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서점 활성화·창작활동 보호 취지 불구, 판매량 저하로 출판사·서점·독자 모두에 부담 / 김민성 기자
건전한 출판과 유통 발전을 위해 자율협약 형식으로 도입된 '도서정가제'가 최근 출판 업계에서 여러 뒷말을 낳고 있다. 동네 서점의 활성화와 작가의 창작 활동 보호를 위한다는 취지에도 불구하고 도서정가제는 아직까지 그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서정가제는 서점 간의 책값 덤핑 경쟁 때문에 학술, 문예 분야의 고급서적 출간이 위축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서점들이 출판사가 정한 도서의 가격대로 팔도록 하는 제도다. 지난 2003년 2월 시행된 도서정가제는 지금까지 세 차례(2007년, 2014년, 2018년) 개정됐다.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독서를 막는 도서정가제 폐지'라는 청원 글이 올라왔다. 자신을 평범한 대학생이라고 소개한 청원자는 2018년 5월 1일부로 강화된 도서정가제가 그러잖아도 부담스러운 책 값을 더욱 올리는 촉매제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청원자는 지난 2014년 개정 후 4년이란 긴 시간 동안 도서정가제의 원래 취지가 출판업계에 잘 실현됐는지에 대해 '아니오'라고 단언하며 그 이유로 세 가지를 들었다.
첫번째 이유로 출판산업 활성화에 실패한 것을 짚었다. 그는 "4년 동안 국민들은 출판산업이 하락세를 걷는다는 뉴스를 많이 접했다. 서적회사가 줄지어 부도가 나며 오프라인 서점의 폐업이 늘었다"면서 출판 업계가 하락세를 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도서정가제가 약속한 동네 서점의 활성화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자발적인 개혁과 지자체의 지원에만 기댔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지난 2017년 멤브레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도시정가제 시행 이후 '온라인 서점 이용이 증가했다'는 응답자가 48.5%, '오프라인 대형서점 이용이 증가했다'가 응답자의 18.9%인 것에 비해 '동네 서점 이용이 증가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8.3%에 불과하다며 오프라인 서점의 쇠태를 몸소 체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청원자는 두 번째로 책 판매량이 감소하는 대신 책 값은 상승한 것을 비판했다. 이 청원자는 전체적인 판매량이 감소하면서 출판사는 재고를 쌓아두면 손해를 입기 때문에 인쇄 부수를 줄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2015년 1만 7958원이었던 평균 책 값은 2016년 1만 8060원으로 올랐다가 지난해 2만 645원으로 대폭 상승했다고 지난달 17일 헤럴드경제가 밝혔다"며 실제로 책 값이 상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세 번째로는 청원자는 독서량 감소를 주장했다. 청원자는 독서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책에 대한 접근성을 증가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누구나 쉽게 다양하고 양질의 책을 접하고 구할 수 있어야 하는데 책값이 오르면 책에 대한 접근성을 감소시킬 뿐"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2017년 멤브레인이 실시한 지난 1년간 성인의 독서율 조사에 따르면, 성인 독서율(일반도서를 1년간 1권 이상 읽은 비율)은 59.9%, 평균 종이책 독서량은 8.3권이라고 한다. 청원자는 "이처럼 책을 읽지 않고 '독서'를 어렵게 느끼는 국민이 많은데 책에 대한 접근성 마저 줄어든다면 독서율이 계속해서 떨어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마지막으로 청원자는 지난 1일 도서정가제 개정으로 전자책 시장도 위축될 기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장기 대여를 통해 소비자들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책을 구매할 수 있었지만 도서정가제에 의하여 올해 5월부터 대여기간이 최장 90일로 제한되며 이전보다 비싼 가격에 책을 구매해야 한다는 것. 그는 "도서정가제를 통해 대여기간을 제한하는 것은 소비자들의 판매 심리가 위축되고 이는 출판 업계의 판매량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직장인 김기우(31, 경남 양산시) 씨는 도서정가제가 책값을 점점 비싸게 만드는 제도라는 것을 국민청원 글을 보고 알았다고 한다. 그는 "최근에는 책값이 2만 원대를 돌파했다. 아이들은 문제집, 대학생들은 전공서적, 고시생들의 참고서, 재미나게 읽을 수 있는 소설 등 모든 세대가 가깝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하는 책값이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어 문제"라며 책값을 올리는 도서정가제 폐지 청원에 동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