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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차량 보닛에 매달려 25분간 활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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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차량 보닛에 매달려 25분간 활극
  • 취재기자 이현경
  • 승인 2013.07.11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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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다이하드 경찰 김현철 경사의 마약사범 검거기
“어릴 적, 무허가 포장마차를 하던 어머니께서 동네 건달들에게 당하시는 모습을 보고 경찰의 꿈을 키웠다.” 한국의 브루스 윌리스, 다이하드 경찰이라고 불리는 김현철 경사는 최근 시빅뉴스와의 인터뷰를 이렇게 시작했다.
▲ 김현철 경사가 싸이카 부대에서 일하고 있는 모습(사진: 김현철 경사 제공).
그는 지난해 8월 26일 부산 연제구에서 마약 수배범 차량에 25분간 매달려 집요한 추격 끝에 범인을 검거해 한국판 다이하드 경찰이라고 불린다. 10개월 정도가 지난 지금, 그는 부산 영도구 교통 순찰대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비가 조금씩 내려 도로가 촉촉이 젖어있는 상태였지만, 교통경찰들이 타고 다니는 오토바이인 일명 싸이카를 타고 순찰하고 오는 그의 얼굴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김현철 경사가 경찰의 꿈을 키웠던 것은 어릴 적 어려운 환경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공사장에서 일했고 어머니는 포장마차를 했다. 어느 날은 학교를 마치고 어머니가 하던 포장마차에 갔는데, 그는 동네 건달들이 포장마차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고 그곳에 앉아 얼굴에 상처까지 입고 앉아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어릴 적 김현철 씨는 “아, 내가 경찰이 돼서 이런 나쁜 짓을 하는 사람들을 다 잡아들여야겠다”라는 결심을 했다. 자연스레 꿈을 가지게 된 그는 운동도 열심히 했고 경찰에 관련된 영화를 많이 접하면서 경찰 특공대의 꿈을 키우게 됐다. 고등학생이 된 그는 어느 날 다짜고짜 동네 파출소에 들어가 “경찰 특공대는 우째하면 됩니까?”라고 물었다. 그곳에서 만난 당시 경찰로부터 그는 육군 특수부대 근무자는 경찰 특공대 특별 채용이 가능하다는 말을 듣게 되었고, 20세 때 바로 특전사에 자원 입대해 중사로 제대한 후, 특채로 경찰 특공대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특공대원이 된 김현철 경사의 꿈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경찰이 된 후, 그가 꼭 싶었던 업무가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형사였고, 하나는 교통 관련 업무였다. 특공대에서 나와 형사계에 들어갔던 그는 그곳을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일이 생겨났다. 김현철 경사가 형사계를 들어가자마자 아버지가 암이 재발해 위독해졌던 것이다. 그는 형사 생활하면서 일이 너무 바쁘고, 새벽 4시나 밤 11시, 12시까지 근무하는 날이 부지기수여서 아버지 얼굴 한 번 제대로 못 볼 정도였기 때문에, 형사계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김 경사는 곧 경찰에 들어오면서 하고 싶었던 업무 중 하나였던 교통 관련 업무를 맡을 기회가 왔고, 그곳에서 역사적인 그 사건을 만나게 되었다. 때는 지난해 8월, 부산 연제구에서 야간 순찰을 하던 그는 불법 유턴을 하는 차량을 잡기 위해 그 차량을 따라갔다. 그 당시는 밤이었고 비슷한 차량이 많아서 어느 차가 불법 차량인지 헷갈렸었다고 한다. 그는 막 불법 차량을 쫓아갈 때 그 차량의 한 쪽 브레이크 등이 들어오지 않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불법 주정차된 차량 중 한 차가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한 쪽  브레이크 등이 나가 있는 것을 보고, 그는 바로 "저 차로구나”라고 느꼈다고 한다. 김 경사는 그 차량으로 다가가 신분증 제시를 요구했지만, 운전자는 순순히 응하지 않았고, 그때부터 김현철 경사는 묘한 느낌 들어 동료에게 무전을 하려는 순간, 범인의 차량이 김 경사를 향해 돌진해왔다. 김현철 경사는 그 차를 뛰어넘을 생각에 자동차 보닛 위로 올라갔지만, 차량의 속도 탓에 그대로 보닛 위로 누워버렸고, 그때부터 25분간의 영화 같은 추격전이 일어난 것이다. 김 경사가 처음 들었던 생각은 “어, 이것 봐라? 객기를 부리네? 몇 미터 못 가 멈추겠지”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5분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 그는 “와, 이러다 나 죽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고, 10여 분이 지난 후에는 오기가 생기더라는 것이다. 김현철 경사는 “내가 여기서 죽으면 편찮으신 아버지는 충격으로 돌아가실 거 같고, 당시 네 살 배기 아들도 아빠를 잃게 될 것이고, 아내는 남편 없이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고 말했다. 그래서 김 경사는 “내가 여기서 꼭 살아남아서 너 하나만은 잡고 만다”라는 오기로 25분간을 버텼다고 한다. 차량은 정확히 17km를 역주행하면서 달렸고, 앞에 막혀서 있던 차량 때문에, 문제의 차량은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범인은 차가 서기도 전에 문을 열고 뛰어내렸다. 김현철 경사도 “이제 너는 끝이다”라는 생각으로 뛰어내려 범인을 쫓아서 뛰었고, 곧 지하도에서 범인을 검거할 수 있었다. 이 사건이 언론에 크게 보도된 이후 김 경사는 “우리 네 살배기 아들은 아직 제가 출근하기 전에 아빠 오늘은 차 위에 올라 타지마”라고 말한다며 미소를 지었다.
▲ 김현철 경사가 시빅 뉴스와의 인터뷰 도중 웃는 포스를 취했다(사진: 이현경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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