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자나 젊은 층이 이웃 무관심 심한 편
반상회, 문화행사로 이웃 간 소통하는 아파트도 남아 있어
얼마 전 아파트로 이사 온 김민수(50, 부산시 동구) 씨는 주변 이웃에게 떡을 돌리기 위해 옆집의 벨을 눌렀다. 김 씨가 “이번에 새로 이사 온 사람이라 떡을 돌리려고 왔다”고 하자, 옆집 사람이 “떡 필요 없다”는 말과 함께 인터폰을 끊었다. 김 씨는 너무 당황해서 말문이 막혔다. 김 씨는 “젊은 사람인 듯한데 문도 안 열어주고 돌려보내는 건 너무 심했다. 요즘 시대가 많이 변했다고 하지만 이웃 간의 정이 이 정도인지는 정말 몰랐다”고 말했다.
이웃사촌이란 말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2018년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아파트 거주 비율은 전국 평균이 49.2%로 나타나 두 집 중 한 집은 아파트 거주민이다. 그러나 예전과 달리 옆집에 누가 사는지조차 모르는 이웃 무관심 아파트 문화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아파트에 살고 있는 여대생 이모(26, 부산시 중구) 씨는 시험기간이어서 밤늦게 공부하고 집으로 오던 길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어두운 밤길을 낯선 사람이 뒤 따라오는 것을 느꼈다. 어느덧 걷다 보니,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까지 도착했고, 뒤 따라 오던 낯선 남자가 엘리베이터까지 쫓아와 같이 타려고 하자, 이 씨는 순간적으로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아파트 바깥으로 뛰어나갔다. 이 씨는 그 일이 있고 난 며칠 후, 깜짝 놀랐다. 이 씨 바로 옆집에서 그때 뒤따라오던 낯선 남자가 나온 것이다. 이 씨는 그 남자에게 너무나도 미안해서 “그때 오해해서 미안하다”고 연거푸 사과했다. 이 씨는 “옆집에 사시는 분을 그런 식으로 오해해서 죄송할 따름이다. 서로 이웃을 모르고 살다보니 이웃 남자를 치한으로 오해하는 일이 생겼다”고 말했다.
모든 아파트 주민들이이웃과 교류를 안 하고 사는 것은 아니다. 대개 자기집에 사는 사람보다는 전세 세입자들이 이웃에 관심이 없는 경향이 있다. 직장인 이민수(34, 부산시 동구) 씨는 최근 결혼해서 신혼집으로 2년 전세를 얻어 한 아파트에 입주했다. 이 씨는 “2년 후면 다시 이사 갈 예정이기 때문에, 굳이 이웃과 인사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전세를 얻어 한 아파트로 이사온 직장인 신승호(29, 부산시 동구) 씨는 다른 전세 세입자로부터 유사한 일을 겪었다. 신 씨는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중 엘리베이터에서 같은 층에 사는 이웃을 만났다. 신 씨는 반가운 마음에 이번에 새로 이사를 왔다고 인사를 건네자 돌아온 답변은 충격적이었다. 신 씨의 이웃은 “나는 전세라서 곧 있다가 나간다. 인사할 필요도 없고, 앞으로 마주쳐도 그냥 모른 척 지나가자”라고 퉁명하게 말했다. 신 씨는 너무 어이가 없었다. 신 씨는 “나도 전세 세입자지만, 아무리 전세 살고 곧 나간다고 해도, 이웃 간에 서로 인사하고 지내는 게 그렇게 싫은 일인지 기분이 몹시 나빴다”고 말했다.
이웃 무관심은 젊은 세대일수록 더 심하다. 아파트 주민인 주부 김숙희(56, 부산시 중구) 씨는 항상 인사를 잘 안 하고 이웃에게 무관심한 사람들을 보면 대개는 젊은 사람들이라고 했다. 김 씨는 “선입견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내가 겪어본 바로는 젊은 사람들이 바빠서인지, 아니면 관심이 없는 것인지, 이웃에게 많이 무관심한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생이나 직장 초년생 등 대부분 20대가 밀집해서 사는 원룸촌은 아예 이웃 무시하기가 규칙처럼 돼 있다. 아는 척 인사를 한다든지, 어느 대학 다니느냐든지 하는 질문은 이웃의 친절함이 아니라‘작업’거는 수작으로 오해받기 십상이다. 대학생 이승주(26, 부산시 해운대구) 씨는 4학년이라 취업 공부를 위해 학교 앞 원룸에서 자취생활을 하고 있다. 이 씨가 사는 원룸에는 대학생들이 대부분이고, 그래서 서로 집에 있는 시간도 적고, 마주칠 일도 별로 없다. 그래도 어쩌다 옆집 여자와 맞추치면, 이 씨는 “이웃에 관심을 안 가지고 싶은 것이 아니라 옆집 여대생에게 인사를 건다든지 하면 다들 사생활 침해로 생각하기 때문에 불편해 한다. 그냥 이기적으로 모른 척하고 산다”고 말했다.
부산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 업무를 맡고 있는 김모(68) 씨도 요즘의 이웃 간 무관심을 비판적으로 꼬집었다. 김 씨는 “한 10년 전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시대가 많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이웃 간에 알고 지내는 경우가 적어져서 세월이 무상하고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오래 거주하는 입주민들이 많은 아파트는 여전히 이웃 간 가깝게 지내는 경우가 있다. 이민석(26, 부산시 동구) 씨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오래된 주민들끼리 왕래도 잦고 친하게 지낸다. 특히 새로운 사람이 이사를 오면 같은 층 이웃집, 윗집, 아랫집이 모여서 꼭 서로 인사를 나누고 새로운 회원 맞은 듯 환영한다. 이 씨가 살고 있는 아파트만의 전통이다. 이 씨는 “그렇게 인사하고 나면 안면이 익어 지나다니면서 인사는 기본이고 음식도 나눠 먹기도 한다”고 말했다.
과거 권위주의 정부 때 시행됐던 반상회를 주민 친목 차원에서 아직도 운영하고 있는 아파트도 있다. 신경숙(48, 부산시 중구) 씨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자체 반상회를 정기적으로 갖는다. 신 씨가 처음 이사 왔을 때 반상회가 있다고 해서 참석하면서 이웃 간 소통이 시작됐다. 신 씨는 “우리 아파트가 반상회 모임을 자주 가지면서 이웃 간의 교류를 많이 한다. 다른 아파트에는 없는 일이어서 우리는 반상회 모임을 꾸준히 이어가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경남 함양의 교산 휴먼시아 아파트는 이웃 간의 교류하기 위해 각종 문화행사를 개최한다. 이 아파트는 명절이 되면 전통 민속놀이, 노래자랑, 음악회 등을 개최한다. 또한 계절마다 봄, 가을맞이 청소 등을 진행하고 뒤풀이도 해서 서로의 친목을 다진다. 아파트 관리소장인 도상동(55) 씨는 “이 아파트는 오래 전부터 주민들이 친하고 단합이 잘 되기로 소문이 나 있다. 부녀회나 동 대표가 열심히 활동한 덕”이라고 말했다.
한 아파트의 입주자 대표인 김모(53, 부산시 동구) 씨는 아파트에 전세로 들어온 사람은 특별히 직접 집으로 찾아가 인사를 한다. 대개 전세 온 사람들이 이웃 입주자들을 외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김 씨는 “한 번 인사해 놓으면 전세 세입자들이 다른 주민들에게 자연스럽게 인사를 하고 지낸다. 아파트 이웃 간 소통은 아무리 사회가 각박하다고 해도 주민들이 하기 나름”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