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28일 시행된 부정청탁금지법, 일명 '김영란 법'이 오늘로 시행 1년을 맞았다. 김영란 법은 그간 우리 사회에서 관행처럼 이뤄진 음성적 접대 문화의 개선에 도움이 됐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농가와 소상공인들에게 경제적 타격을 줬다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돼 이를 일부 완화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그러나 다수 국민은 김영란법 완화에 반대하고 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7일 기준, 15개의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된 상태다. 이 중 농축수산물과 그 가공품을 수수 금지 품목에서 제외하자는 취지의 개정안이 가장 많았다.
최근 자유한국당 김정재 의원 등 10명이 9월 15일 발의한 개정 법률안도 이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김 의원은 “현행법상 수수가 금지되는 품목에 한우·과일 등이 포함돼 관련 상품의 판매가 현저히 감소해 산업이 과도하게 위축되고 있다”며 “농·축·수산물과 그 가공품을 수수가 금지되는 품목에서 제외해 어려운 산업 현실을 반영하고, 해당 업계의 과도한 위축 및 피해를 방지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제안 이유를 밝혔다.
이와 더불어, 한국당은 개정을 위한 김영란법 대책 TF까지 출범시켰다. 한국당은 국내 생산 농축산물을 김영란 법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는 개정안 통과는 물론, 현행 식사, 선물비, 경조사비로 각각 3만 원, 5만 원, 10만 원인 금액 상한규제를 10만 원, 10만 원, 5만 원으로 개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관계 부처도 김영란법 개정에 힘을 보탰다. 농업인과 어업인의 이해를 대변하는 농림축산식품부와 해양수산부는 선물비 기준을 10만 원으로 올려달라고 국회에 요청했다. 해수부는 식사와 선물의 가액 기준은 높이고 경조사비 기준은 낮추는 5·10·5 규정을 검토 중이다. 이데일리에 따르면, 김영춘 해수부 장관은 “경조사비 한도가 10만 원으로 규정돼 국민 입장에서 부담”이라며 “5만 원으로 낮추면 당당히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실, 김영란법 개정 카드는 정부와 여당이 먼저 내밀었다. 김영란법에서 국내 농수산물과 관련된 항목을 제외하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 때문. 권익위원회는 현재 진행 중인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경제 상황 동향'에 대한 연구 결과가 나오는 11월 말, 문제를 분석 및 평가 후 연말까지 김영란 법을 보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중소기업 홍보실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이모 씨는 법 개정에 반대했다. 이 씨는 “김영란 법 덕분에 거래처에서 비싼 명절 선물을 기대하지 않는 눈치”라며 “은근슬쩍 접대를 요구하는 케이스도 피할 수 있어, 예전보다 괴로운 술자리가 많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이 씨는 이어 “김영란법을 강화하는 것은 찬성이지만 느슨하게 개정하는 것은 반대”라며 “경제적으로 발생하는 피해가 있다면 그것을 보완하는 다른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학부모 김현오 씨는 “첫째 아이 학교 다닐 때는 명절마다 선생님께 매번 과일 선물을 했다”며 “김영란법 때문에 농축수산물 소비가 위축돼 경제에 영향을 미칠 정도라면 한국은 진작에 망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김영란법으로 서민 학부모의 쓸데없는 걱정거리 하나가 줄어서 좋다”고 말했다.
이처럼 김영란법을 개정을 반대하는 부정적인 여론이 거세 개정 여부는 불투명하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22일 김영란법 개정과 관련한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41.4%가 ‘김영란법 현행 기준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강화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그 외 ‘국내 농축수산물에만 예외를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은 25.6%, ‘현행 기준을 5·10·10만 원 등으로 상향해야 한다’는 응답은 25.3%였다.
한 네티즌은 “부정부패의 뿌리부터 체질을 달리하게 하는 이 법에 보완은 있어도 후퇴는 없다”며 “더 이상 공짜 선물 받지 말고, 공짜 식사 하지 말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김영란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서민들은 명절에 부모님 선물 살 돈도 부족한데 개정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 하겠다”며 “강화하면 모를까 풀어주는 것은 절대 반대”라고 못 박았다.
한편,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도 ‘김영란법’ 개정안에 입을 열었다. 김 전 위원장은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3·5·10’ 한도 상향 논란에 대해 “국민의 90% 가까이가 찬성한다는 여론조사도 있지만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있어 안타깝다”며 “권익위가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국민 여론을 수렴해 알아서 하면 된다”고 밝혔다. 이어 “부패를 없애는 것이 국가 경쟁력을 높인다는 연구도 많은데 과거의 잘못된 관습을 바꾼다고 봐주셨으면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