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행자 교통사고 61.7% 차지…“금지 입법 필요하지만 국민 인식 개선이 우선” / 정인혜 기자
#1. 직장인 박우현(41) 씨는 얼마 전 운전 중 큰 사고가 날 뻔했다.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않고 무단횡단하던 한 학생과 부딪힐 뻔한 것. 박 씨는 “걸을 때는 앞만 봤으면 좋겠다. 사고가 나면 어쩌려고 도로에서까지 휴대폰을 쥐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핸드폰 보면서 걸어가다가 사고가 나면 보행자 과실 100%로 하는 법안이 생겨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 대학생 김주현(20, 부산시 남구) 씨는 스마트폰을 보면서 자전거를 타던 사람과 부딪힌 경험이 있다. 뒤에서 자전거가 오는 줄도 모르고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치여서 돌아보니 스마트폰을 놓친 자전거 운전자가 되레 화를 냈다고. 김 씨는 “뭐가 그렇게 급해서 자전거 위에서까지 휴대폰을 쳐다보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언젠가 큰 사고를 낼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거리에서도 스마트폰을 놓지 못하는 ‘스몸비’족이 거리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스몸비는 스마트폰(smartphone)과 좀비(zombie)의 합성어로, 스마트폰에 집중한 채 걷는 모습이 마치 좀비와 같다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신조어다.
스몸비가 위험한 이유는 교통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에 집중하다 보니 주위를 살피기 어렵고, 이 같은 부주의가 접촉사고로 이어지는 것이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4~2016년까지 3년간 보행 중 주의 분산에 의한 교통사고 사상자 1791명 중 1105명이 휴대전화를 사용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보행자 교통사고의 61.7%가 휴대전화를 사용하던 중 발생했다는 것이다.
사고유형은 다양하게 조사됐다. 교통안전공단의 발표에 따르면, 보행자 간 충돌이 35%로 가장 많았으나 자동차 17.2%, 자전거16.1%, 오토바이 6.2% 등도 상당한 비율로 나타났다.
보행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성인의 95.7%가 보행 중 스마트폰을 사용한 적이 있다고 답했으며, 21.7%는 실제로 사고가 날 뻔한 적이 있었다고 답했다. 특히 지난 2016년 교통사고로 응급실을 찾은 보행자는 전국적으로 4만1000명이었는데, 그중 15%에 해당하는 6100명 이상이 사고 당시 휴대폰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해외에서는 스몸비족을 적극적으로 제지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미국 하와이주 호놀룰루시는 도로를 건너는 보행자가 모바일기기를 보는 행위를 금지하고 최초 적발 시 15~35달러, 위반 횟수에 따라 최대 75∼99달러의 벌금을 부과한다. 중국에서는 아예 스마트폰 이용자를 위한 전용도로를 만들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관련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으나, 아직 공식적인 대응 방침은 없다. 서울시 등 일부 지자체에서 보행 중 스마트폰 사용 위험을 알리는 안전표지판을 마련한 게 다다. 스몸비족에 대한 대책이 피상적인 예방 활동에 그치는 것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이용자들의 인식 개선이 가장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조례나 안전시설보다 보행 중 스마트폰 사용이 위험하다는 시민들의 인식이 갖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스몸비의 위험성에 대한 이용자 전반의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며 “국민들을 대상으로 보행 중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것이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알리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