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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초중고교에 원어민 교사 사라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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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초중고교에 원어민 교사 사라질듯
  • 취재기자 손희훈
  • 승인 2014.02.06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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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교사 지원 시 예산 3년간 급감추세, 올해엔 0원
▲ 원어민 보조교사가 학생들과 색종이 공예시간을 보내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손희훈).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 열풍에 힘입어 1995년부터 영어 말하기가 중시되고 국내에 원어민 보조교사가 처음 생겼다. 당시 전국에 약 1000여 명에 불과하던 원어민 보조교사의 숫자는 이명박 정부가 영어몰입 교육을 도입하고 약 14조원에 달하던 영어 사교육 부담을 덜겠다는 공약을 발표하면서 2007년부터 치솟기 시작하여 2010년에는 전국적으로 8546명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 숫자는 다시 감소하기 시작하여, 2014년 현재 부산시에는 불과 300명의 원어민 보조교사만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부산시도 원어민 교사 사업에 2011년부터 예산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부산시는 2011년에 76억 9500만원이던 원어민 지원 예산을 2012년에는 51억 3000만원으로, 2013년에는 25억 6500만원으로 줄였다가, 2014년에는 원어민 지원 예산을 0원, 즉 한 푼도 배정하지 않았다. 무상급식 시행, 돌봄교실 운영, 다목적 강당 설립과 같은 교육환경 개선문제로 원어민 교사 지원이 더 이상 어렵다는 것이 부산시 교육협력과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부산시가 원어민 보조교사의 인건비 대비 효율성에 대해 회의적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애초에 사업 자체가 부산시 교육청 소관인 것을 시에서 중학교 원어민 보조교사 배치에만 예산을 배정하다가 올해부터 더 이상 지원하지 않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원래 원어민 보조교사 배치에 드는 비용은 원어민 교사의 학력, 영어교육 관련 자격 유무에 따라 개인 당 보수는 월 180만원에서부터 270만원까지 다양하다. 여기에 정착지원금, 왕복항공료, 주거비, 의료비를 포함하면, 원어민 교사 1인을 채용하는데 연간 4000만 원 정도가 든다.

부산시 해운대구 부흥초등학교 교사 김기숙(55) 씨는 내국인 교사들의 전반적인 영어 능력이 향상돼서 원어민 보조교사의 필요성이 줄었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다. 김 씨는 “교육청에서 6개월 또는 1년 단위로 젊은 국내 교사들에게 해외연수 기회를 줄곧 제공해서 영어 교육 전문성이 크게 향상되었고, 아이들도 국내 교사들의 영어 수업에 만족하는 분위기다”라고 설명했다.

덕문여고 3학년 김진아(18) 양은 서른 명이 넘는 학생들을 원어민 교사 한 명이 영어회화 수업을 한다는 것이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다. 김 양은 “수업 내용도 부실하고, 말을 잘 안 듣는 학생들 때문에 원어민 교사는 학생 통제하는 데 시간을 다 보낸다”고 말했다.

부산시 교육청도 이런 배경 때문에 원어민 보조교사 채용 예산을 많이 줄였다. 2009년에 234억이던 관련 예산이 점차 줄어들어, 2014년에는 120억원에 불과하다. 시 교육청 창의교육과정과 원어민 담당자는 원어민 보조교사 사업은 교육부에서 애초에 한시적으로 시작한 사업이었으며 이제 사업 자체가 점차 종료되는 단계라고 밝혔다.

부산시 전체 초중고등학교 수는 641개. 하지만 2014년 기준으로 원어민 보조교사 수는 초등학교 260명, 중학교 20명, 고등학교 14명, 영어체험센터와 같은 교육청 영어 교육 직속기관에 6명으로, 모두 300명에 불과하다. 현재까지 부산시 모든 초등학교에는 각 학교당 1명의 원어민 보조교사가 배치돼 있지만, 중학교와 고등학교에는 정책수행 연구 지정학교에만 배치돼 있어 지속적인 영어 말하기 교육이 단절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일부 학부모들은 원어민 교사 채용이 줄어드는 것에 불만을 표하고 있다. 초등학교 5학년 자녀를 둔 부산 수영구의 최향선(39) 씨는 얼마 전 정부가 국가영어능력평가를 폐지한다고 하자 매번 바뀌는 교육 정책에 불만이 크다. 최 씨는 “원어민 보조교사가 영어 사교육의 부담을 줄여줬는데 이제는 또 영어 교육에 돈을 들여야 할 판”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부산의 가야 초등학교 김민규 군은 능력 있는 원어민 교사를 만나서 재미있게 영어를 배웠다. 김 군은 "제가 배운 원어민 영어 선생님은 자연스럽게 영어를 말하도록 유도해서 딱딱한 한국 선생님들보다 영어를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원어민 보조교사들도 한국의 영어 교육 정책에 대해 우려는 금치 못하고 있다. 부산 초량초등학교에 근무 중인 원어민 교사 릴리 트린(Lily Trinh, 31) 씨는 원어민 교사가 아이들에게 외국인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주고 영어 습득에 전제가 되는 타문화를 쉽게 받아들이는 데 이바지한다고 생각한다. 트린 씨는 “원어민 보조교사는 학생들에게 영어로 생각하는 습관을 갖게 하고, 보다 더 많은 말하기 연습 기회를 줌으로써 실제 영어 사용에 크게 기여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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