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7월 13일부터 방영 중인 SBS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 4회에서 배우 공효진 씨가 60~70년대에 유행했던 판탈롱 바지를 입고 나와 화제가 됐다. 판탈롱(pantalon)은 긴 바지를 뜻하는 프랑스어로 16세기 중반 이탈리아 희극에 등장하는 어릿광대 판탈로네(Pantalone)가 좁고 기다란 바지를 입은 데서 유래한다. 우리나라에서 이 말이 보편화된 것은 미니스커트 유행이 퇴조하고 난 1970년 초쯤이며, 밑자락이 넓게 퍼진 여자용 긴 바지를 가리킨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판탈롱 바지가 ‘나팔바지’로 불리기도 했다.
공효진 씨는 모델 출신으로 누리꾼들 사이에서 트렌드 메이커, 혹은 패셔니스타로 불린다. 공효진 씨가 작년 SBS 드라마 <주군의 태양>에서 입고 나온 옷이 2013년 하반기 트렌드가 되기도 했다. 그런 공효진 씨가 판탈롱을 입고 나오자,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판탈롱 바지가 유행할 것이라는 얘기가 오갔다. 판탈롱은 보통 봄이나 가을에 유행하기 때문에, 누리꾼들은 올가을부터 판탈롱 바지가 많은 여성의 사랑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70년대에 들어와 여성의 힘이 강해지면서 국내 여성들의 사회참여가 증가했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로 여성 패션이 한층 자유로워졌다. 이 변화에 일조한 사람이 여성 패션 디자이너 노라노(본명 노명자, 87) 씨라고 패션 전문가들이 말하고 있다. 노 씨는 국내 최초의 패션 디자이너로 1960년대에 가수 윤복희 씨에게 미니스커트를 입혀 당시 유행을 이끈 사람이다. 그녀는 1970년대는 펄시스터즈에게 판탈롱을 입혀 거리의 패션을 장악했다.
펄시스터즈는 1970년 3월 12일에 비정규 음반을 냈는데, 그 음반 속에 <나팔바지>라는 제목의 음악이 수록됐다. 이 음반에서 펄시스터즈는 노 씨가 디자인한 나팔바지를 입고 나와 70년대 젊은이들의 패션에 변화를 일으켰다. 김종석(57, 부산시 해운대구) 씨는 “70년대에는 나팔바지를 입고 거리를 누비는 젊은이들로 가득했다”고 말했다.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공효진 씨는 판탈롱 바지 이외에도 와이드 팬츠(wide pants)를 입고 나왔다. 와이드 팬츠는 폭이 넓은 바지(영어로 팬츠)의 총칭으로 원래 와이드 레그 모델이라 불리는 것인데, 다리의 폭 전체가 넓은 스트레이트 형의 바지를 가리켜 이렇게 불렀다고 한다. 와이드 팬츠 또한 1970년대에 유행했던 옷이다. 최근 공효진 씨가 스크린에 와이드 팬츠를 입고 나온 뒤, 넓게 퍼진 여자용 긴 바지 스타일이 거리 곳곳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여대생 김찬미(24, 부산시 동래구) 씨는 “드라마를 보고 와이드 팬츠를 알게 되었지만, 입고 다닐 자신은 없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거리에서 사람들이 와이드 팬츠 스타일을 입고 다니는 것을 본 여대생 박소연(24, 부산시 영도구) 씨는 “편해 보이고 예뻤다”고 표현했다.
이밖에도 최근 거리의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을 조금만 관찰해보면 과거의 패션이 다시 유행하고 있는 사실이 쉽게 눈에 띈다. 1990년대 미국 거리에서 볼 수 있었던 패션이 2014년 현재 우리나라의 거리에 나타나고 있다. 배꼽이 훤히 드러나는 ‘크롭티’부터 시작해 ‘멜빵바지’, 실제 몸의 허리선보다 높은 위치에 허리선이 있는 ‘하이 웨스트’, 모자의 치수 조절 부분이 스냅으로 되어있는 ‘스냅백 모자’, 신발의 윤곽은 부드러운 목재고 바닥은 고무로 만든 ‘버켄스탁 신발’, 찢어진 청바지라 불리는 ‘디스트로이드 진’, 유일하게 우리나라에서 유행하지 못했던 어깨끈이 없는 캐미솔 형의 간편한 톱인 ‘뷔스티에’까지 다양하다.
90년대의 미국 스트릿 패션은 전반적으로 특별한 형식 없이 아무렇게나 입는 것이 특징이며, 편안함과 자유스러움을 추구하는 패션인 ‘그런지룩’이 유행했다. 그런지룩은 ‘더럽다’는 의미의 ‘그런지(Grunge)’라는 단어에서 따온 말로, 더럽고 지저분한 느낌을 주는 패션을 말한다. 올여름 다시 유행하고 있는 그런지룩의 대표적인 아이템은 찢어진 청바지나 버켄스탁 신발이 있다. 여대생 김보민(24, 부산시 동구) 씨는 “매스컴에서 패셔니스타들이 버켄스탁을 많이 신고 다니는 것을 보고 구입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작년 10월부터 약 두 달 동안 tvN에서 방영된 드라마 <응답하라 1994>는 우리나라의 90년대 패션과 문화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지금까지 과거의 패션이 현재에 다시 돌아와 유행을 이끈 것처럼 드라마에 나오는 인물들의 의상이 올가을 현실에서 다시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경성대 의상학과 학생인 정주희(24, 부산시 금정구) 씨는 “체크 남방의 활용이나 멜빵바지를 보면, 90년대 패션이 유행하는 현상이 하반기에도 계속 이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패션에 관심이 많은 여대생 송세라(24, 부산시 진구) 씨는 “유행이 돌고 도는 현상이 신기하다. 하지만 매스컴의 영향으로 유행이 너무 빨리 변하는 것은 사람들의 소비를 조장하는 일이 될 수 있어 걱정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