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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희 칼럼] 매축지마을 종의 무게를 아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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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희 칼럼] 매축지마을 종의 무게를 아느냐
  • 논설주간 박창희
  • 승인 2021.03.01 08: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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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여 년 마을역사 상징 '천금보다 더 무거워'
주민들, “자식같은 존재... 제발 돌려 주었으면”
울림 없는 시대, 종의 가치와 의미 일깨워

땡땡땡~ 학교종이 울린다. 바깥에서 놀던 아이들이 부리나케 교실로 뛰어 들어간다. 종이 곧 선생님이다. 노는 데 코가 빠져 종소리를 못 듣게 되면 혼쭐이 난다. 교무실 언저리에 달린 학교종은 모두가 따르고 지켜야 하는 학교의 규율이었다. 보통은 종을 '땡땡땡' 세 번 치면 수업시작, '땡땡' 두 번 치면 수업 종료 신호였다. 화재 등 비상시에는 연속으로 계속 쳤다.   

#학교종의 추억

학교에 방송시설이 갖춰지면서 학교종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종소리는 음악소리나 차임벨로 대체됐다. 어느날 역할을 빼앗긴 종은 고별식도 없이 창고에 처박히거나 고물상으로 흘러갔다. 요즘 아이들은 대부분 학교종이 뭔지도 모를 것이다. 사라진 풍경을 기억하는 일은 때로 쓰라리다. 한때는 그토록 싫던 학교종이 문득 그리워진다.

학교종이 생각난 건, 부산 동구 매축지 마을의 상징과도 같았던 종이 사라졌다는 기사를 접하고서다. 종의 내력을 모르는 도둑에겐 한갓 고철일 뿐일 테지만, 주민들에겐 자식만큼 애틋한 존재였다. 종이 없어진 뒤 주민들이 갖는 상실감과 낭패감은 매우 컸던 것 같다. 오죽했으면 주민들이 현상금까지 걸고 나섰을까. 경찰이 수사하고 있다지만 사라진 종이 제발로 걸어들어 올 가능성은 낮다.

#일제 막사, 마굿간이 삶터로  

매축지 마을은 일제강점기에 군사 목적으로 바다를 메워 육지로 만든 곳이다. 대륙침략을 획책하던 일제는 부산항을 매립한 후 이곳에 군 막사와 마굿간을 지었다. 광복 후 귀환동포들이 이곳에 처음 터를 잡았고, 6·25 전쟁 직후에는 피란민들이 들어와 움막과 판잣집을 짓고 살았다. 주민들은 부두노동이나 철도 하역작업 등을 하며 생계를 꾸렸다.

마을은 부산진역의 철로와 북항 부두의 컨테이너 도로 사이에 세모꼴 형태로 자리하고 있다. 철로 쪽으로는 방음벽이 높이 솟아 있고, 부두 쪽으로는 큰 차들이 달리고, 고가도로엔 시도 때도 없이 소음이 뿌려진다. 부산진시장 뒤쪽의 고가도로, 속칭 오버브리지 아래의 굴다리가 이곳 주민들의 주 통행로다. 과거 물류 요지가 오늘날 교통오지로 전락한 꼴이다. 매축지 마을의 역사는 부산의 근현대사이기도 하다.

매축지의 이 골목 저 골목 집들은 대문이 따로 없다. 좁다란 골목에 고무대야와 화분 등 생활 집기를 내놓아 좁은 골목이 더 좁다. 일부 호사가들이 매축지의 이야기를 조명하고 영화 촬영지로 주목하긴 했어도 매축지의 신산한 삶은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부산 동구 매축지 마을에 있던 원래의 종(사진: 논설주간 박창희).
부산 동구 매축지 마을에 있던
원래의 종(사진: 논설주간 박창희).

#전봇대에 매달린 마을의 상징  

매축지 마을 종의 나이는 대략 70세다. 나이드신 어른들은 6·25 전쟁 직후 매축지 일대를 덮친 대화재 상황을 생생히 기억했다.

“땡땡땡! 땡땡~ 불이야!” 1954년 4월 3일, 전봇대 종이 마을에 울려퍼졌다. 동구 좌천동 일대에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기록에는 당시 화재로 37명이 죽고, 140명이 다쳤으며, 가옥 640채가 불에 탄 것으로 나온다. 큰 피해를 남겼지만, 화재 경보기가 없던 시절 이 정도로 막음한 것은 전봇대 종이 주민 대피를 알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일을 겪은 후 매축지 마을엔 화재가 없었다. 자연스레 ‘전봇대 종’이 마을을 지켜준다는 믿음이 생겼다.

#달밤의 골목 친구 

달밤이 되면 매축지 마을에 달빛이 내려앉는다. 그런 날이면 골목 전봇대에 매달린 종신(鐘身)이 달빛을 튕겨낸다. 고단한 하루를 접고 귀가하는 가장들에게 종이 친구인 양 말을 건다. “오늘도 수고하셨다~” "내일은 더 좋아지겠지~" 누가 종을 치지 않아도 종이 스스로 울려 주민들을 위로하는 다사로운 풍경이 그려진다.  

이처럼, 매축지 종은 마을 공동체의 상징이자 문화 그 자체였다. 매축지(埋築地)라는 말이 암시하듯, 이 종에는 바다를 메운 자리에 힘겹게 삶터를 형성한 실향민들의 피와 땀, 이웃간의 정과 믿음이 서려 있다. 화재 등 비상시엔 경보가 되었고, 평상시엔 마을 공동체의 수신호가 되었다. 단순히 값을 헤아릴 수 없는 보물이다.  

부산 매축지마을 풍경. 낡은 옛 마을길과 주변의 고층아파트가 묘하게 대비된다(사진: 논설주간 박창희).
부산 매축지마을 풍경. 시골 같은 옛 마을길과 주변의 고층 아파트가 묘하게 대비된다(사진: 논설주간 박창희).

#한민족의 심금 울리는 종 

한국 문화사에서 종(鐘)은 독특한 기호이자 상징으로 작용한다. 학교종에서 교회종, 절간의 범종, 풍경(風磬)까지 그 의미와 역할이 심오하고 다채롭다. 세상의 모든 종은 깨어남과 살아있음, 울림, 교감을 부르는 소리다.

안동 조탑동에서 예배당 종지기로 활동하며 동화를 썼던 권정생은 “새벽종 소리는 가난하고 소외 받고 아픈 이가 듣고, 벌레며 길가에 구르는 돌멩이도 듣는다”면서 “그렇기에 한겨울에도 장갑을 벗고 맨손으로 쳐야 했다”고 말한 적 있다.

장편 ‘혼불’에서 작가 최명희는 산사의 범종소리를 이렇게 묘사했다. "가앙 가아아앙~. 그 산의 여윈 가슴 깊은 곳에서 범종 소리가 멀리 울려왔다. 묵은 기와, 벌어진 서까래 고사(古寺) 호성암에서 울리는 종소리이다(‘혼불’ 4권)."

한 대목을 더 보자. "가라앉은 것들을 흔들어 일깨우는 것 같기도 하고, 뒤설레어 떠 있는 것들을 하염없이 어루만져 쓰다듬는 것도 같은 이 종소리는, 차고 단단하고 날카로운 쇠붙이로 만든 것이련만, 그 쇠가 어찌 녹으면 저와 같이 커다란 비애의 손으로 사바의 예토(穢土)를 쓸어 주는 소리가 될 수 있으랴. 종소리는 잿빛으로 울린다."

읽을수록 가슴저미는 명문이 아닐 수 없다. 최명희의 의미 부여가 아니더라도, 종소리는 유사 이래 한민족의 심금을 때리고 울린다. 

#세상 유일의 소리와 공명  

한국 역사상 종의 최고 걸작은 신라 때 만든 성덕대왕 신종(神鐘)이 아닐까. 에밀레종이라 불리는 이 신종의 소리를 듣노라면 마음의 혼란이 걷히고 금새 마법같은 평온을 되찾는다. 신비하고 신통하다 말할 수밖에 없다. 신종의 종명(鐘銘)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

"…이 종소리 들리는 곳마다 악은 사라지고 착한 마음 피어나소서. 나라안 생명으로 태어난 인간은 물론이고 짐승에 이르기까지 바다에 이는 잔잔한 물결처럼 고르게 깨달음의 길에 올라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주소서."

성덕대왕 신종의 소리는 세상에서 낼 수 있는 유일무이한 소리다. 그건 부처님의 소리다. 부단히 타종되고 몸이 으깨져 박살날지라도 그 고통을 인내하는 것이 종이다. 무엇이 이를 대신하겠는가. 마찬가지로, 매축지 마을의 종도 세상 유일의 소리와 공명을 가진 종이다. 그 어떤 값비싼 종도 이 종의 역사와 애환을 대신하지 못한다.

#돌아오라, 종이여!  

지난 주말 매축지 마을을 돌아보던 중 주민 몇 분을 만났다. “그래, 벼룩의 간을 빼먹지… 쯧쯧.” “갔다 놓으면 돼. 그기 뭣이라꼬!" 

종 없는 전봇대를 바라보는 주민들의 허한 눈길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평생을 없이, 모자라게 살면서도 종소리가 세상을, 자신들을 구제할 것으로 믿어왔던 주민들이 아닌가. 가난과 불편을 이기는 지혜를 종으로부터 구했던 사람들이 아닌가. 주거개선이다, 재개발이다 하며 시끄러운 와중에도 종소리를 품고 내일을 꿈꾼 사람들이 아닌가. 

매축지 마을의 한 독지가는 “새 종을 사서 다시 걸겠다”고 했다. 그는 "고물상을 수소문하니 비슷한 종이 있더라. 한 10만 원이면 산다더라. 흔쾌히 기증하고 싶다"고 했다. 이 독지가는 평상시에도 매축지 마을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했다고 한다.   

잠깐! 새 종을 걸기 전에 당부해두고 싶은 게 있다. 새 종도 좋지만, 주민들에겐 원래의 종이 휠씬 더 좋다. 새 종을 걸어 ‘땡땡땡~’ 쇳소리를 흘리기 전에, 옛 종이 돌아와 ‘가앙 가아아앙~’하고 울렸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세상의 모든 종, 종신(鐘神)에게 기도한다. “부디 옛 종이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곧 철거될 운명인 매축지 마을이 더는 소외되고 외롭지 않기를!” “한스런 실향민들이 ‘실종민(失鐘民)’으로 삶터에서 쫓겨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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