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림공원은 개인이 가꾸고 키웠다는 정성이 한아름 가득
협제동굴의 신비로움을 즐기며 제주의 멋에 빠지다
흔들리는 가을 억새와 붉게 물든 하늘이 아름답게 어우러지는 제주도에 우리 세가족이 일 주일간을 같이 보내는 계획이 2017년에 섰다. 작은 아들 유진이 가족과 큰 아들 철준이 가족은 10월 26일 먼저 내려가고, 철준이와 우리 내외 셋은 10월 28일 대구에서 조카 은정이 결혼식을 마치고 저녁 비행기로 제주에 도착했다.
마침 사돈 이삼열 박사의 친지가 제주시에 아름다운 별장을 갖고 있어서, 우리는 그 집을 빌려 우리 가족 일행 9명이 오붓한 휴양과 관광을 즐길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이 두 팀으로 나뉘어 내려가게 되니, 차도 두 대를 빌려서 제주도를 여행하게 됐다.
첫 날 처음 들린 곳은 한담 해안이었다. 제주 삼다의 하나인 바람이 무척 세게 부는 가을 날씨때문에 유명한 산책로를 걷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잔뜩 찌푸리고 바람이 세차게 불어대는 날씨에도 해변 모래는 스스로 눈부시고, 드넓은 해안으로 밀려드는 파도는 여전히 옅은 푸름을 머금고 있었다. 해변에서 멀어질수록 조금씩 짙어지는 바다색 덕분에 한담 해안은 제주에서 가장 깨끗하다고 소문난 곳이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는 예쁜 카페와 숙박업소가 자리 잡았고, 그 빈틈에 원형을 유지한 공원도 정겨웠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한담마을 언덕엔 대형 카페 봄날이 자리 잡고 있었다. 봄날 카페 건물은 안팎으로 바다를 가득 품은 천혜의 위치에 있으며 MBC가 '맨도롤 또똣'이란 드라마를 촬영했다고 해서 유명해졌다고 한다.
한담 마을을 보고 그 근처에 있는 한림 공원을 찾았다. 어느 여름에 협제 해수욕장을 왔던 기억이 까마득한데, 그 시절에 이 공원을 가보자고 일행이 제안했지만 그냥 지나쳤던 것을 후회하고 있던 참이었다.
10만여 평이 넘는 면적 위에 하늘로 우뚝 뻗은 야자수 군락과 울창한 소나무 수풀로 둘러 싸인 한림공원은 아직도 살아 있는 92세의 송병규 씨가 만든 개인 소유 공원이다. 제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온갖 정성을 드려서 만든 이 공원에는 다양한 종류의 꽃과 나무가 사계절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한다. 특히, 야자수길, 협재와 쌍용동굴, 아열대식물원, 제주 분재원, 재암 민속 마을, 수석전시관, 새가 있는 정원, 연못정원 등이 있어서 볼거리가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협제 동굴은 250만 년 전 한라산 일대의 화산이 폭발하면서 용암이 흘러내려 형성된 검은 색의 용암 동굴이다. 주변에서 동굴로 스며드는 석회수로 인하여 황금 빛 석회동굴로 변해가는 신비스러운 모습을 볼 수 있는 세계 유일의 2차원 복합 동굴이라고 한다. 협제 동굴은 석회 동굴에서만 볼 수 있는 석순과 종유석들이 자라고 있는 용암 동굴로서 학술적 가치를 크게 인정받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동굴의 내부 천정 모습이 마치 두 마리 용이 빠져 나온 모양을 하고 있어서 쌍용동굴이라고도 불린다.
협제공원을 나와서 남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제주도의 새로운 명소 중문관광단지가 있다. 이 곳은 제주의 독특한 자연 경관과 지리적 조건을 활용하여 국제적인 휴양지로 개발하고자 한국관광공사가 1978년부터 서귀포 옆에 조성한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광광지다. 이 개발 초기인 전두환 정권 시절에 나는 KOBACO(한국방송광고공사)가 건설한 중문 골프장을 몇 번 다녀 올 기회가 있었는데, 당시에는 이곳이 지금과 같은 엄청난 규모의 관광단지로 발전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중문관광 단지는 제주도의 관광산업이 국제적인 수준으로 발전할 수 있게 된 원동력이 됐다고 한다.
제주도는 화산으로 이루어 진 큰 섬이다. 땅바닥에는 아직도 검은 화산석이 깔려 있고, 사방에 검은 화산석이 쌓여있다. 그리고 한라산 높은 산 위에 자리 잡은 백록담도 화산이 솟아나던 분화구였다고 한다. 제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제주에 360여 개가 넘는 크고 작고, 유명하고, 때론 이름도 없는 오름을 사랑한다. 나는 제주에 올 때마다 유명한 오름을 찾아 다녔지만 잘 안 알려진 많은 오름이 언제나 새삼스럽고 신비스럽다.
제주 사람들에게 오름은 마음의 고향이다. ‘오름에서 태어나 오름으로 돌아간다’고 할 만큼 제주인들에게 오름은 삶의 터전이자 공기와도 같은 생활환경이다. 오름 가까이 마을이 생겨났고 죽은 자는 오름 자락에 산담의 보호 아래 묻혔다. 각각의 오름에는 제주 사람들의 얼과 혼이 서려있다. 최근에는 제주 사람들 뿐만 아니라 여행자들에게도 오름이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저마다 다른 생김새, 올라서 바라보는 장쾌한 풍경, 사시사철 다르게 피어나는 야생화들, 마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목가적인 풍경 등 오름이 연출하는 제주의 독특한 자연은 언제나 우리가 가까이 만날 수 있고 제주인의 삶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곳이다.
오름은 대부분 화산석 송이로 이루어져 있다. 비가 많이 내려도 금방 빠져 나가 버리고, 뿌리를 지탱할 만큼 흙이 단단하지 않아 큰 나무보다는 풀들이 잘 자라는 초지였다고 한다. 현재의 숲이 있는 오름은 사람들이 일부러 나무를 심어놓고 관리해서 숲이 울창해진 것이라고 한다. 오름은 그 형태가 제각각이다. 원추형으로 솟아있는가 하면, 분화구(굼부리)를 지니고 있다는 것도 있다. 원형도 있지만 대부분은 말굽형으로 지질이 약한 쪽으로 흘러내리거나 무너져 내린 형태를 하고 있다. 오름 분화구에 물을 가득 담고 있는 화구호가 있는 오름들은 신비롭다. 한라산 등산로 변에 위치한 사라오름과 사려니숲길에 위치한 물찻오름을 비롯하여 람사르 습지로 지정된 물영아리, 물장오리 등 화구호가 있는 오 은 모두 9곳이 있다.
바람이 몹시 부는 저녁에 공항 근처 오솔록 다원을 갔다. 오솔록 주변은 이곳이 올 때마다 들렸지만, 이번에는 다원 옆에 세워진 'Innisfree Jeju House'에 들려 예쁘게 만든 케익과 차를 마셔보고 싶었다. 이 멋진 하우스는 이니스프리 모음재단에서 경영하며, 이 재단은 '제주의 가치를 더한다'는 슬로건으로 제주 본연의 가치를 지키고 사회와 함께 가꾸어 다시 제주에 제공한다는 공익적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 재단의 고상한 의지에 감명 받아 우리 일행은 좀 비싼 차와 케익을 먹었고, 또 작은 선물을 아낌없이 샀다.
우리는 오솔록에서 숙소로 오는 길목에 있는 '운정이네 식당에 들렸다. 아주 깨끗하고 바다가 창밖으로 보이는 이 식당 주인은 자기 딸 운정이가 먹는 토종 음식을 만든다고 자랑한다. 철이 아니어서 그런지 식당마다 제주 특산인 옥돔은 메뉴에 없었고, 양식한 전복과 많이 따오는 소라가 주메뉴였다, 제주도에서 먹는 소라는 그 크기가 작은 편이다. 소라는 회로도 먹지만 역시 구워서 먹는 것이 일품이다.
둘째 날 계획은 세화장터를 들려서 성산포를 가서 배를 타고 우도를 돌아보는 날이다. 사실 나는 이곳을 여러 번 다녀왔지만, 우도를 가보지는 못했다. 내가 가던 때는 우도가 관광지가 되고 연락선이 생기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성산포에는 유일한 관광호텔인 '일출봉 호텔'이 일출봉 바로 밑에 있다. 이 호텔을 지은 성도경 교장 선생님은 나의 처형의 남편이시다. 한국전쟁이 휴전되고 폐허가 된 한반도에 대구에서 흙벽돌집로 건물을 지어 사립 중학교를 세우고 청년 시절부터 교장이 됐다. 그 후 여러 사립학교를 창립했으며, 지금도 경남 창원의 관광고등학교를 관리하는 이사장이다. 우리는 그 분을 늘 교장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지금은 교장직에서 은퇴하고 성산포의 일출봉을 처음 다녀온 후, 은퇴인의 정열을 호텔사업에 쏟아부어 본인이 땅을 구입하고, 또 설계도 하여 호텔을 지었다. 어려운 호텔을 몇 번이고 뜯어 고폈고, 경영이 어려워 큰 아들에게 운영을 넘겼다가, 지금은 다른 분이 인수하여 호텔을 운영하고 있다.
이 호텔이 세워지고 나서, 나는 미국에서 한국에 갈 때마다 제주의 아름다운 비경을 보려고 이곳 호텔에서 체재하면서 성산포 일대를 돌아다녀서 이 지역을 잘 안다. 특히, 세화장터는 몇 번이고 들려 장을 보기도 했다. 지금은 세화장터가 더욱 커져서 온갖 잡화와 식료품이 있지만, 이제는 소박한 옛날 장터 맛이 나지 않아서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