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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철 칼럼] 개인과 집단의 불화(不和)...한국은 초경쟁 사회, 초개인주의 사회①: 한국 구기 종목이 아시아에서도 절절매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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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철 칼럼] 개인과 집단의 불화(不和)...한국은 초경쟁 사회, 초개인주의 사회①: 한국 구기 종목이 아시아에서도 절절매는 이유
  • 정태철 경성대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학과 명예교수
  • 승인 2024.10.28 07: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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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올림픽 구기 종목 우수수 예선 탈락...한국 팀 스포츠는 위축 중
사격, 양궁, 펜싱 등 개인기 위주 종목은 강세
“우리 아이, 희생번트 시키지 마세요”...이기적 MZ세대, 팀 스포츠에 안 맞는다

한반도 기상관측 이래 가장 더웠다는 2024년 여름 찜통더위도 서서히 고비가 꺾이고 있다. 기록적 폭염 속에서 국민 숨통을 트이게 한 것은 파리 하계 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단이 보여준 선전이었다. 금메달 13개, 모든 메달 수 32개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최다 메달 기록과 동률이다. 양궁은 5개 종목 메달 전부를 쓸어 모았다. 공교롭게도 양궁, 사격, 펜싱 등 전투에서 유래한 종목에서 기염을 토했으니, 한민족에게 무슨 ‘싸움닭 DNA’가 있는 게 아니냐고 사람들이 껄껄 웃으며 더위를 잊었다.

그런데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 한국 참가 선수단 규모가 1980년대 이후 가장 적은 144명이었다는 점이 특이했다. 우리가 개최국이어서 거의 모든 종목에 출전했던 서울 올림픽 때가 401명,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때가 300명이었으며, 나머지 올림픽 때는 250명 전후인 것에 비하면, 이번 파리의 144명 선수단은 매우 초라한 규모였다.

평창 올림픽 경기장에 펄럭이는 올림픽 기와 각국 깃발(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평창 올림픽 경기장에 펄럭이는 올림픽 기와 각국 깃발(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이유는 간단했다. 이번 올림픽 종목 자체에서 제외된 야구를 빼고, 수십 명의 선수 규모를 꾸려야 하는 남자 축구, 남녀 농구, 남녀 배구 등 아시아 맹주라며 팬들을 우르르 몰고 다니고, ‘억’ 소리 나는 고액 연봉 선수들이 즐비한 종목들은 물론, 전통 강세 구기 종목인 남자 핸드볼, 남녀 하키 등이 올림픽 아시아 예선에서 약소국에 줄줄이 패해 올림픽 본선 진출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구기 같은 팀 스포츠 몰락, 싸움닭 계통 사격, 펜싱, 양궁 등 개인 스포츠 약진이 이번 파리 올림픽 개요였다. 양궁과 펜싱에 단체전이 있기는 하지만, 팀플레이가 아니라 개인 역량 점수를 더하는 방식이어서, 내내 개인 스포츠 범주에 속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신문에 실린 한 인터뷰 기사가 그 이유를 짐작하게 해준다. 인터뷰 주인공은 76세 원로 야구 감독 안계상 씨다. 그는 주로 고등학교 야구부 지도자로 활동했으며 지금도 아마추어 야구 클럽 감독을 맡고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오늘날 대한민국 고등학교 야구부는 야구선수 학부모가 운영비를 내는 ‘물주’라서 팀을 좌지우지한다고 한다. 자기 아들을 경기에 안 내보내면, 학부모가 감독에 항의하는 일이 다반사라고 한다. 안 씨 인터뷰 중 압권은 선수에게 희생번트를 시키면, 학부모들이 감독에게 난리를 친다는 대목이었다. 팀 스포츠인 야구에서 팀 승리를 위해 희생 플레이를 감독이 못 시킨다는 것은 기가 찰 일이다. 그러니 고시엔 교토국제고 우승 같은 신화는 한국 고교 야구에선 일어날 수가 없다는 게 안 씨 설명이었다. 선수들은 개인 기량에만 관심이 있고 애교심이 없다고 한다. 고교 야구부 팬들이어야 할 주민은 애향심이 없어서 낮에 학교 운동장에서 훈련할 때는 말할 것도 없고 밤에 조명 켜놓고 야간경기를 하면 시끄럽다고 민원을 넣는 등 난리법석이란다.

어린 선수와 학부모가 이기심에 불타고 있으니, 대한민국에서 팀 스포츠를 육성하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그 여파가 결국 파리 올림픽 여자 핸드볼 1승이 구기 종목이 올린 성적의 전부가 아니었을까?

전 LG 이광환 감독은 1980년대 후반에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팀에서 감독 연수를 받았다. 카디널스팀이 타 도시로 원정을 떠나면 동행할 수 없었던 이 감독은 두 시간 거리의 같은 미주리주 컬럼비아를 가끔 방문했다. 그곳에는 미주리 주립대학이 있고, 거기에 이 감독의 한국 유학생 지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덕에, 나도 미주리대 유학 시절에 이 감독 일행과 어울려 한국 야구 뒷얘기를 재밌게 들었다. 이 감독은 팀 스포츠는 아이들 성격 형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므로 유학생들에게 나중에 자녀들이 크면 취미로 팀 스포츠에 참여시키라고 말하곤 했다. 야구에서, 주자가 홈으로 달려들고 외야수가 홈으로 송구하면, 투수가 포수 뒤로 가서 백업한다. 타자가 3루 쪽으로 공을 치고 1루로 달리면, 우익수가 1루 쪽으로 백업하려고 내려온다. 타자가 우익수 쪽으로 공을 치고 1루로 달리면, 그때는 포수가 1루 쪽으로 백업에 나선다. 투수, 포수, 야수의 이런 시스템적 움직임은 모두 팀워크에 의한 팀플레이다. 이때 투수가 “내가 공 던지는 투수 임무 말고 그런 백업까지 해야 하나요?”라고 감독에게 대들면, 그 팀은 끝장이다. 대강, 이 감독은 이런 식으로 팀 스포츠의 일사불란한 팀워크를 설명했다. 그런데 요즘 한국에서는 “잘 치는 우리 아들에게 강공 말고 왜 희생번트를 시키느냐”고 부모들이 으르렁댄다니, 오타니 쇼헤이 부모도 학을 뗄 일이다.

팀을 위한 희생정신이 부족한 것 외에도, 요즘 MZ세대 선수들은 자유분방하다. 좋게 말하면 개성이 강하고, 부정적으로 보면 이기적이다.

올 2월 축구 아시안컵 준결승에서 탈락한 한국팀 졸전 뒷면에는 손흥민과 이강인 선수의 충돌 사건이 있었다. 팀 단합과 개인 휴식을 두고 고참 선수와 신참 MZ 선수와의 견해가 어긋났기 때문이다.

프랑스 올림픽 사격 종목 금메달을 모두 어린 여성 선수들이 따낸 게 두고두고 화제가 됐다. 이들 중, 대학생인 21세 양지은 선수는 25m 여자 공기권총에서 금메달을 따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떠나기 전, 아버지께 ‘모르는 사람이 전화하면 (금메달 딴 선수 아버지 찾는) 기자들일 테니 잘 받으시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10m 공기권총에서 금메달을 딴 19세 오예진 선수나, 10m 공기소총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17세 여고생 반효진 선수 모두 자신감이 넘쳤고 긍정 마인드가 샘솟았다. 그들 얼굴 표정과 말에는 주눅 드는 낌새가 없었다.

안세영 선수는 언론과의 공개 인터뷰에서 협회보다는 선수 중심으로 국가대표팀을 운영해달라고 외쳤다. 안 선수는 선수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해 달라고 협회에 요구한 것이다.

프랑스 올림픽 여자 복싱 54kg급에서 한국의 임애지 선수와 북한의 방철미 선수가 나란히 동메달을 땄다. 언론 인터뷰에서 임애지 선수는 “올림픽에서 여러 사람의 사랑을 받아 행복하다. 한국에 돌아가서 동메달을 (그동안 고마웠던) 여러 사람 목에 돌아 가면서 걸어 주겠다”고 했고, 북한의 방철미 선수는 “3등밖에 못해 실망했다. 내가 바라던 메달이 아니어서 별로 기쁜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어느 정치평론가는 선진국에서 태어난 우리나라 MZ 선수들은 개인주의에 충실해서 승자를 존중하고 패자를 배려하는데, 북한 선수들은 금메달에 집착하는 집단주의 유산에 빠져 있다고 평가했다.

한 일간지 스포츠 기자는 파리 올림픽 결과를 놓고 “팀워크의 가치를 발견할 기회를 이번 올림픽에서는 놓쳤다”고 평하면서 팀 스포츠를 육성하기 위해서 새 세대에 맞는 훈련법과 선수 육성 체계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요즘 당돌한 MZ 선수들 언행으로 짐작건대, 그게 쉽지 않은 과제라는 생각이 든다.

팀 스포츠에서 개인과 집단 조화 문제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일본 400m(4×100) 육상 계주팀을 떠올린다. 남자 100m 세계 10위권 안에는 노아 라일스, 키샤인 톰슨 등 미국, 자메이카, 프랑스, 캐나다 등에 9초대 선수가 바글거린다. 여기에 일본 선수는 단 한 명도 없다. 그런데 일본 400m 계주팀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동메달,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해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당시 최고 기록 선수가 10.1초 정도인 4명의 일본 대표팀이 9초대 선수로 구성된 미국, 자메이카팀과 어떻게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을까? 비결은 개인 기록 단점을 바통 터치 속도와 방법을 개선하기 위한 합숙 훈련으로 극복한 데 있다고 언론들이 분석했다. 20m 바통 존에서 바통을 주고받는 두 선수가 고도의 훈련을 통해서 마치 한 선수가 계속 질주하는 것처럼 물 흐르듯 바통 터치의 팀워크를 예술적 경지로 끌어 올린 게 기적을 연출한 것이다.

개인주의는 개인 역량 합이 집단 전체 역량을 뛰어넘을 때 진가를 발휘한다. 일본 400m 계주팀처럼 말이다. 인류는 ‘나’와 ‘우리’가 있을 때 ‘나’가 ‘우리’와 협력해야 생존에 유리함을 깨닫고 개인과 집단이 조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그게 바로 ‘개인주의’가 이기주의와 달리 남의 권리를 존중하는 ‘협력’으로 발전한 이유다.

‘싸움닭 DNA’에 충실한 칼, 총, 활 종목이 살고, ‘여럿이 하나 같이’ 자연스러운 ‘팀워크’가 중요한 팀 스포츠가 죽는 현상은 요즘 한국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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