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카’, ‘릴리바이레드’, ‘캣 매코니’ 업계들, 젠더 뉴트럴 제품 선보여
젊은 층 반응은 긍정적, 기성세대 반응은 ‘갸우뚱’
세계적으로 향수, 패션, 완구 제품에서도 젠더 뉴트럴 트랜드 번져
뷰티 업계에 ‘젠더 뉴트럴(gender neutral)’ 바람이 불고 있다. 성 중립을 의미하는 젠더 뉴트럴은 여성과 남성을 엄격히 구분 짓던 전통적인 관념에서 벗어나 성별 구분 없이 사람 자체로만 생각하려는 움직임이다. 특히나 남녀 구분이 뚜렷하던 뷰티업계에 색조화장은 여자의 전유물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는 브랜드들이 하나둘씩 등장하고 있다.
한국 최초의 젠더 뉴트럴 메이크업 브랜드로는 ‘라카(LAKA)’가 있다. 라카는 모든 제품에 대해 성별을 구분 짓지 않고 판매하고 있다. 모든 제품화보에 여성과 남성이 함께 나와 있다. 색조화장을 원하는 남성 고객들이 광고나 팜플릿에 나오는 여성 모델을 참고해 화장품을 고르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브랜드를 대표하는 모델로도 여성모델 뿐만 아니라 블러셔와 립스틱 등으로 색조화장을 한 남성 모델을 쓴다. 라카 커뮤니케이션 팀은 “일부 남성 고객의 소비율이 높은 품목의 경우, 판매 고객의 30% 정도가 남성”이라고 밝혔다.
대학생 황성준(22, 부산 북구) 씨는 “예전에는 색이 있는 립밤만 발라도 화장했냐는 말을 들을 만큼 남자는 색조화장을 하면 안 된다는 편견이 많았다”며 “남자가 화장을 하는 것에 대한 편견을 깨는 데에 젠더 뉴트럴 화장품이 기여한 것 같다”고 말했다.
기존의 뷰티 브랜드도 젠더 뉴트럴 제품 출시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색조 화장품 브랜드 ‘릴리바이레드’는 지난 시즌에 남성 아이돌 그룹 ‘JBJ’ 출신 권현빈을 모델로 발탁해 화제를 모은데 이어, 남성 아이돌 그룹 ‘골든차일드’의 멤버 최보민과 함께한 틴트 제품 화보를 공개했다. 스킨케어 모델과 같은 깔끔한 이미지가 아니고 립, 아이 메이크업 등 화려한 메이크업을 연출한 최보민의 화보컷을 공개해 사람들 이목을 집중시켰다.
뿐만 아니라 메이크업 브랜드 ‘캣 매코니’가 남성 가수 겸 배우 옹성우를 모델로 발탁해 립스틱 6종을 선보이고, 여성 가수 태연과의 화보 협업으로 대박 행진을 이어가던 ‘지방시 뷰’가 남성 아이돌 가수 강다니엘을 모델로 선정하는 등 남성 모델을 화장품 브랜드 모델로 선보이는 경우가 늘고 있다.
대학생 김성구(24, 경북 경주시) 씨는 “최근 패션·뷰티 업계에서 젠더리스라는 키워드가 이슈화되고 있는데, 그 키워드에 딱 알맞은 마케팅인 것 같다”며 “어느 성에만 치우치지 않고 중립적인 입장을 지킬 수 있다는 점에서 칭찬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TV 광고에서도 화장품 광고 모델로 남자 연예인이 등장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에뛰드 하우스는 광고에 배우 마동석이 등장해 큰 화제를 불러왔다. 마동석은 브랜드를 대표하는 색인 핑크색 옷을 입고 광고에서 브랜드 제품을 설명했다. 최근 네이처리퍼블릭도 배우 오대환이 등장하는 광고를 선보였다. 광고에서 오대환은 에피소드 형식으로 스킨케어와 틴트에 대해 소개하고 틴트를 직접 바르기도 했다.
젊은 층 남성 소비자들은 뷰티 업계의 젠더 뉴트럴 시장에 대해 대부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대학생 김여준(21, 부산 동래구) 씨는 “남성도 화장으로 자신의 외모에 변화를 주고 콤플렉스를 보완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좋은 마케팅인 것 같다”고 말했다. 중학생 최준용(15, 부산 연제구) 군도 “요즘은 남자도 꾸미는데 관심이 많기 때문에 남자가 색조화장을 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다는 생각이 안 든다”고 말했다.
뷰티 업계의 젠더 뉴트럴 변화에 긍정적 입장을 보이는 젊은 여성 소비자들도 있었다. 직장인 김예진(22, 부산 연제구) 씨는 “자신의 외모를 꾸미고 가꾸는 남성이 많아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인 것 같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생 최정민(23, 부산 연제구) 씨는 “화장을 여성이 하든 남성이 하든 화장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기 때문에, 여성에 치우치지 않고 남성 화장도 존중해주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 같아 보기 좋다”고 말했다.
반면, 젠더 뉴트럴 뷰티 시장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여성 소비자들도 있었다. 배정아(22, 부산 영도구) 씨는 “좋은 변화이긴 하나, 이질감이 드는 건 사실”이라며 “남성 모델의 화장품 화보를 보고 제품을 구매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금한나(22, 부산 동래구) 씨도 “개인적으로 화장하는 행동은 여성스러운 행동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남자가 화장한다고 하면 남자답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남자가 화장을 한다고 해도 서투르고 부자연스러워서 좋게 보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뷰티 업계의 젠더 뉴트럴에 대한 40·50대의 생각은 어떨까. 대부분 부정적인 입장을 내보였다. 최재문(50, 부산 연제구) 씨는 “남성과 여성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것 같아서 거부감이 든다”고 말했다. 이혜영(49) 씨는 “우리 세대 사이에서는 화장은 여성의 것으로 인식돼왔기 때문에 낯설고 익숙하지 않다”고 말했다.
국내의 일부 기성세대의 거부반응에도 불구하고, 국내의 젊은세대나 세계 다른 나라의 트렌드는 젠터 뉴트럴 화장품 경향에 긍정적이다. 영국 시장 조사기관 ‘민텔’은 2018년 뷰티 글로벌 트렌드의 하나로 각 브랜드가 나이, 성별, 체형에 기반한 소비자 타깃팅을 멈추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젠더 뉴트럴’은 화장품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향수, 패션, 심지어 어린이들의 완구 제품에서도 포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