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훈녀생정’이란 말이 붙은 블로그들이 등장했다. 훈녀생정이란 ‘훈훈한 여자들을 위한 생활정보’의 약자이며, 훈녀생정 블로그란 매력 있는 여자를 뜻하는 훈녀가 되기 위한 생활정보를 알려주는 팁을 올려놓는 블로그를 말한다. 그런데 외모에 관심이 많은 여자 초등학생부터 여중생과 여고생들이 이런 훈녀생정 블로그에 몰려들면서 어린 소녀들의 과도한 외모 가꾸기는 물론 비행을 부추기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인터넷에서 훈녀생정을 검색하면, “훈녀생정: 훈녀들이 가지고 다녀야할 학교 필수품,” “학교 훈녀가 되는 법”과 같은 제목의 글이나 블로그들이 나타난다. 훈녀생정에서 말하는 학교 필수품은 책가방, 책, 실내화가 아니라 선크림, 마스카라, 비비크림과 같은 화장품이다. 그 이유는 학교에서 오래 생활하는 내내 꾸준히 화장을 유지해야 학교를 대표하는 훈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란다. 화장품과 함께 훈녀생정에서 빠질 수 없는 아이템으로 추천되고 있는 것은 손거울이다. 거울을 수시로 바라보면서 외모를 가꾸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란다. 그 외에도 훈녀 필수품 목록에는 일명 ‘고데기,’ 빗, 지갑, 파우치(화장품 가방) 등이 언급되고 있다. 훈녀생정 블로그나 카페에는 학교 훈녀 되는 법 이외에도 메이크업 방법, 쌍꺼풀 만드는 법, 남자들에게 인기를 얻는 법 등이 게시되고 있다.
하지만 훈녀생정의 블로거들이 올려놓은 대다수의 화장 관련 비법들은 대부분 엉터리거나 부실 정보를 담은 내용들이 들어가 있다. 어느 훈녀생정 블로그는 콧대 높아지는 방법으로 코 양 옆을 꾹꾹 눌러주면 된다고 소개하기도 한다. 그리고 콧구멍이 작아지기 위해서는 코를 후벼서는 안 되며, 얼굴을 베개에 박고 자면, 코가 눌러져서 콧대가 낮아지니 그리 하지 말라고 주문하기도 한다.
부산의 중학생 이모(15) 양은 “콧대가 높아지고 싶어 블로그 말대로 한 달 동안 코 옆을 수백 번 눌렀어요. 그런데 효과가 없는 것 같아서 이젠 안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이 양은 콧대 높아지는 방법을 알려준 블로거에게 해도 안 된다는 글을 올리자 블로거가 하루에 500번은 눌러줘야 효과가 있으니 더 누르라는 대답을 들었다고 어이 없어 했다.
이처럼 훈녀생정 블로그들이 상식적으로 유치한 내용으로 가득 찬 이유는 대부분의 운영자들이 같은 또래의 여중생이나 여고생들이기 때문이다. 이들 어린 운영자들은 자신들의 블로그가 인기 있고 영향력 있는 훈녀생정 블로그로 만들기 위해 근거 없는 정보들을 마구 수집해서 퍼뜨리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 소녀 운영자들은 자신들 스스로가 외모에 집착하는 학생들이다 보니 자신들의 블로그를 보고 ‘나를 따르라’는 식으로 또래 여학생들을 선동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올해 중학교 1학년인 부산의 김모(14) 양은 한 훈녀생정 블로그에 1학년이 화장을 해도 되는지에 대해서 ‘조심스레’ 물어보았고, 그 블로거는 거침없이 화장할 것을 권했다. 그 블로거는 학기 초부터 얼굴을 가꿔야 친구들에게 인기를 얻을 수 있고 또 남자 친구를 사귈 수 있기 때문이라는 답변을 달았다. 김 양은 “훈녀생정을 통해서 제가 잘 몰랐던 것들을 많이 알게 되었어요. 틴트, 비비크림 등 앞으로 살게 많아서 걱정이에요”라며 “블로거 말대로 계속해서 외모를 가꿔 이쁘게 되고 싶어요”라고 덧붙였다.
어떤 훈녀생정 블로그들은 외모 가꾸기를 넘어 학생들에게 비행을 유도하는 글도 서슴지 않고 올려 놓고 있다. 그 중 대표적으로는 ‘교복 치마를 이쁘게 줄이는 방법’과 ‘담배를 피우는 방법’ 등이 이에 해당한다. 교복 치마를 줄이는 방법 중에는 가장 이상적인 치마 기장은 ‘허벅지 중간 사이’이며, 그 이상을 줄이면 팬티가 보일 수 있으니 딱 허벅지 중간까지만 줄이라는 내용도 있다. 또한, 이런 블로그는 중학생 1학년들은 교복 치마를 너무 줄이면 선배들에게 찍힐 수도 있으니까 처음에는 너무 많이 줄이지 말라는 ‘친절한’ 조언을 잊지 않는다.
담배 피우는 방법을 알려주는 훈녀생정 블로그에는 담배를 이쁘게 피는 방법, 도도하게 피는 법 등이 아주 디테일하게 설명돼 있다. 그 외에도 일진이 되는 법, 키스하는 방법, 담배나 술을 살 수 있는 법 등 청소년이 해서는 안 되는 불건전한 행동들이 훈녀생정 블로그를 통해 거침 없이 유포되고 있다. 이런 정보들은 블로그를 타고 전국의 어린 여학생들에게 공유되고 있는 것이다.
부산의 대학생 황모(22) 씨는 “중학교 다니는 여동생이 어느 날부터 화장하고 ‘고데기’를 말고 다니는 걸 본 적이 있는데, 아무래도 훈녀생정을 자주 보는 것 같아요. 화장하는 것까지는 봐줄 수 있는데, 치마 줄이고 담배 피는 것까지 배울까 걱정입니다”라고 말했다.
해운대구의 중학교 교사 신모(41) 씨는 “학생들이 이성에 관심이 많고 아직 어리다보니 판단력이 부족해서 그런 걸 많이 따라하고 있다. 교육청이나 경찰이로 단속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