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서면의 유명 클럽 안. 남녀 모두가 한 데 뒤엉켜 춤을 추고 있다.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은 해가 밝을 때까지 지치지 않고 놀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그 때 그들이 찾는 게 있다. 그것은 카페인이 가득한 이른바 에너지 음료를 양주니 소주와 함께 섞어 마시는 것이다. 그러면 클럽 분위기에 더 취하게 된다. 클럽에서 에너지 음료와 술을 섞어 마신 경험이 있다는 대학생 조모(22, 부산 금정구) 씨는 “클럽에서 카페인이 함유된 에너지 드링크와 술을 섞어 마시면 심장이 쿵쾅거리면서 더 흥분된 상태에서 놀 수 있다”고 전했다.이들이 마시는 음료는 ‘에너지밤’이라 불린다. ‘에너지’라는 단어와 밤새도록 춤춰도 지치지 않는다는 의미로 폭탄을 뜻하는 영어인 ‘밤(bomb)’을 합쳐 '에너지밤'으로 불리는 것. 에너지밤은 '핫식스,' '레드불,' '번인텐스' 등의 카페인 에너지 음료와 소주, 양주 등 각종 주류를 혼합해 만든다. 에너지밤의 맛은 달달하고, 느낌은 가볍다. 클럽에 출입하는 젊은이는 물론 대학가 주점에서도 에너지밤은 인기가 높다.
하지만 에너지밤은 건강을 해칠 위험이 크다. 에너지 음료는 카페인이 다량으로 함유돼 있어 일종의 각성제로 사용되다 보니 시험 기간을 앞둔 학생들이나 밤을 새우워야 하는 사람들이 주로 마신다. 한국소비자원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유통 중인 에너지 음료 35개 제품을 조사한 결과, 평균 카페인 함량은 청소년 일일 섭취 제한량 125㎎의 절반을 넘어서는 67.9㎎이다. 이는 다른 식품의 섭취 없이 하루에 에너지 음료 2캔만 마셔도 카페인 중독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대학생 김도현(25, 부산 동래구) 씨는 시험공부할 때 에너지 음료를 주로 찾는다. 그는 “늦은 시간까지 공부하기 위해서는 잠을 이겨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핫식스를 3캔이나 마셔가며 공부한 적도 있다. 심장이 정말 빠르게 뛰어서 새벽에 잠을 청해도 잠이 오지 않아서 애를 먹은 적도 있다”고 전했다.
한국소비자원의 자료에 따르면, 에너지 음료 섭취 경험이 있는 대학생 355명 중 술에 섞어 마신 경험이 있는 학생은 175명(49.3%)이다. 에너지 음료와 술을 섞어 마시면 술만 마신 사람에 비해 심장징환은 6배, 수면장애는 4배 이상 발생할 확률이 증가하고 폭력성도 높아진다고 소비자원은 경고한다.
대학생 신모(24, 부산 남구 대연동) 씨는 대학교 MT 자리에서 친구들과 함께 에너지밤을 마시는 것은 흔한 일이라고 말했다. 늦은 시간까지 놀 수 있고, 일반적인 주류를 섭취하는 것보다 더 빨리 취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 신 씨는 “실제로 주위에 평소 술자리에서도 에너지밤을 마시는 친구들이 많다. 아직까지 에너지밤을 먹고 난 후에 큰 부작용을 느낀 적은 없어서 에너지밤의 위험성을 느끼지는 못하겠다”고 말했다.
사람의 체질이나 특성에 따라 다르겠지만, 직장인 안모(25) 씨는 에너지밤을 마신 후 응급실에 간 경험이 있다. 그는 원래 주량이 세지 않아 술을 자주 마시지 않지만, 친구들과 모처럼 가진 술자리에서 양주에 에너지 음료를 타 마시다가 심박수가 빨라지고 현기증이 심하게 나 급히 병원을 찾았다. 안 씨는 “평소에 에너지 음료를 자주 먹어 카페인 중독이 되는 건 아닌가 하고 걱정했지만,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칠 만큼 큰 부작용은 겪지 못했다. 하지만 못 마시는 술과 함께 먹다 보니 탈이 난 것 같다”고 전했다.
2003년 스웨덴에서는 에너지 음료와 보드카를 섞어 마신 남성 2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캐나다와 스웨덴에서는 에너지 음료와 술을 혼합해 마시지 말라는 주의 문구를 술병에 의무화하고 있으며, 아르헨티나는 에너지 음료 판매를 금지하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은 우리나라도 에너지 음료와 술의 혼합 섭취에 대한 주의 문구 표시를 의무화하고, 유흥업소에서 혼합주 판매를 금지할 필요가 있다는 보도자료를 낸 적도 있다.
경성대 보건진료소 이예나 씨에 따르면 현재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에너지드 링크 1캔에는 60mg부터 300mg 가량의 카페인이 포함디어 있다. 이 씨는 “에너지 음료에 함유된 다량의 카페인은 실제로 마신 술보다 적게 마신 것처럼 뇌를 속이는 작용을 하므로 에너지 드링크와 술을 섞어 마실 때는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