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또 돌아가야 돼?!”… 잦은 지하철과 광역전철역 에스컬레이터 고장에 시민들 불편 호소
취재기자 이태겸
승인 2024.12.10 09:37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틈만 나면 수리 중인 철도역 에스컬레이터 지겨워
과도한 사용에 잘못된 이용습관으로 툭하면 고장
잘못된 한 줄 서기 습관... 두 줄 서기 문화 정착해야
“도대체 며칠째 수리 중인 거야...?!”
직장인 안혜원(23, 부산시 동래구) 씨는 한국철도공사의 동해선 거제역의 잦은 에스컬레이터 고장으로 불편함을 겪어야 했다. 출퇴근길에 마주하는 에스컬레이터가 고장나 있을 때마다 멀리 돌아서 계단을 타야 하기 때문이다. 혜원 씨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거의 한 달째 안 고치고 있는 것 같다. 사실 거제역 뿐만이 아니라 어느 역이든 에스컬레이터가 자주 고장나있는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에스컬레이터 고장은 교통약자와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에게도 번거로움을 준다. 굳이 에스컬레이터가 아니어도 엘리베이터를 타면 되지만, 적은 수의 인원만 수용 가능하기 때문에 엘리베이터를 오래 기다려야 한다. 대학생 최혜진(22, 부산시 남구) 씨는 “걷는데 무리 없는 청년들이야 크게 문제가 되지 않지만, 걷기 힘든 어르신들이 고생하시는 걸 보면 안타깝다. 에스컬레이터 고장 문제가 최소화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하철과 광역전철을 자주 이용하는 사람들이라면 역사에서 수리 중인 에스컬레이터 모습을 한 번씩은 마주한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자주 보인다는 거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기 위해 앞까지 왔는데, 고장 표지판이나 수리 중인 모습을 보면 누구나 힘이 빠진다.
보기 좋고 균형 잡힌 한 줄 서기... 사실은 에스컬레이터 고장의 핵심적인 원인
부산도시철도 연산역 에스컬레이터. 왼쪽 줄 사람들은 서둘러 가기 위해 걸어가고, 오른쪽 줄 사람들은 여유롭게 서있다. 이렇게 사람들이 한 줄 서기를 통해 균형 잡힌 질서를 잘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잘못된 줄서기 방법이다. 에스컬레이터 고장의 핵심적인 원인이 바로 한 줄 서기다.
한 줄 서기는 당장 갈 길 바쁜 사람들을 위해, 여유로운 사람들은 오른쪽에 한 줄로 서 있자는 시민끼리의 암묵적 룰이다. 광안역에서 근무하는 부산교통공사 직원 박모(29, 부산시 수영구) 씨는 “모든 에스컬레이터는 애초에 가만히 서있는 용도로 설계됐는데, 대부분 걷거나 뛰며 이용하니 쉽게 고장난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움직임으로써 에스컬레이터가 견뎌야 하는 하중은 정적하중뿐만이 아니라 동적하중까지 있기 때문이다. 또한 박 씨는 “한 쪽으로만 걷거나 뛰면 한 방향으로 더 쉽게 마모되기 때문에 고장 확률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한 줄 서기 문화가 정착된 배경은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부터다. 이후 에스컬레이터의 고장 원인이 한 줄 서기라는 게 명확해지면서 2000년 중반부터 행정안전부 및 한국승강기안전공단 등은 두 줄 서기를 지금까지 홍보해왔다. 하지만 뿌리 깊게 박힌 에스컬레이터 위 한 줄 서기 문화는 좀처럼 변화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안전수칙, 탑승방법 등 표시해봤자 무용지물이야"
에스컬레이터 탑승방법과 주의사항 등이 주변에 충분히 표시되어 있지만 큰 효과는 없다. 핸드레일(에스컬레이터 손잡이) 옆, 난간 벽면, 탑승 전 설치된 X-배너 등에 명확히 기재됐어도 사람들은 그냥 지나치거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수영역에서 근무하는 부산교통공사 장모(34, 부산광역시 수영구) 씨는 “이렇게 걷거나 뛰지 말라는 표시가 떡하니 있어도 무용지물이다. 사람들은 이미 한 줄 서기가 몸에 깊게 배어 있다”며 지시사항을 잘 지키지는 않은 이용실태를 지적했다.
오히려 에스컬레이터 탑승방법을 잘 준수하면 주변인들의 눈치를 보게 되는 게 현실이다. 경성대 학생 백창민(25, 부산시 남구) 씨는 “에스컬레이터 위에서 두 줄 서기, 이동하지 않기 등 남들이 크게 지키지 않으니 나 또한 자연스레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다”며 “오히려 나만 그러고 있으면 이상하게 볼 것 같다”라고 말했다.
다양한 고장 원인과 변수로 직원들과 시민들 전부 불편하게 만드는 골칫거리
에스컬레이터의 고장 원인은 특정적 몇 가지가 아니라 매우 다양하다. 평소 수영역 에스컬레이터를 전담 수리하는 김모(32, 부산시 수영구) 씨는 “에스컬레이터 내 결합돼있던 부품이 갑자기 빠진다거나, 내부 부품이 마모된다거나, 사람들이 흘린 물건이 끼인다거나, 충격을 크게 받거나 등 때에 따라 너무나 다르고 다양하다”고 말했다. 고장 주기 또한 상당히 불규칙적이어서 에스컬레이터 고장 발생률을 통계화하기 어렵기 때문에 통계자료 또한 없다.
고장 원인이 다양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김 씨는 “에스컬레이터가 하루 종일 작동되니 가열로 인한 고장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라며 “새벽부터 자정까지 에스컬레이터가 고생하는 만큼, 현장 직원들의 고생 또한 비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당장 바꿀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우선 잘못된 줄서기부터 바꿔 나아가야
당장 에스컬레이터를 교체할 수 없으니, 사람들의 에스컬레이터 탑승 문화부터 바뀌어야 한다. 전국에 있는 노후화된 에스컬레이터를 싹 다 새 것으로 교체하면 고장현상이 많이 줄어들겠지만, 부족한 예산으로는 턱도 없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에스컬레이터 한 대당 교체 비용이 약 5억 원 이상이다. 교체비용, 교체기간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하면 정말 난처한 상황이다.
올바른 에스컬레이터 탑승 문화는 빨리빨리 문화가 고착화된 한국인 특성상 바뀌기 쉽지 않은 현실이다. 평소에 서로 조금이라도 더 배려하고 여유를 가질 줄 알아야 모두가 합리적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각자 바뀌려는 노력이 있어야 에스컬레이터 고장은 최소화되고, 인명피해는 줄어든다. 자신을 포함한 모두의 복지를 위해 각자의 용기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