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정모(34) 씨는 지난해 11월 결혼식을 올렸지만 아직 혼인신고는 하지 않았다. 결혼식 후 1년간 혼인신고를 하지 않기로 남편과 합의했기 때문. 조기 이혼이 흔한 시대에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판단에서다.
결혼식 후 반 년이 채 되지 않아 이혼하는 지인들을 더러 봤다는 정 씨는 “남편과 사이가 너무 좋긴 하지만 1년간 살아보기 전엔 혼인신고를 할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결혼식을 올리고도 혼인신고를 미루는 부부가 늘어나고 있다. 일정 기간 ‘합법적’ 부부가 되는 것을 유예한 채 상대와의 결혼 생활을 전반적으로 탐색할 기회를 갖겠다는 실리적 계산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바람을 타고 혼인신고를 늦추는 추세가 젊은 세대에서 당연스레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지난달 28일 결혼정보회사 듀오는 “미혼 남녀 절반 이상은 결혼식 후에 혼인신고를 하는 것을 선호한다”는 설문 결과를 발표했다. 듀오에서 25세~39세 미혼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미혼남녀의 혼인·이혼 의식’에 대해 설문 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자의 절반 이상(64%)이 혼인신고를 ‘결혼식 후’에 하겠다고 답변했다.
반면 ‘결혼식 전’에 한다는 응답은 27.2%에 머물렀다. ‘기간 상관 없이 아이를 낳은 뒤에 한다’는 의견은 6%였으며, 아예 ‘혼인신고를 하지 않겠다’는 답변도 2.8%가 나왔다.
혼인신고를 미루는 이유에 대해서는 ‘결혼에 대한 확신 문제’라고 대답한 응답자가 49.1%로 1위를 차지했다. 이어 ‘혼인신고에 큰 의미를 안 둬서’(27.2%), ‘가족관계등록부에 남는 기록이 싫어서’(8.1%), ‘자유로워지고 싶어서’(7.3%)라는 이유로 혼인신고를 결혼 후에 하고 싶다고 응답했다.
이처럼 혼인신고를 늦추는 경향은 재혼에 나서는 중장년층 세대에도 만연한 듯 보인다. 지난해 8월 재혼한 박모(55) 씨도 혼인신고는 일찍 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박 씨는 혼인신고를 늦추는 이유에 대해 “두 번의 실패를 경험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는 “아내를 놓칠까 조급한 마음에 결혼식을 서두르긴 했지만, 혼인신고는 되도록 늦게 하고 싶은 마음”이라며 “상대방을 충분히 파악한 이후에 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혼인신고 기피’ 현상이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보는 시선도 있다. 기혼 기록이 남을까 걱정하는 사람은 애초에 결혼할 준비가 안 돼서 그런 게 아니냐는 것.
직장인 하경식(29, 부산시 북구) 씨는 결혼식 후에도 혼인신고를 미루는 것은 무책임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하 씨는 “혼인신고를 할 준비도 안 된 사람들이 결혼을 결심한다는 건 앞뒤가 안 맞다”며 “기혼자가 혼인신고를 안 하는 것은 일종의 사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정법률 전문 민주영 변호사는 “조기 이혼이 급증하면서 경제적, 심리적 이유로 혼인 신고를 꺼리는 신혼부부가 많다”며 “혼인신고를 미룬다고 해서 벌금 등의 법적 제재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같은 풍토가 형성된 듯하다”고 말했다.
