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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호 박사의 그리운 대한민국]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우도 여행을 끝으로 '그리운 대한민국' 여행기 연재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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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호 박사의 그리운 대한민국]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우도 여행을 끝으로 '그리운 대한민국' 여행기 연재 마칩니다
  • 장원호
  • 승인 2021.01.23 14: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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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 여행 끝으로 조국 산천 여행기 마칩니다
애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나이들수록 가족과 조국이 소중하고 그립습니다
2021년 신축년 새해 만수무강하십시오...장원호 드림
*편집자주: 지난 주에 이어서 제주도 관광 이야기 중 마지막 우도 편을 계속합니다.

대략 장터를 둘러보고 바로 성산포항으로 갔다. 그곳에서 수 십대의 차량을 포함한 승객을 태우고 나르는 상당히 큰 배를 탔다. 15분 만에 성산포에서 우도 천진항에 도착하니, 가까이서 성산포 일출봉 뒷편이 보였다. 

우도는 150년 전만해도 무인도였는데, 숙종이 군용 말을 키우기 위하여 우도를 개발한 이후 사람이 살기 시작했고, 지금은 제주도 관광지 중 손꼽히는 곳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우리 가족은 이번에 처음으로 우도를 가 보게 됐다. 성산포에서 우도를 왕복하는 페리는 15분마다 있었다. 우도는 여러 편의 영화와 드라마가 촬영된 곳으로 최근 제주도 여행에서 자주 추천되는 떠오르는 관광지다. 우리는 우도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우도 시내관광버스를 타고 돌아보았다. 첫번째로 찾은 곳은 우도에서 제일 높은 산에 서 있는 등대 밑이었다. 등대까지는 걸어서 올라가게 되어 있었지만, 바람도 불고 며칠간 여행으로 지쳐서 등대 구경은 밑에서 쳐다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대신 우리는 산 밑에 있는 해변으로 내려갔다.

우도에도 아름다운 해변이 있었다. 해변가 주변에는 전복과 해삼을 썰어서 파는 포장마차들이 죽 서 있었다(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우도에도 아름다운 해변이 있었다. 해변가 주변에는 전복과 해삼을 썰어서 파는 포장마차들이 죽 서 있었다(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이 해변에는 전복과 해삼을 썰어서 소주와 함께 파는 포장마차가 있고, 또 배를 타고 우도를 돌아보는 선편이 있었지만, 우리는 마침 점심시간이어서 식당으로 갔다. 우도에는 페리 선편이 생기기 전에는 이곳의 토산물인 소라, 전복, 그리고 땅콩으로 유명했다. 특히 땅콩으로 만든 막걸리는 좀 비싸지만 땅콩 향기가 나는 특이한 술이었다. 그러나 쉴 새 없이 다니는 선편이 생긴 이후로는 이곳의 특산물 가치가 없어졌다. 제주도 아닌 중국산 물건이 쉽게 반입되어 어느 것이 제주 토종인지 구분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제주도 현지산인지는 몰라도 땅콩 막걸리에 전복 돌솥 비빔밥을 먹는 점심은 매우 훌륭했다. 식사 후 디저트로 먹은 땅콩 아이스크림과 커피는 제주도 여행의 향기를 더해 주었다. 쉴새없이 돌아다니는 우도 관광버스를 다시 타고, 우리가 찾은 두번째 관광지는 우도와 연결된 작은 섬을 걸어 갈 수 있는 곳으로 화산섬에서 귀한 조개가 부서져서 만들어진 백사장 해변이었다. 추운 10월 하순의 날씨에 잠시 해변 백사장을 거닐고 우리 가족은 다시 시내관광 버스를 탔다.

세 번째 관광버스가 멎은 곳은 별로 볼 곳이 없어서 그대로 차 안에서 머물렀고, 마지막에 멎은 곳은 제법 개발된 해변에 조성된 상가였다. 가까이에는 성산포 일출봉이 보이며, 우도의 종달항도 아주 가깝게 자리 잡고 있었다. 우도 관광을 마치고 저녁 때가 다 되어서 우리 가족은 월정리로 가서 이곳에서 유명한 '명진 전복' 식당에서 저녁을 푸짐하게 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숙소를 나와 렌트카를 돌려주고 서울 귀가길에 올랐다. 비행장에 가기 전에 제주항 앞에 있는 '순옥이네' 식당을 찾았다. 육지에서 오는 큰 배들이 정박하는 제주항 근처 도두동에 위치한 순옥이네 식당은 현직 해녀가 운영 중이라고 한다. 전복 물회, 성게 미역국, 그리고 해물뚝배기 등의 대표 메뉴로 아침을 맛있게 들고 우리는 비행기를 탔다.

진에어라는 항공사는 대한항공이 운영하는 저가 항공사이며 제주-김포를 3만원대에 갈 수 있으니 서울-대구 기차 편보다도 싸다. 저가 항공기라서 오래된 비행기인줄 알았는데, 보잉 737-800으로 최신형 비행기에 불루진 바지를 입은 승무원들이 아주 친절히 손님들을 모셨다.

서울에 도착하니 이제 많이 지쳤다.

지나고 보니
장원호 박사
장원호 박사

세월이 너무 빨리 간다. 29세에 딸랑 50달러를 들고 시작한 미국 생활이 이제 50년을 넘겨, 내 나이는 80세가 넘었다. 하기야 최근 유엔 발표에 의하면, 내 나이가 장년층(75-85세) 중간에 와 있으니, 아직 노인 행세할 나이는 아니다. 아무튼 유엔 기준에 따르면, 나는 아직 젊지만, 나의 지난 인생은 지금 생각해 보면 아름다운 여행처럼 보인다. 지나고 보니, 무척 괴롭고 어려웠던 시절들이 지금은 모두 아름답게만 보인다.

그리고 내가 살아 온 인생은 운칠노삼인 모양이다. 노력이 삼이고 운이 칠이다. 지나고 보니 나는 지금까지 노력도 많이 했지만 운이 좋은 인생을 살았다. 단돈 50달러를 가지고 이국에 와서 좋은 교육, 자랑스러운 커리어, 잘 나가는 자식들, 많은 친구들, 그리고 내 분수에 걸맞는 은퇴생활, 이 모든 일을 누리고 있으니, 이는 운이 없이는 상상도 못 할 일들이다.

필자가 거주하고 있는 라구나 우즈 빌리지 안에 있는 골프 연습장에서 연습 중인 필자(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필자가 거주하고 있는 '라구나 우즈 레저 월드' 안에 있는 골프 연습장에서 연습 중인 필자(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이제는 은퇴인으로서 인생에 관하여 정리할 나이가 된 듯하다. 프랑스의 야심찬 작가 빅톨 위고에 의하면, 人生에는 세 가지 싸움이 있다고 했다. 첫째는 自然과 人間과의 싸움이고, 둘째는 人間과 人間끼리의 싸움이며, 끝으로는 自己와 自己와의 싸움이 그것들이다. 이들 인생의 세 가지 싸움 중 나에게는 자연이나 다른 사람들과 투쟁한 일은 별로 없었던 듯하다. 그러나 사람은 자신의 능력의 20%도 활용하지 못한다고 질책한 Q방법론(사회과학의 방법론으로 특정 주제에 대한 인간의 유형을 찾아준다)의 창시자인 석학 윌리암 스티븐슨(William Stephenson) 선생님의 가르침을 마음 속에 새겨놓고 자신의 노력을 더 하려는 나 자신의 외침이 내 인생을 이끌어 왔다.

스티븐슨 박사는 1930년대에 영국에서 명성을 올린 물리학자 겸 심리학자로서 2차 대전이 끝나고 미국으로 와서 미주리 언론대학에서 은퇴하셨다. 이 세계적인 석학은 위고와는 반대로, 자연, 다른 사람, 그리고 본인을 사랑하라는 본인의 신념을 가르치고 실천한 대학자시다.

나는 이제 은퇴인으로서 건강관리를 잘 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우선 가족들을 더욱 사랑하고 챙기려고 한다. 자고 일어나면 챙기는 나의 55년 반려에게 감사하고, 가끔 전화해주는 아이들 셋이 모두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있으니 더욱 고맙다.

은퇴인으로서 나에게는 할 일이 있어야 한다. 이제는 골프를 치는 것보다 여행과 여행 이야기 쓰는 일을 더 열심히 해보려고 한다(끝).

위 사진은 필자의 저서들 목록으로 일부는 amazon.com에서 구입할 수 있다.
위 사진은 필자의 저서들 목록으로 일부는 amazon.com에서 구입할 수 있다.
*편집자주: 장원호 박사는 1937년 충북 음성 출신으로 어려운 미국 유학 시절을 거쳐 미주리 주립대학 저널리즘 스쿨 교수로 30여 년간 봉직하면서, 저널리즘 분야의 학계와 업계에 수백 명의 후학을 양성하여 전 세계로 배출했으며, 올해로 84세를 맞은 장원호 박사는 캘리포니아 주 은퇴 타운인 ‘레저 월드’에 거주하고 계십니다. 2020년 5월에 시작한 장원호 박사의 시빅뉴스 연재 '장원호 박사의 그리운 대한민국'은 9개월의 대장정을 오늘로 마칩니다. 장원호 박사께서는 그동안 조국 산천 여행기를 읽어주신 애독자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미국에서 보내주셨습니다. 장 박사님은 나이가 들수록 가족과 나라가 더 그리워지고 소중해진다는 말씀을 전하시면서, 2021년 신축년을 맞아 시빅뉴스 애독자 여러분의 만수무강을 빌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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