머지가 공대 간다는 말도 돌았다. 초등학교 4학년 학원 의대반 얘기도 화제가 된 지 한참 지났다. 2025학년도 입시에서 의대 증원이 확정되자, 휴학한 서울대생이 2023년 418명에서 2024년 813명으로 증가했고, 서울대 농생명과학대 1학년 47%, 수의학과 40%, 공대 27%가 휴학했으며, 이들 대부분은 의대 지망이 휴학 목적일 것으로 추정된다는 뉴스도 있었다.한국의 의대 쏠림, 정확하게 표현하면, 한국의 우수 인재 의대 쏠림 현상은 결국 한국 의대가 성적 위주로 학생들을 선발하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스웨덴은 의대 모집 인원의 1/3은 내신, 1/3은 대학시험, 1/3은 대학 재량(서류/면접/적성고사 등)으로 선발한다고 한다. 독일은 의대 모집 인원의 30%는 내신과 대입시험 합산, 60%는 면접/봉사 점수 등의 대학 재량, 10%는 적성고사 만으로 선발한다고 한다.
아주 흥미로운미 제도를 갖고 있는 나라는 네덜란드인데, 네덜란드의 에라스무스 의대는 1000여 명의 지원자 중에서 400명을 선발한다고 한다. 구체적인 선발 방법에 따르면, 처음 200명은 입학시험 성적순으로 뽑고, 여기서 남은 800명 중에서, 입학시험 성적 65%에 무작위로 추첨으로 뽑힌 사람에게 35%의 가산 점수를 주어 합산한 점수의 상위 200명을 추가로 뽑는다고 한다. 추가 선발 200명은 결국 35%의 추첨에서 얻은 점수 덕에 합격하는 것이다. 이 의과대학은 사회 전체를 위해 의사를 양성하기 때문에 성적 이외의 다양성을 위해 이런 제도를 마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의대는 학부 점수, 의대 입학 점수, 그리고 전인적 평가로 신입생을 선발한다. 여기서 전인적 평가 기준에는 가치관, 인권 존중 활동 등이 중요하게 평가된다고 한다. 이런 평가 기준은 의대가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을 교육 목적으로 삼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집이 가난하면서 좋은 성적을 갖고 있는 지원자는 합격에 상당히 유리하다고 한다. 이런 외국 의대 선발 과정과 기준은 오로지 성적순으로만 미래 의사를 선발하는 우리 의학계에 깊은 성찰의 기회를 요구한다.
또한, 한국의 의대 쏠림 현상은 결국 다른 분야의 인재 부족으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미국과 중국에서는 이미 AI로 제어되는 무인 자율주행차(레벨5 완전자율 주행 단계)가 상용 서비스되고 있다. 심지어 중국과 미국은 한두 회사의 성공 사례를 넘어 로보택시의 대중화 시대로 질주하고 있으나, 한국은 레벨4(특정 구역 자율주행) 단계도 아직 상용화한 사례가 없다고 한다. 최근, 나는 세종시에서 자율주행 버스를 타는 경험을 했는데, 여전히 기사가 타고 있었고, 버스 핸들과 기사 손을 보여주는 TV 화면이 승객 쪽으로 설치돼 있었다. 그 화면을 가만히 보니, 기사가 도로 사정에 따라서 핸들을 잡았다 놨다를 반복했다. 기사가 탔고, 상황에 따라서 기사가 핸들을 선택적으로 조작하니, 완전 무인 자율주행 버스라 부르기에는 아직 거리가 있었다.이렇게 AI, 반도체, 우주항공, 바이오 등 우리나라 STEM 분야에 인재가 부족한데 의대만 정원을 늘리는 것도 문제라는 의견도 있다. 지난해 기준, 서울대 공학/자연계열 입학 정원이 1795명이고, 4대 과학기술원 입학 정원을 다 합하면 2000명 정도라고 한다. 의대 정원 증가보다 어쩌면 공학/자연계열 우수 학생 유치를 위해 이들의 모집 인원부터 먼저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대학 입시의 인재 쏠림 현상은 하나의 국가 트렌드를 반영한다. 과거 경제개발 시대에는 화공학, 기계공학, 경영학이 인기였고, 한때는 교육대학, 사범 계열, 공무원 관련 학과가 인기 절정이었다. 지금은 의대는 물론 로스쿨 문을 두드리는 인재들이 넘치고 있다. 이른바 '전문직 라이선스'가 부와 명예를 다 가질 수 있는 '황금로드'로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경찰대 졸업한 경찰 간부들, 대기업 사원들, 행시 출신 고급 공무원들이 사표를 내고 줄줄이 로스쿨 문을 두드린다고 한다. 결국, 의대 문제는 국민들이 무엇을 인생의 중요한 가치로 여기느냐는 원론적이고 원초적인 가치 지향 문제로 귀결된다.
우리 의료계는 무슨 가치를 지향하고 있을까? 의료 사태 와중에, 의사 업무 일부를 담당하는 수술실 간호사, 혹은 임상 전담 간호사라 불리는 PA 간호사를 합법화하는 개정 간호사법이 통과되자, 의협과 간호사협회가 대립각을 세웠다. 한의대 6년, 추가 의대 2년 과정을 마치면 한의사가 지역 공공 필수 의사가 되는 한정 의사 면허제도를 만들자고 한의사 협회가 제안하자, 의협이 즉각 발끈했다. 심리학자 조슈아 그린은 저서 <옳고 그름>에서 ‘나’라는 인류 개개인는 ‘우리’라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협력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고 했다. 그는 그래야 ‘우리’가 힘을 합쳐 같은 사회 내 다른 집단인 ‘그들’과 대결에서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때, 한 사회 안에서 정치적, 문화적 이익이 갈리는 ‘우리’와 ‘그들’ 집단 간 대결이 생기는데, 나라 전체 행복을 위해서 상식적으로 당연히 같아야 할 이들 집단 간 도덕적 기준이 다른 것은 그 나라의 비극이라고 했다. 그린은 이를 "상식적 도덕의 비극(tragedy of commonsense morality)"이라고 불렀다. 우리나라 의료 사태 속에는 정부, 야당, 환자, 개업의, 의대 교수, 전공의, 의대생, 의대 지망생, 한의사, 간호사 등 여러 ‘우리’라는 집단이 역시 여럿인 ‘그들’이라는 다른 집단과 뒤엉켜 싸우고 있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당연히 같아야 할 ‘국민 건강’이라는 도덕적 목표가 실종됐다. 의료 사태가 우리와 그들의 집단 이기주의 싸움 속에서 ‘상식적 도덕의 비극’이란 딜레마에 빠졌다. 경제학자 김병연은 영국 교수들이 파업 중일 때 임금 인상 데모에 참여 안 하는 교수에게 왜 파업에 참여하지 않느냐고 질문했더니, 그 교수는 “교수는 내가 좋아서 선택한 직업이다. 돈이 전부가 아니다. 가치와 계산이 조화되어야 선진국이다”라고 답변하더란다. 김 교수는 손익만 따지는 한국은 인간 가치가 사라진 후진국이라고 했다. 의료 사태는 정부나 의사 집단 어느 한쪽의 과도한 욕망이 만든 문제라고 누구를 콕 집어서 탓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의료 사태는, 마치 팀 스포츠 쇠퇴와 저출생 현상에서 보는 것처럼, 한국 사회 일상에서 경쟁심리, 물질주의, 이기심은 커지고, 희생, 배려, 협력은 사라지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자화상이 되고 있다.학교폭력: 가정에서 못 배운 공동체 정신이 학교생활로 이어진 것
잔인한 경쟁 사회와 배타적 이기심 문제가 드러난 현상 중에 학폭이 빠질 수 없다. 교육부가 325만 초중고생을 대상으로 전수조사한 2024년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학폭 피해를 봤다는 응답자는 지난해 5만 9000명에서 올해 6만 8000명으로 1년 사이에 15% 증가했다. 이중 언어 폭력이 피해 응답자의 39.4%로 가장 많고, 그 다음이 신체 폭력으로 15.5%, 집단 따돌림은 15.5%, 사이버 폭력 7.4% 순으로 나타났다. 폭력의 과격함은 점점더 심해진 것으로 조사됐다. 뇌출혈, 갈비뼈 부러짐, 볼펜으로 목 찌르기, 두개골이 금 간 사례 등이 있었다. 특히 사이버 폭력 증가가 새로운 경향으로 나타났다. 사이버 폭력은 24시간 괴롭힘이 지속될 수도 있고, 피해 사실을 증명하기가 어려워 혼자 끙끙 앓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한다. 카톡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빼앗아 1개당 10만 원씩 성인 사이버 범죄 조직에 판매해서 도박/성매매/마약 등의 범죄에 악용된 사례도 있다고 한다.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딥 페이크 성범죄로 검거된 474명 중 80.1%인 381명이 10대 청소년이라는 발표가 있었다. 어릴 때부터 컴퓨터와 핸드폰에 익숙한 10대들이 같은 학교 여학생의 얼굴 사진과 나체 상반신을 합성한 딥 페이크 영상물을 만드는 행위를 일종의 게임이나 놀이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아연실색할 일이 아닐 수 없다.
학폭 문제를 다룬 장윤진의 <어른들이 모르는 비행(非行) 청소년들의 세계>에 따르면, 요새 청소년은 교사가 학생의 담배 소지를 발견하고 압수하려 하면, “내 돈으로 산 담배라 못 준다”고 반발하는 경우가 있고, 휴지 주우라는 교사 명령에 학생인권조례 위반이라고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교사가 이런 사항을 지시하면, “남의 일에 참견 마라”고 하거나 “참교육자 나셨네”라고 비아냥거리는 사례도 수집됐다고 한다. 장윤진의 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사이의 성희롱도 심각해지고 있다. 요즘 청소년들은 사이버상에서 그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성인물 영상을 보고 성폭행이 범죄라는 의식이 약하며, 성관계를 도덕적으로 중시할 대상임을 알지 못한다고 한다. 상담교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많은 청소년이 상담 과정에서 성관계 경험을 상담교사에게 숨기지 않는 경향이 뚜렷해졌다고 한다. 요즘 아이들이 왜 이렇게 변했을까? 장윤진에 따르면, 학원/학교 공부에 치여서 요즘 아이들은 질서, 협동, 배려 등 공동체적 인간관계를 배울 기회가 적은 게 문제라고 한다. 또한 타인 존중, 예절, 준법을 가정에서 못 배운 상태가 그대로 학교생활에서 남에게 적대적인 상태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가정과 학교 교육의 인성 교육 실패는 학생들에게 폭력/절도가 나쁜 범죄라는 선악 개념을 약하게 하고, 현실 세계와 사이버 세계를 구분하지 못해서 게임 등에서 적에 대한 파괴적 잔인성을 반복 학습하며, 폭력에서 희열을 느끼거나 생명 경시/잔인함에 익숙하고, 영상에서 본대로 따라 하려는 모방심리가 강하다는 것이다. 이런 학생들의 극단적 이기심이 폭력으로 이어지는 현상은 학생인권조례의 문제이기도 하다. 학생인권조례가 학생 개성과 인권을 존중하는 개인주의가 아니라 개인 의무가 부재한 이기심만 만족시킨다고 장윤진은 진단하고 있다. 내가 아는 한 미국 교포는 미국에 사는 손자의 중학교 교사와 면담에서 이 학교의 교육 목표가 뭐냐고 질문했더니 "건전한 미국 시민 양성"이라는 답변을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한국 방문시 한국에 사는 중학생 손녀는 같은 집에서 몇 주 같이 기거했어도 아침부터 밤까지, 심지어 주말에도 손녀 얼굴 보기가 어려울 정도로 학교에서 학원으로 뺑뺑이를 도는 상황을 목격했다고 혀를 내둘렀다. 결국, 학업 성취 위주의 한국 학교 교육이 경쟁 사회와 연결되고, 그 과정에서 청소년의 극단적인 이기심이 가정/학교에서 공동체 정신을 배우지 못하는 양상으로 퇴화한 결과가 곧바로 오늘날 학교 폭력으로 집적(集積)되고 있다.학부모 갑질: ‘괴물 부모’는 남 자식, 자기 자식 모두 망친다
2023년 7월, 서울 서이초등학교 24세 여교사가 학부모의 과도한 민원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이 발생했다. 뒤를 이어, 작년 9월에는 대전의 40대 초등 교사, 경기도 용인의 60대 교사도 학부모의 교사 인권 침해 사건으로 세상을 등졌다. 수만 교사가 거리로 나서 교권 수호를 외쳤다. 최근 3년간, 학부모 민원으로 담임이 교체된 전국 건수는 129건이라고 한다. 본인이 원해서 스스로 그만둔 교사도 2023년 한 해에 124명에 이른다는 보도도 있었다. 이와 관련된 사례를 나열하면, “급식에 나온 귤을 왜 안 까주느냐”, “애를 하교 후 학원에 데려다 달라”, “마음 다치니 틀린 문제에 빗금 치지 마라”, “아이가 선생님 따라 하고 싶어 하니 반지 끼지 말고 아이폰 쓰지 마라”, “나도 다른 아버지처럼 학교 찾아가 개판 한 번 쳐볼까?” “내가 전공자인데, 그렇게 교육하면 안 된다. 당장 그만두라” 등등이 있다. 전문가들은 이 현상을 단순한 학부모 갑질이 아니라 우리나라 ‘공동체 붕괴’ 현상으로 보고 있다. 정신과 전문의 김현수 명지병원 교수의 저서 <괴물 부모의 탄생>에서는 자기 아이만 잘 되게 하겠다고 선생님을 공격하는 행위는 남의 자식을 무너트리는 것은 물론, 결국은 자기 자식도 망치는 ‘괴물 부모’가 된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학부모 갑질은 ‘내 새끼 지상주의’라는 우리 사회 이기심과 경쟁 풍토의 또 다른 사례라는 것이다. 원래 괴물 부모란 2000년대 초 일본에서 나온 말로, ‘교사 사냥꾼’으로 일본에서 문제가 된 현상이라고 한다. 국내 언론 진단에 따르면, 괴물 부모, 혹은 ‘진상 부모’는 한국, 일본, 홍콩 등 주로 아시아에 많다. 산업화로 핵가족화하면서 과거에 아시아 지역 대가족 중심 규범이 사라지고, 남과 더불어 사는 도덕과 가치를 교육할 가족공동체가 사라졌다는 게 괴물 부모 출연의 핵심 원인이라고 한다. 경쟁, 물질주의, 이기심, 공동체 파괴 현상은 이 밖에도 많다. “그걸요? 제가요? 왜요?”로 요약되는 3요 MZ 세대, 정치인들이 국민 앞에서 펼치는 자기중심적 정쟁, 노 키드 존/노 시니어 존 등이 상징하는 배타적 문화, 전통문화 파괴로 나타난 정체성 혼란 등이 그 사례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